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의 그림자이자 분신이었던 미즈하라 잇페이의 불법 도박 스캔들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졌다. 미즈하라는 우리 상상을 초월한 ‘노름꾼’이었다.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개인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는 동안, 오타니를 관리해야 하는 에이전시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책임론도 등장했다.
미국 연방 검찰은 12일(이하 한국시간) 오타니 쇼헤이의 통역이었던 미즈하라 잇페이를 은행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연방 검찰의 캘러포니아 중부지부의 마틴 에스트라다는 “미즈하라가 자신의 스포츠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오타니의 은행계좌에서 1600만 달러(약 219억원)을 불법적으로 이체한 사실이 연방 조사에서 밝혀졌다’라면서 미즈하라의 범행에 대해 설명했다.
연방 검찰의 36페이지 분량의 고소장에 제출된 진술서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불법 마권업자에게 도박 빚을 갚기 위해 2021년 11월부터 2024년 1월 사이, ‘미즈하라와 관련된 기기와 IP 주소’를 통해서 오타니의 계좌에서 1600만 달러 이상을 오타니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이체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 직원과의 전화통화에서 오타니를 반복적으로 사칭했다. 미즈하라가 불법 송금에 이용한 오타니의 계좌는 지난 2018년 미즈하라의 도움으로 개설된 계좌였다.
아울러 고소장 진술서에는 미즈하라는가 총 1만9000회 이상의 베팅을 했다고 명시했다. 이는 하루 평균 25회에 달한다. 베팅 금액도 다양했다. 10달러부터 16만 달러까지, 평균 12만8000달러였다. 미즈하라는 말 그대로 꾼이었다. 도박으로 1억4256만6769달러(약 1950억원)를 땄고, 1억8293만5206달러(약 2502억원)를 잃었다고 고소장에 명시되어 있다. 손실액은 4000만 달러가 넘었다. 우리 돈으로 552억원에 달했다.
미즈하라의 기소 사실을 밝힌 에스트라다 검사는 “우리는 이 사건에 대중의 상당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많은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에 접근하고 싶었고 빠르지만 매우 철저한 조사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라면서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타니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간주된다. 오타니가 자신의 계좌에서 불법마권업자에게 1600만 달러가 넘는 이체를 승인했다는 증거는 없다”라고 했다.
이어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실질적인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오타니의 은행계좌 개설을 도왔고 오타니와의 신뢰관계를 이용해 오타니의 재정에 특별한 접근권을 가진 것으로 파악했다”라면서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은행 계좌를 약할해 불법 스포츠 도박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위해 신뢰의 지위를 남용했다”라며 오타니는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하고 피해자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오타니가 미즈하라의 행위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없고, 오타니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출하는 등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LA타임즈’는 ‘지난달 오타니는 불법 마권업자에게 돈을 지불하거나 베팅을 했다거나, 누구의 부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의 계좌가 진술을 뒷받침한다. 조사관들은 오타니의 문자메시지에 도박이나 미즈하라의 도박 빚과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그의 웹 브라우저 기록은 마권업자의 업체 웹사이트를 방문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 또한 그의 휴대전화도 문제의 은행 계정에 접근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사관들은 또한 오타니가 미즈하라가 그 계정에 접근을 허락한 어떠한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고 또 관리권을 넘겨주지 않았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매체는 ‘미즈하라는 오타니의 급여가 입금되는 은행 계좌를 비공개로 하여 오타니 에이전트, 재무 관리자 및 회계 담당자에게 비밀로 했다고 고소장에 명시됐다. 수사관들이 검토한 은행 기록에 따르면 이 계좌의 연락처가 미즈하라의 전화번호와 연결되도록 변경됐고 이메일 계정도 미즈하라에게 연결된 것으로 확인했다’라고 덧붙였다. 미즈하라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사용한 계좌는 LA 에인절스에 입단하면서 만든 급여 계좌였다. 광고 및 부가 수입은 또 다른 계좌에서 관리를 했다.
‘LA타임즈’는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계좌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동안 오타니의 에이전시인 ‘CAA’와 네즈 발레로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매체는 ‘CAA 에이전시에 오타니를 담당하는 팀에는 누구도 일본어를 할 수 없다는 불만 사항이 있었다. 미즈하라가 슈퍼스타에 대해 그토록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오타니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 중 누구도 오타니의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라면서 ‘오타니는 당장 내부를 정리해야 한다. 먼저 영합한 에이전트인 네즈 발레로를 해고하고 그의 위기 관리 홍보 담당자를 내쳐야 한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타니와 미즈하라는 2013년 일본야구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부터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왔다. 2018년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때 오타니는 미즈하라에게 통역 및 매니저 업무를 제안하면서 통역 이상의 동반자 관계가 됐다.
그러나 오타니는 미즈하라를 너무 믿었다. 계좌 개설 시 자신의 개인 정보를 제공했고 일상 업무를 처리하게끔 했다. 그러면서 미즈하라는 점점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다. 미즈하라가 도박빚을 제때 갚지 못하게 되자 마권업자는 미즈하라에게 ‘왜 내 연락에 답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저는 여기 뉴포트 비치에 있는데 ‘피해자A’가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것을 봤다. 다가가서 미즈하라가 응답이 없는데 어떻게 연락할 수 있을지 물어봐야겠다’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마권업자가 오타니를 미행하며 접근했던 정황까지 포착됐다.
오타니와 에이전시 모두 연방 정부의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미즈하라의 불법 도박 사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지난 3월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 공식 개막시리즈 도중 다저스가 미즈하라를 해고하면서 불법도박 혐의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미즈하라는 ‘ESPN’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오타니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오타니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게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난 빚을 갚기 위해 송금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오타니는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 묻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ESPN이 이를 기사화 하기 직전 오타니의 변호인 측이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돈을 절도했고 오타니는 대규모 절도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이에 미즈하라도 “오타니는 도박 빚을 알지 못했고, 돈을 송금하지 않았다”고 인터뷰를 번복했다. 미즈하라는 오타니는 절대 도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오타니의 연루에 선을 그었지만 오타니는 이날 기소 전까지 가해자로 의심받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한 에이전시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게 현지의 여론인 듯 하다.
한편,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미즈하라는 유죄를 인정하고 연방 정부와 형량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사기는 연방법적으로 형량이 징역 최대 30년이지만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