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지난해 11월만 해도 소속팀을 잃고 현역 연장을 걱정했던 선수가 프로야구 개막 엔트리 승선에 이어 벌써 1군에서 3경기를 뛰었다. 성재헌(27·KT 위즈)은 어떻게 꿈의 1군에 입성하는 반전드라마를 쓸 수 있었을까.
성재헌은 지난 22일 발표된 2024 신한은행 SOL뱅크 KBO리그 개막 엔트리에 승선하는 기쁨을 안았다. 지난해 11월 KT 입단테스트를 통해 가까스로 현역을 연장했지만 착실한 빌드업을 거쳐 KT 13인 투수 엔트리 가운데 유일한 좌완 불펜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부산 기장 1차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박세진, 전용주 등과의 좌완 경쟁에서 후순위로 밀렸던 선수의 반전이었다.
최근 수원에서 만난 성재헌은 개막 엔트리 등록을 예상했냐는 질문에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 얼떨떨했다. 개막전 사전 행사에서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라고 답하며 “일단 올라오는 데 성공했으니 최대한 여기에 오래 붙어있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성재헌은 성남고-연세대를 나와 202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LG의 2차 8라운드 73순위 지명을 받았다. 느린 구속을 정교한 제구력으로 보완한 그는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 유희관’으로 불렸고, 프로 입단 이후 퓨처스리그에서 차근차근 선발 준비를 하며 당시 류중일 LG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성재헌은 데뷔 첫해 1군 무대에 올라 불펜으로 4경기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4.15(4⅓이닝 2자책)를 기록했다.
기쁨도 잠시 성재헌은 2020년 9월 4일 NC전을 끝으로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2020년 9월 10일 입대가 결정되면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소집해제 이후에도 퓨처스리그를 전전하며 기회를 잡지 못했다. 성재헌은 결국 지난해 11월 LG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무소속이 됐다.
성재헌은 작년 11월 말 모교 성남고에서 펼쳐진 KT 입단테스트에 참가했다. 조현우의 이른 은퇴로 좌완투수 보강이 절실해진 KT는 성남고에 제춘모 투수코치, 장재중 배터리코치를 파견했고, 두 지도자는 성재헌의 기량에 합격점을 부여했다. KT 구단은 당시 “구속은 높지 않지만 제구와 변화구에 강점이 있다”라며 연봉 3000만 원에 성재헌을 공식 영입했다.
성재헌은 KT 입단 후 익산에 차려진 퓨처스 스프링캠프에서 2024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모든 훈련을 성실하게 임한 결과 ‘빅또리투어’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빅또리투어는 퓨처스캠프에서 기량, 훈련 태도가 뛰어나고, 향후 콜업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이들을 1군 캠프로 승격시키는 KT만의 육성 특화 프로그램. 성재헌은 그렇게 부산 기장으로 이동해 짧게 1군 스프링캠프를 경험했다.
성재헌의 도장깨기는 멈추지 않았다. 기장에 남아 퓨처스 2차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던 그가 2월 말 이강철 감독의 부름을 받고 일본 오키나와 1군 스프링캠프로 향하게 된 것. KT는 이채호가 발목 부상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되자 2군에서 평가가 좋은 성재헌을 대체선수로 콜업했다. 입단테스트에 합격한 무명의 투수는 생애 첫 해외 캠프이자 1군 캠프로 향해 연습경기를 치르며 다시 한 번 사령탑의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다.
성재헌은 시범경기 2경기 평균자책점 0(1⅔이닝 무실점)을 거쳐 개막 엔트리 승선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24일 수원 삼성전에 구원 등판, 2020년 9월 4일 NC전 이후 무려 1297일 만에 1군 마운드를 밟았다. 1이닝 2실점으로 흔들리며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었지만 말소 없이 생존에 성공했고, 26일과 27일 수원 두산전에 연달아 등판해 나란히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성재헌은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반년만에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싶다”라며 “물론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다. 일본에 갈 때까지만 해도 내 기량을 보여줄 수 있게 돼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개막 엔트리까지 포함됐다. 운이 정말 좋다”라고 지난 4개월을 되돌아봤다.
1군 통산 4경기가 전부였던 성재헌은 올해만 벌써 3경기를 뛰었다. 성실한 훈련태도와 안정적인 제구력을 인정받으며 꾸준히 기회를 얻고 있는 상황. 이강철 감독은 "성재헌은 변화구를 스트라이크로 던질 줄 아는 투수다"라고 평가했다.
어렵게 기회를 잡은 성재헌은 1군에서 오랫동안 생존해 KT의 좌완 기근을 해소시키는 게 목표다. 그는 “나는 좌완 3명 중에서 가장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경쟁자들의 구위가 너무 좋았다”라며 “이제 여기서부터 만들어가는 건 내 몫이다. 그 동안 연습한 걸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가 갖고 있는 걸 최대한 발휘해서 자리를 잡고 싶다. 기량을 잘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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