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국 야구 최고 유망주가 병역의무 기피자로 낙인이 찍혔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뤘지만 기쁨은 잠시, 자리를 잡지 못한 박효준(28)의 상황이 안타깝게 됐다. 미국 직행의 리스크가 이렇게 크다.
병무청은 지난 19일 홈페이지를 통해 2023년 병역의무 기피자 422명의 인적사항을 공개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애슬레틱스 산하 트리플A 라스베가스 에비에이터스 소속인 박효준이 허가 기간 내 미귀국으로 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박효준은 지난해 3월8일 허가 기간 내 미귀국으로 인해 병역법 제94조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25세 이상 병역 의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국외여행 허가 기간 내 귀국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병역 기피 목적으로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박효준은 허가 기간 내 귀국하지 못했고, 서울지방병무 청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4월 박효준에게 여권 반납 명령 통지서를 송달했고, 이에 불복한 박효준은 지난해 5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이 진행 중이다.
박효준이 귀국 후 당장 병역을 이행한다면 병역의무 기피자 명단에서 삭제된다. 그러나 미국에 남는다면 일단 영주권부터 취득해야 한다. 미국 영주권을 따내고, 국외이주사유로 국외여행허가를 병무청에서 받아야만 최지만처럼 37세까지 병역을 미룰 수 있다. 박효준의 경우 1심 소송 패소로 영주권을 따내도 병무청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병역법 위반 위기에 몰린 박효준의 야구 인생도 큰 고비를 맞았다. 10년 전 뉴욕 양키스와 계약하면서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설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야탑고 시절 박효준은 최고 유격수 유망주였다. 같은 학교 1년 선배 김하성을 2루수로 밀어내며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5툴 플레이어로 가능성을 인정받아 2014년 7월 ‘명문’ 뉴욕 양키스와 계약금 116만 달러에 사인하면서 미국 도전에 나섰다. 마이너리그 육성 과정을 밟은 박효준은 2022년 7월17일 보스턴 레드삭스전 빅리그 데뷔의 꿈을 이뤘다. 역대 25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됐지만 대타 한 타석 만에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열흘 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트레이드 된 뒤 첫 안타, 홈런을 터뜨렸지만 눈에 확 띄는 성적은 아니었다. 2022년에는 시즌 중 3번이나 메이저 콜업과 마이너 강등을 반복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23경기 출장에 그친 박효준은 시즌 뒤 피츠버그, 보스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연이어 양도 지명(DFA) 및 클레임으로 이적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트리플A에서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하필이면 리그 최다 104승을 올린 애틀랜타의 두꺼운 선수층에 막혀 콜업 기회가 없었다. 올해는 꼴찌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마이너 계약했지만 나섰지만 고난의 행보가 계속됐다. 시범경기에서 23경기 타율 4할7푼7리(44타수 21안타) 1홈런 9타점 OPS 1.137로 맹타를 휘둘렀지만 개막 로스터에 들지 못했고, 시즌 내내 한 번도 콜업을 받지 못했다.
최근 2년 연속 트리플A에만 머물면서 박효준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2시즌 68경기 타율 2할1리(179타수 36안타) 5홈런 20타점 OPS .638에 멈춰있다. 내년이면 어느덧 29세가 되고, 기회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반면 고교 때 박효준에게 밀렸던 김하성은 KBO리그에서 7년간 성공을 발판 삼아 포스팅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4년 보장 2900만 달러 계약한 뒤 골드글러브 수상자로 활약했고, 올겨울 FA 대박을 노리고 있다.
박효준이 처한 상황은 미국 직행의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성공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많은 아마추어 유망주들이 미국에 직행했다. 16년을 롱런하면서 FA 대박까지 친 추신수처럼 정말 잘 풀린 케이스가 있고,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최지만 등 풀타임으로 몇 시즌을 뛴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곤 했다. 한국 복귀시 2년 유예 규정에 묶여 시간만 허비한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반면 류현진을 시작으로 강정호, 오승환, 박병호, 이대호, 김현수, 황재균, 김광현, 김하성, 양현종, 이정후 등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넘친다. 류현진부터 최근 15명의 메이저리거 중 12명이 KBO리그 출신이다. 특히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 달러에 계약하며 특급 대우를 받았다. KBO리그를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
과거보다 마이너리그 처우가 개선되고, 선진적인 코칭 시스템 속에 유망주 데뷔 시기가 빨라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어린 나이에 미국 직행의 위험성은 여전히 크다. 바늘 구멍을 뚫어야 하는 경쟁의 수준도 높지만 낯선 나라의 환경, 문화, 언어 등 야구 외적인 부분도 적응이 쉽지 않다.
류현진도 최근 이대호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나와 미국 직행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류현진은 “본인들도 느끼겠지만 루키리그부터 쉽지 않다. 19살 때는 몸도 덜 만들어진 상태인데 가서 혼자 생활하고 도전한다? 내 주위에 그런 선수가 있다면 진짜 무조건 뜯어말릴 것 같다”며 “한국에서 먼저 하고, 포스팅으로 나가란 말을 해주고 싶다. (미국 직행은) 진짜 반대”라고 말했다.
이대호도 “요즘은 포스팅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다. 우리 때는 8~9년을 뛰고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충분히 (빠르게) 나갈 수 있다. (한국에서) 더 좋은 경험과 커리어를 쌓고 나가면 대우를 받고, 구단에서 더 인정해준다”고 맞장구쳤다. 이에 류현진도 “26살이면 (포스팅으로) 갈 수 있다”며 이정후를 예로 들었다.
성공 확률은 극히 낮지만 미국 직행의 메리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추신수는 지난달 은퇴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곤 “아마추어 때 미국으로 바로 가는 것과 프로 생활을 하고 진출하는 것 모두 존중한다. 장단점이 다 있다. 마이너리그를 경험하고 올라가면 언어나 소통, 선수들과 관계 등에서 미국 생활을 더 잘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 누리는 이득이다. 큰 무대에 일찍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와 가치관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확률적으로 미국 직행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박효준처럼 병역 문제까지, 현실적인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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