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 선배님한테 많이 배워서 제가 계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난해 신인왕 문동주를 배출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 또 한 명의 괴물 신인 투수가 탄생했다. 202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힌 황준서가 1군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거두며 KBO리그 역대 10번째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한화 선수로는 2006년 류현진 이후 18년 만이다.
황준서는 3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치러진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KT 위즈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 5이닝 3피안타(1피홈런) 2사구 5탈삼진 1실점 호투로 한화의 14-3 대승을 이끌었다. 한화는 개막전 패배 후 7연승을 질주하며 1992년 전신 빙그레 시절 이후 최고의 스타트를 끊으면서 단독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다. 황준서가 딱 그랬다. 시범경기까지 선발 후보로 경쟁력을 보여준 황준서는 류현진의 복귀와 김민우의 구위 회복으로 선발 다섯 자리가 꽉 차면서 퓨처스 팀에 내려가 시즌을 시작했다. 못 던져서가 아니라 자리가 없다는 것이 더 아쉬울 법도 했지만 황준서는 “2군에 갈 거라고 예상했다. 기회는 올 것이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개막 일주일 만에 선발로 깜짝 투입됐다. 지난 26일 문학 SSG 랜더스전에서 5이닝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호투로 첫 승을 거둔 김민우가 왼쪽 날갯죽지에 담이 걸려 등판을 한 번 건너뛰게 됐고, 황준서가 그 자리에 대체로 들어왔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오늘 황준서의 등판 결과와 관계없이 다음 선발등판 차례는 김민우가 던질 것이다. 김민우의 등판을 보고 괜찮으면 그대로 간다. 보고 나서 (황준서 활용법을)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임시 선발 성격이 강했지만 황준서는 최 감독의 생각을 바꿔놓을 만한 놀라운 투구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최고 149km, 평균 145km 직구(33개)와 함께 스플리터(34개), 커브(6개)를 구사하며 KT 타선을 압도했다. 하이 패스트볼과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조합으로 ABS존 위아래를 폭넓게 활용했다. 주무기 스플리터를 존에 넣었다가 빼는 등 안정된 커맨드도 돋보였다.
4회 문상철에게 맞은 솔로 홈런이 유일한 실점으로 2회 무사 1,2루, 3회 1사 1,3루 위기를 실점 없이 극복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2회 황재균을 직구 3개로 헛스윙 삼진 잡으며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펼쳤고, 3회에는 강백호를 5구째 바깥쪽 낮은 스플리터에 이어 몸쪽 높은 스플리터로 타이밍을 빼앗아 헛스윙 삼진 요리했다. 배짱 두둑한 투구로 강타자들을 상대로 피해가지 않고 승부를 들어갔다.
4일 전 퓨처스리그에서 4이닝 57개의 공을 던진 황준서에게 이날 예정된 투구수는 75개였다. 4회까지 66개를 던진 상태에서 5회 올라왔고, 7개의 공으로 삼자범퇴하며 선발승 요건을 충족했다. 2회 7득점, 3회 4득점으로 타선이 대량 득점을 지원하면서 황준서도 첫 승을 확신한 채 마운드를 내려 갈 수 있었다.
한화의 14-3 대승과 함께 황준서는 KBO리그 역대 10번째로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 기록을 달성했다. 1991년 롯데 김태형, 2002년 KIA 김진우, 2006년 한화 류현진, 2014년 LG 임지섭, 넥센 하영민, 2018년 삼성 양창섭, KT 김민, 2020년 KT 소형준, 2020년 삼성 허윤동에 이어 10번째 기록. 한화 선수로는 2006년 류현진 이후 18년 만이다. 류현진은 2006년 4월12일 잠실 LG전에서 7⅓이닝 3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전 선발승을 거둔 바 있다.
다음은 경기 후 황준서와 취재진의 일문일답.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기분은.
▲ 부담이 많이 됐다. (김)서현이형이랑 (문)동주형에게 데뷔전 어떘냐고 물어봤는데 동주형은 ‘난 0.2이닝 던졌다. 넌 1이닝만 던져도 나보다 잘하는 것이다’고 말해줬다. 그때 긴장이 풀려 마운드에서 자신 있게 던질 수 있었다. (문동주는 2022년 5월10일 잠실 LG전에 구원으로 데뷔전을 가지며 ⅔이닝 4피안타 1볼넷 1탈삼진 4실점을 기록했다.)
-1회 첫 타자 배정대를 삼진으로 잡고 시작했는데.
▲ 내가 갖고 있는 힘을 1번타자한테 다 쏟아내자고 했는데 그게 삼진이 됐다. 좋은 시작으로 갈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두 차례 위기도 있었지만 잘 극복했는데.
▲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마음속으로 그런 주문을 했다. 위기를 잘 막아내서 승리투수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원호 감독은 선배들보다 배짱이 좋다고 평가했는데.
▲ 형들이 점수를 엄청 많이 내줘서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 (2회 7득점 이후) 초반부터 점수를 많이 내줘 팔을 풀 때 ‘더 잘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초반에는 포수 최재훈의 사인에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는데.
▲ 최대한 재훈 선배님 믿고 던졌다.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공을 던져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고개를 저었던 것 같다.
-프로에 와서 스플리터 구사 비율이 늘었는데.
▲ 확실히 프로에 오니까 고교 때보다 비율이 높아졌다. 커브도 연습 피치 때 던지고 있다. 커브가 힘이 있을 때는 나쁘지 않다. 오늘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공(스플리터)으로 했다.
-1군 콜업과 선발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낌은.
▲ 빨리 짐싸고 1군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차에서 타고 갈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고 잘됐다.
-한화 선발투수들의 활약이 계속 좋은데.
▲ 선발승을 다들 차례대로 했기 때문에 이 분위기를 솔직히 내가 깨고 싶지 않았다. 웜업 때부터 긴장하면서 열심히 던졌다.
-5회를 마쳤을 때 기분은 어땠나.
▲ 일단 마음이 편했다. (예정된 투구수를 채워) 끝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내려갔고, 형들이 축하해주는 것을 다 받았다, 감독님은 그냥 손만 잡았다.
-한화 고졸 신인으로는 류현진 이후 첫 데뷔전 선발승인데.
▲ 아 진짜요? 현진 선배님한테 많이 배워서 내가 계보를 이어갈 수 있게끔 열심히 하겠다.
-2회 황재균 상대로는 직구 3개로 삼진 잡았는데 빠른 공에 대한 자신감은.
▲재훈 선배님이 그렇게 사인을 내주셨다. 선배님을 믿고 그냥 힘 있게 던졌다.
-불펜으로라도 1군에 계속 남고 싶은가.
▲ 선수는 1군에 있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어떤 보직이든 1군에 있을 수 있으면 다 잘할 수 있다.
-팀이 7연승 중인데 분위기를 느끼고 있나.
▲ (1군에 콜업된) 어제는 내가 다음날 선발이라 경기 중에 먼저 들어갔다. 8회 육성 응원 한 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까 어마어마하더라.
-선배들에게 첫 승 축하 물 세례를 받은 느낌은.
▲ 앞에 동주형밖에 없어서 동주형만 하는 줄 알았는데 뒤에 다 계시더라. 물이 생각보다 차가워서 춥다(웃음).
-투구폼이나 체형 때문에 김광현과 비교되는데 팀에는 류현진이 있다. 어떤 닉네임을 원하는가.
▲ 제2의 류현진이 좋을 것 같다. (리틀 몬스터는 어떤가?)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