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아찔하다. 너무 올라가는 것 아냐? 명색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다. 그런데도 높이가 겁날 정도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거야? 응원하는 팬들도 자꾸 걱정이 앞선다. 어느 틈에 순위표 맨 윗자리다. 하지만 이해가 간다. 얼마나 오랜 기다림의 끝인가. 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산다.
이글스 덕아웃이 매일 시끄럽다. 활기가 넘치다 못해, 폭발 직전이다. 만나는 팀마다 깨끗이 쓸어버린다. 벌써 7연승. 도대체 약점이 없다. 선발 투수는 잘 던지고, 타선은 그야말로 다이너마이트다. 언제, 어디서, 누가 터질 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분위기를 이끄는 주인공이 있다. 치어리더를 자청한 신입 팀원이다. 몬스터라고 불리는 북미 출신 용병(?)이다. 보문산 만한 큰 덩치로 덕아웃 맨 앞 줄, 1열을 지키고 있다.
꽤 별 나기는 하다. 본래 선발 투수는 덕아웃 지분이 높지 않다. 참여한다고 해도 조금 외곽으로 빠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는 아니다. 연간 회원권을 찜해 놓은 듯, 늘 지정석을 독차지한다.
그것도 감독, 코치들 바로 곁이다. 그라운드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가장 먼저 선수들과 하이 파이브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참견하기 가장 좋은 자리다.
누군가 안타를 치고 나간다. 베이스 위에서 멋진 세리머니를 날린다. 그럼 벤치의 동료들이 함께 받아준다. 리액션은 주로 젊은 선수들의 몫이다. 베테랑쯤 되면 가벼운 박수 정도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는 빠지지 않는다. 30대 중반을 넘겼지만, 아낌없이 양손으로 날개를 펴고 호응해 준다.
참견(?)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시콜콜 간섭(?)이 이만저만 아니다. 유튜브 채널 이글스 TV의 ‘킹착취재’에 이런 장면들이 주옥같다.
7연승 하던 날이다(31일, 대전 KT전). 고졸 새내기 황준서의 첫 등판일이기도 하다. 최재훈이 파트너 포수로 마스크를 썼다. 그러자 1열 지정석에서 살뜰하게 챙긴다. 한번은 눈치도 준다. 아마 ‘투수가 몸을 푸는 데 왜 안 도와주냐’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다리를 매만지던 최재훈이 곤란한 얼굴이다. “아까 여기에 투수 공에 맞았는데, 너무 아파서….” 통증을 참아가며, 경기 출장도 쉽지 않게 이어가던 중이다. 그러자 잔소리하려던 2년 선배가 ‘아차’ 하는 반응이다. “그랬구나. 깜빡했네. 미안.” 민원 제기는 원만한 납득으로 해결된다.
잠시 후 5회 말이다. 이미 스코어는 11-1로 벌어졌다. 문제는 황준서의 승리 투수 요건이다. 아웃 1개를 남기고 투구수는 72개가 됐다. 그러자 프로 참견러가 또다시 발동한다. 코칭스태프 쪽을 보면서 손가락 3개를 편다. 이날 고졸 루키에게 걸렸던 제한 투구수 75개에 3개 남았다는 뜻이다.
감독, 코치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혹시 하는 노파심이다. 다행스럽게 다음 타자(천성호)가 초구를 건드려준다. 2루 땅볼로 이닝 종료다. 투구수도 넘기지 않고, 첫 승도 챙겼다.
한 네티즌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제이크라는 투수가 있다. MLB에서 통산 78승을 올렸다. 평균자책점도 3.27로 준수했다. 사이영상 레이스 포디움(최종 후보 3명)에 2번이나 들었다. 올스타전 선발로도 뛰었다. 그런 투수가 KBO에 영입된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까.’
그런 내용이다. 만약 이글스 99번이 미국 이름을 가진 외국인 투수라고 가정해 보자. 지금까지 그 정도 선수가 KBO 리그에 온 적은 없다. 그의 합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 사실을 환기시키는 얘기다. 그가 가끔 제이크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제이크는 아직 실적이 없다. 팀이 잘 나가는 것과 반대로 간다. 다른 선발 투수들은 모두 승리를 챙겼다. 하다못해 고졸 루키도 첫 승에 성공했다. 유일하게 자신만 빈손이다. 심지어 딱 하나 있는 패전도 본인 책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괜찮다. 출근길이 행복에 겹다. 7연승, 10년 만의 선두,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 오랫동안 사무치게 그립던 것들을 한껏 즐기고 있다.
지난달 28일 문학 시리즈 때다. 3연전 마지막 날이다. 자신만 먼저 대전으로 이동하는 스케줄이다. 다음날 선발 등판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냥 남아 있겠다”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덕아웃 1열에서 스윕(당시는 4연승)의 기쁨을 팀 동료들과 함께 했다. 그게 바로 자신이 돌아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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