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선발투수 부자’로 거듭날 기세다. 선발진의 불안 요소로 꼽혔던 4선발 리카르도 산체스(27)가 시즌 첫 등판에서 우려를 잠재웠고, 1순위 신인 황준서(19)는 퓨처스리그에서 성공적인 데뷔 신고를 했다.
한화는 지난 23일 잠실 LG전에서 돌아온 괴물 투수 류현진이 3⅔이닝 6피안타 3볼넷 무삼진 5실점(2자책)으로 조기 강판돼 개막전을 패했지만 충격을 빠르게 극복했다. 펠릭스 페냐, 김민우, 산체스가 연이어 선발승을 따내면서 개막전 패배 후 3연승을 내달렸다.
24일 잠실 LG전에선 2선발 페냐가 6⅔이닝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팀에 첫 승을 안겼고, 26일 문학 SSG전에선 김민우가 5이닝 2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첫 연승을 이어줬다. 올해로 3년차가 된 페냐는 계산이 서는 전력이고, 김민우는 스프링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팀 내 최고 구위를 뽐내며 부활을 예고한 터라 어느 정도 기대된 호투였다.
하지만 27일 문학 SSG전 선발로 나선 산체스에겐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재계약에 성공하긴 했지만 지난해 후반기 성적(14경기 2승7패 평균자책점 4.60)이 좋지 않았고, 시범경기에서도 평균자책점은 2.70이었지만 6⅔이닝 동안 6피안타 5볼넷을 허용하면서 WHIP 1.65로 내용이 썩 좋지 않았다. 외국인 투수이지만 일찌감치 ‘4선발’로 순번이 정해졌다. 류현진이 돌아온 것을 감안해도 외국인 투수라면 3선발 위치에 놓여야 정상이다.
그렇다고 한화 내부에서 산체스에 대한 기대가 낮은 것은 아니었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투구 습관이 나오는 부분을 보완했고, 직구 팔 각도를 조금 올렸는데 아직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적응되면 괜찮을 것이다. 4선발로 본다면 산체스가 10개 구단 중 제일 좋다”고 믿었다.
27일 SSG전에서 산체스는 최원호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외부 우려를 불식시키는 투구를 보여줬다. 5⅔이닝 3피안타 1볼넷 1사구 8탈삼진 1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된 것이다. 최고 152km 직구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친 산체스는 2~4회 3이닝 연속 삼자범퇴로 SSG 타선을 압도했다.
산체스의 직구에 SSG 타자들의 배트가 계속 늦었다. 직구에 헛스윙 삼진만 5개나 될 정도로 구위가 좋았다. 한유섬은 두 번이나 하이 패스트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최정도 1회 산체스의 바깥쪽 꽉 차는 직구에 헛스윙 삼진. 구위가 워낙 좋아 직구-슬라이더 투피치에 가까운 투구만으로도 충분했다. 총 투구수 90개 중 직구(51개), 슬라이더(21개) 비율이 80%에 달했다. 여기에 투심(8개), 체인지업(6개), 커브(4개)도 간간이 섞었다.
산체스가 외국인 투수로서 존재감을 보여준 가운데 2024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좌완 유망주 황준서도 이날 퓨처스리그에서 호투했다. 서산구장에서 열린 SSG와의 퓨처스리그 개막전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등판, 4이닝 3피안타(1피홈런) 2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안정감을 뽐냈다.
1회 김찬형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추가 실점 없이 4회까지 막았다. 총 투구수 57개로 최고 147km, 평균 143km 직구(30개) 중심으로 스플리터(18개), 커브(9개)를 구사했다. 주무기 스플리터로 1회 류효승, 4회 박대온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고, 3회 최준우는 114km 느린 커브로 루킹 삼진 잡았다. 2회, 4회 두 번이나 1루 견제로 주자의 도루 실패를 이끌어내며 도루 억제력까지 보여줬다.
황준서는 지금 당장 1군에서도 선발로 통할 수 있는 즉시 전력으로 평가된다. 안타깝게도 한화 선발진에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퓨처스리그에서 시작하게 된 것을 두고 최원호 감독도 “지금 선발로 들어가도 잘할 것 같은데 (자리가 없어) 많이 아쉽다”고 하기도 했다. 예년의 한화였다면 1군 선발진에서 황준서가 쓰였겠지만 선발 뎁스가 강해지면서 서두르지 않고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유일한 불안 요소로 여겨진 산체스가 첫 등판에서 호투하면서 당분간 한화 선발진에 빈자리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최원호 감독은 황준서의 1군 콜업 시점에 대해 “선발이 필요할 때 선발로 들어올 수 있다. 불펜 보강이 필요할 때 올려 쓸지 여부는 그런 상황이 됐을 때 다시 한 번 논의하기로 했다”며 상황에 따라 불펜으로 1군 활용 가능성도 내비쳤다.
한편 이날 한화 퓨처스 팀에선 또 다른 선발 자원 장민재도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등판, 3이닝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SSG 타선을 막았다. 지난해 한화는 선발 평균자책점 8위(4.37)로 경기당 선발 이닝도 10위(4⅔이닝)로 유일하게 5이닝을 넘기지 못한 팀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확 달라졌다. 1군뿐만 아니라 2군에 예비 전력까지 선발 자원이 넉넉해지면서 ‘선발 부자’로 거듭날 기세다. 5선발 차례가 된 28일 SSG전에는 지난해 신인왕 문동주가 시즌 첫 선발등판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