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타자 보는 눈이 날카롭기로 팀에서 인정받는 노시환의 눈썰미가 정확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지만 시즌 초반부터 임팩트 있는 타격으로 KBO리그 폭격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를 단독 1위로 올려놓은 외야수 요나단 페라자(26)가 그 주인공이다.
한화는 지난 30일 대전 KT 위즈전에서 8-5로 승리하며 개막전 패배 후 6연승을 질주했다. 개막 7경기 기준으로 한화가 6승1패를 거둔 것은 1988년, 1992년, 1998년에 이어 구단 역대 4번째로 26년 만이다. 무엇보다 개막 7경기 이후 단독 1위는 2007년 6월2일(24승20패1무 승률 .545) 이후 6146일(16년10개월6일) 만이다. 햇수로는 17년 만의 ‘사건’이다.
그 중심에 바로 페라자가 있다. 30일 경기에서도 2번타자 우익수로 나온 페라자가 3회 선제 결승 솔로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1타점 2볼넷 4출루 경기를 펼치며 한화 타선을 이끌었다.
1회 첫 타석에서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간 페라자는 3회 KT 사이드암 선발 엄상백의 3구째 바깥쪽 130km 체인지업을 밀어쳐 좌측 담장을 훌쩍 넘겼다. 비거리 120m, 시즌 3호 홈런. 체인지업이 아주 잘 떨어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복판에 몰린 실투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페라자가 정확한 타이밍에 밀어친 타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변화구를 공략한 것이 포인트다. 대개 외국인 타자들은 빠른 공에 강하지만 변화구에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페라자는 지난 23일 잠실 LG 트윈스전 4회와 6회 시즌 1~2호 연타석 홈런 때도 각각 체인지업, 커브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3개의 홈런 모두 변화구를 공략한 것으로 임찬규에게 터뜨린 2호 홈런은 바깥쪽 낮은 커브를 끌어당겨 우측 담장을 넘기는 괴력을 뽐냈다.
4회에는 다시 볼넷으로 출루한 페라자는 6회 직구를 받아쳐 좌익수 왼쪽에 떨어지는 2루타로 만들었다. 살짝 타이밍이 늦어 빗맞은 타구였지만 1루로 전력 질주하더니 멈추지 않고 단숨에 2루까지 파고드는 집중력과 주력을 보여줬다.
아직 7경기밖에 치르지 않은 시즌 극초반이지만 페라자의 성적은 놀랍다. 25타수 13안타로 타율 5할2푼에 3홈런 5타점 6볼넷 5삼진 1도루 출루율 .594 장타율 1.000 OPS 1.594를 기록 중이다. 안타 13개 중 홈런, 2루타가 3개씩 장타가 6개나 되고, 삼진보다 많은 볼넷으로 괜찮은 선구안까지 자랑한다. 변화구에 쉽게 따라나가지 않고 타이밍을 맞춰 정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
베네수엘라 출신 스위치히터 외야수 페라자는 지난해 11월 한화와 KBO 신규 외국인 선수 상한액 100만 달러(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60만 달러, 옵션 20만 달러)를 채워 계약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지만 KBO리그 최초 1998년생 외국인 선수로 마이너리그에서 쭉 성장 과정을 밟으며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지난해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아이오와에서 뛰었으나 수비 불안과 외야에 여유가 있는 팀 사정이 겹쳐 콜업을 받지 못했고, 마이너 FA로 풀리자 KBO리그 여러 팀들이 페라자에게 붙었다. 다만 내야수 출신으로 외야 수비에 큰 물음표가 있었고, 다른 팀들이 주저한 사이 한화가 풀베팅으로 잡았다.
지난해 홈런왕(31개)을 차지하면서 KBO리그 대표 거포로 떠오른 노시환도 겨울에 페라자를 영상으로 보자마자 성공을 확신했다. 그는 “페라자가 잘할 것 같다. 배트 스피드가 굉장히 빠르고, 스윙이 짧게 나오면서 맞는 순간까지의 속도가 엄청나다. 공을 맞힐 때 임팩트도 강하게 준다. 공을 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고 기대했다. 개막 전날 미디어데이에서도 노시환은 관련 질문에 “페라자는 치는 게 너무 안정적이다. 공 보는 선구안도 좋고, 내가 볼 때 진짜 잘 칠 것 같다. 롯데 빅터 레이예스도 좋아 보이지만 페라자한테는 안 된다”고 자신했다.
노시환의 평가대로 페라자는 엄청난 배트 스피드로 강한 타구를 생산해낸다. 175cm 88kg으로 키는 작지만 단단한 근육질 몸매로 기본적인 파워가 좋다. 땅볼 타구도 속도가 빨라 내야를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여기에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에너지가 남다르다. 우려했던 외야 수비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시즌 초반 팀의 호성적에 대해 “잘하길 기대는 했지만 이런 성적을 예상할 순 없었다. 선발들이 잘 던져주고 있고, 타선에선 페라자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다른 타자들 페이스가 많이 올라오지 않은 상황인데 지금까지는 페라자가 이끈 것이다”고 칭찬했다.
지금 페이스를 시즌 내내 이어갈 수 없겠지만 이렇다 할 적응기 없이 시작부터 엄청나게 치고 있다. 시즌이 갈수록 상대 팀들의 데이터가 쌓이고, 약점 공략이 들어올 때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이지만 현재 모습이라면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제이 데이비스, 윌린 로사리오, 제러드 호잉을 잇는 한화의 효자 외국인 타자 계보에 오르는 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