KBO리그 출신 외국인 투수가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선발로 나섰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던졌던 우완 투수 벤 라이블리(33·클리블랜드 가디언스)가 KBO 역수출 최초 신화를 썼다.
라이블리는 지난 2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코프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시즌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2회 비니 파스콴티노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았지만 5이닝 4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3탈삼진 3실점으로 선발 임무를 완수했다.
총 투구수 67개로 포심 패스트볼(23개), 싱커(14개), 슬라이더(11개), 커브(10개), 스위퍼(6개), 체인지업(3개) 등 6가지 구종을 고르게 던졌다. 최고 구속은 시속 91.4마일로 싱커(147.1km). 빠른 공은 아니지만 다양한 구종으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며 5이닝을 막았다. 불펜 난조로 승리가 날아갔지만 클리블랜드의 7-4 개막전 승리에 발판을 다졌다.
사실 이날 클리블랜드의 개막전 선발투수는 에이스 태너 바이비가 예고돼 있었다. 하지만 ‘MLB.com’에 따르면 바이비는 급성 위장염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고, 개막전 시작 4시간을 앞두고 라이블리로 선발을 교체했다. KBO 출신 외국인 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선 것이다. 메릴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에릭 페디(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조쉬 린드블럼(전 밀워키 브루어스) 등 KBO 역수출 투수들도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로 나선 적은 없었다.

당초 라이블리는 다음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에서 시즌 첫 선발등판할 예정으로 애리조나에 있는 구단 훈련 시설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바이비의 위장염이라는 변수가 발생했고, 스티븐 보그트 클리블랜드 감독은 라이블리에게 연락했다. 전날(27일) 아침 연락을 받은 라이블리는 오후 2시에 캔자스시티행 비행기를 탔다. 선발 교체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었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이동했다. 바이비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라이블리의 개막전 선발이 확정됐다.
보그트 감독은 “그게 바로 라이블리다. 그는 그저 공을 던지고 싶어 한다. 전화로 라이블리에게 상황을 알렸고, 그의 심장박동은 변하지 않았다. 마치 ‘좋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게 바로 라이블리다. 오늘 5이닝 동안 멋진 투구를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라이블리는 “작년에 내게 가장 도움이 된 것이 ‘페달을 밟자’는 생각이었다. 팀의 연락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속 페달을 밟고 달려보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역 매체 ‘클리블랜드.com’은 ‘라이블리는 커리어 초기에 깜짝 개막전 선발로 나섰다면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성숙해진 라이블리는 모든 걸 차분하게 처리하고 적절하게 경기에 대처했다’고 전했다. 라이블리는 “개막전이 아니라 시즌 중반 경기라는 생각으로 나갔다. 만약 내가 젊었더라면 너무 흥분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라이블리가 이렇게 성숙해진 것은 한국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있어서였다. 라이블리는 2019년 8월 삼성에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한 뒤 2021년 6월 어깨 부상으로 방출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지냈다. 3시즌 통산 성적은 36경기(202⅓이닝) 10승12패 평균자책점 4.14 탈삼진 191개. 193cm 장신 스리쿼터 투수로 볼끝 움직임이 좋아 타자들이 어려워했지만 마운드에서 쉽게 흥분하며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가 있었다. 옆구리, 손가락, 어깨 등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풀타임 시즌도 보내지 못했다.
한국을 떠난 뒤 2022년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리그 계약했고, 2023년 5월 빅리그 콜업을 받았다. 19경기(12선발·88⅔이닝) 4승7패 평균자책점 5.38 탈삼진 79개로 경쟁력을 보여줬고, 시즌 후 클리블랜드와 75만 달러에 FA 계약했다. 지난해 클리블랜드 에이스 셰인 비버가 팔꿈치 토미 존 수술로 이탈한 뒤 라이블리가 선발 기회를 잡았다. 19경기(105⅓이닝) 10승6패 평균자책점 3.42 탈삼진 90개로 활약하며 클리블랜드의 지구 우승에 힘을 보탰다. 이 같은 기여도를 인정받아 올해 연봉은 225만 달러로 전년 대비 3배 올랐다.
라이블리는 지난해 8월 지역 방송 ‘뉴스5 클리블랜드’와 인터뷰에서 “좋은 기회로 한국에 갔는데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많은 투구를 할 수 있었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게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됐다”며 “한국에는 통역사도 있고, 외국인 선수도 몇 명 함께하지만 혼자서 웬만한 것을 다 해결해야 했다.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 리셋하며 성숙해질 수 있었다. 예전에는 경기 중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불평을 하거나 너무 좋아했다. 이제는 홈런을 맞더라도 빨리 잊고 다음을 생각한다”고 달라진 마인드를 이야기했다. 이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개막전 선발도 2회 스리런 홈런을 맞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5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버티며 제 몫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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