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암흑기를 보냈던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선발진에 자리가 없어 특급 신인 투수를 어떻게 써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한화는 올해 류현진, 펠릭스 페냐, 김민우, 리카르도 산체스, 문동주 순으로 5인 선발 로테이션을 시작했다. 올해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좌완 신인 황준서(19)도 시범경기까지 선발 후보로 경쟁했지만 결국 자리가 없어 퓨처스 팀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장충고 2학년 때부터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된 황준서는 부드러운 투구폼에 제구가 좋고, 좌완 투수로는 보기 드문 스플리터를 결정구를 갖고 있다. 완성도 높은 투수로 즉시 전력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개막을 앞두고 황준서를 2군으로 내려보내야 했던 최원호 한화 감독은 “아쉽다. 많이 아쉽다. 지금 당장 선발로 들어가도 잘할 것 같은데…”라며 입맛을 다셨다.
최원호 감독이 왜 그렇게 아쉬워했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민우가 왼쪽 날갯죽지에 담이 와 로테이션을 한 번 건너뛰면서 황준서에게 선발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고, 데뷔전에서 강한 인상남겼다. 지난달 31일 KT 위즈와 대전 홈경기에 선발투수로 나선 황준서는 5이닝 3피안타(1피홈런) 2사구 5탈삼진 1실점 호투로 팀의 14-3 대승을 이끌었다.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역대 10번째 고졸 신인으로 19살 신인답지 않은 배짱과 안정감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최고 149km, 평균 145km 직구(33개)에 주무기 스플리터(34개)로 투피치에 가까운 투구를 하면서 커브(6개)도 간간이 섞은 황준서는 몸에 맞는 볼 2개가 있었지만 안정된 커맨드로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익스텐션이 길고, 공을 숨기면서 나오는 디셉션이 좋아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이 대응하기 어려웠다.
위기 상황에서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2회 무사 1,2루에선 황재균에게 직구 3개를 던져 3구 삼진을 잡아냈다. 3회 2사 1,3루에선 강백호를 상대로 스플리터를 낮게 떨어뜨린 뒤 몸쪽 높은 쪽으로 다시 한 번 구사해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두 번의 위기 모두 실점 없이 막았다.
황준서의 데뷔전 투구가 워낙 좋다 보니 한화도 행복한 고민을 떠안게 됐다. 당장 2군에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 정도 투구 퀄리타라면 2군에서 선발 수업도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다고 기존 5명의 선발도 잘 던지고 있어 누구 한 명을 빼기도 어렵다. 김민우도 지난달 26일 문학 SSG 랜더스전에서 최고 148km 직구와 포크볼 조합으로 5이닝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 첫 승을 거뒀다. 시즌 준비 과정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기회를 더 줘야 한다.
최 감독은 31일 KT전을 앞두고 황준서의 향후 활용법에 대해 “오늘 등판 결과와 관계없이 다음 선발 차례(6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는 김민우가 던질 것이다. 그때 몸 상태가 괜찮다면 계속 김민우로 간다. 김민우의 등판을 보고 나서 황준서의 활용법을 결정할 것이다”고 밝혔다. 김민우의 건강을 확인할 때까지 황준서도 1군과 동행하면서 대기한다.
김민우에게 문제가 없다면 5인 선발진이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한화는 황준서 활용법을 새로 찾아야 한다. 6선발 체제도 고려할 수 있지만 우천 취소가 잦고, 불펜 의존도가 높으며 교체 야수 활용 빈도가 빈번한 KBO리그 환경에선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이다. 선발투수가 엔트리 하나를 더 잡아먹기 때문에 지금껏 1년 내내 6선발 체제를 가동한 팀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건 1군에 불펜으로 남는 것이다. 선발이 필요할 때 대체로 들어가는 스윙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황준서는 “선수는 1군에 있는 게 목표다. 어떤 보직이든 1군에 있으면 다 잘할 수 있다”며 잔류를 희망했다. 선수라면 누구나 1군을 원한다. 1순위 젊은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만 한화가 중장기적으로 키워야 하는 선수인 만큼 현장, 프런트가 머리를 맞대 황준서를 위한 최적의 길을 고심하고 있다. 이번 주까지 결정을 위한 시간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