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개막전 패배 이후 7연승으로 1위를 질주하는 데에는 강력한 선발진의 힘을 빼놓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개막 8경기 7승 중 6승이 선발승으로 선발 평균자책점은 NC 다이노스(2.03)에 이어 2위(2.57)에 올라있다.
개막전 류현진(37)을 제외하곤 한화의 모든 선발투수들이 5이닝 이상 던지며 2실점 이하로 막고 있다. 펠릭스 페냐(2승), 김민우, 리카르도 산체스, 문동주, 황준서(이상 1승) 등 류현진을 빼고 5명의 투수가 차례대로 선발승을 기록했다. 류현진만 한화 선발투수 중 유일하게 승리가 없다.
하지만 류현진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선발야구다. 한화 내부에서도 “류현진이 돌아온 게 크다. 나머지 선발들 순서가 하나씩 밀리면서 선발 매치업부터 유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1선발로는 조금 무게감이 떨어지는 펠릭스 페냐는 2선발로 손색이 없고, 3~5선발 김민우, 산체스, 문동주의 경쟁력도 다른 팀들에 비교 우위를 점한다. 특히 4~5선발로 시작한 산체스와 문동주는 확실히 타팀을 압도한다. 문동주의 경우 시즌 전 MLB 월드투어 스페셜게임 팀 코리아에 차출돼 투구수 부족으로 3선발이 아닌 5선발로 시작했는데 상등마로 하등마를 잡는 전략처럼 매치업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효과를 낳고 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선발 비중이 절대적이다. 선발 매치업에 따라 경기 플랜도 완전히 바뀐다. 류현진이 복귀하기 전이었던 지난해 시즌 직후에는 외국인 타자 2명 구성에 대한 논의도 있었지만 최원호 한화 감독은 “류현진이 오면 오히려 외국인 투수 둘로 가야 한다. 그러면 문동주가 4선발이 된다. 선발 매치업이 유리하게 돌아가면 시즌 전체가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그때 최원호 감독의 말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우천 취소나 부상 등으로 일정이 꼬이기 전인 3~4월 개막 초반에는 선발 매치업이 더욱 중요한데 류현진이 1선발로 다른 팀 에이스들과 맞붙어주면서 나머지 선발들이 부담을 덜었다. 어느 매치업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니 자신감도 생긴다.
경기 초중반 선발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 언제든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지난달 29일 대전 KT 위즈전에도 한화 타선이 상대 1선발 윌리엄 쿠에바스가 막혀 7회까지 2점을 내는데 그쳤지만 류현진이 6이닝 2실점으로 버티면서 끝내기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는 7연승 기간 최근 6경기에서 한 번도 선취점을 내주거나 리드를 허용하지 않았다. 선발이 안정되니 끌려다니는 경기가 적다. 이렇게 되면 팀이 연패에 빠질 확률도 낮아진다. 류현진의 복귀로 시즌 전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
최원호 감독은 “류현진이 오면서 투수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선발 자리에 위기감을 느낀 선수들도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전체적으로 좋아졌다”고 류현진 효과를 설명했다. 문동주는 “현진 선배님이 와서 얘기도 많이 하고, 잘 배우고 있다. 선발투수들에게 서로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페냐도 “코리안 몬스터의 합류로 선발들 사이에 건전한 경쟁의식이 생겼다. 경기 전 류현진이 항상 격려하고 지지해준 덕분에 우리 선발들이 100%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류현진도 본격적인 승수 사냥에 나설 기세다. 개막전이었던 지난달 23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3⅔이닝 6피안타 3볼넷 무삼진 5실점(2자책)으로 조기 강판돼 패전을 안았지만 29일 대전 KT전에서 6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2실점 퀄리티 스타트로 반등했다.
개막전에는 최고 150km 강속구를 뿌렸지만 제구가 되지 않아 고전했고, 2루수 문현빈의 수비 실책이 겹치기도 했다. 하지만 KT전에선 최고 구속이 147km로 떨어졌지만 커맨드를 되찾으며 위아래 존을 폭넓게 활용했고, 최저 99km 슬로 커브를 섞어 완급 조절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안타 8개를 맞았지만 장타는 없었다.
최원호 감독은 “본인 스타일에 맞게 다양한 코스와 구종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잘 빼앗았다. 실투가 많지 않았다. 이제 날이 풀려 몸이 좋아지고, 구내 타자들에 대한 적응이 되면 더 안정감 있게 갈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류현진에 대해 “잘 던지더라. 구위로 압도하는 것은 아닌데 요령이 좋다. 베테랑답다.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고 뺄 줄 알니까 연속 안타를 잘 안 맞는다. 그게 좋은 투수다. 투구폼을 봐도 (다리를 올린 뒤 무게 중심이 기우는) 뒤쪽이 깨끗하다. 투수들이 많이 보고 배워야 한다. KBO리그 타자들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는데 현진이는 역시 현진이”라고 인정했다.
류현진은 오는 4일 대전 홈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복귀 첫 승이자 개인 통산 99승에 재도전한다. 류현진의 KBO리그 가장 최근 승리는 2012년 9월25일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전(7이닝 7피안타 1볼넷 7탈삼진 1실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