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의 불법 스포츠 도박 및 절도 혐의에 오타니 쇼헤이(30)가 배신감을 드러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직접 앞에 나서 해명하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오타니는 2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된 통역사 미즈하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약 70여명의 취재진이 몰릴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다저스타디움 내 기자회견장에 오타니와 함께 다저스 야구운영부서 윌 아이레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에다 겐타(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다저스에서 뛸 때 통역사를 맡았던 그는 오타니가 새 통역사를 구하기 전까지 그의 곁을 지킬 예정이다.
오타니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았고, 사진 촬영도 거부했다. 대신 MLB 네트워크, 스포츠넷LA 생방송을 통해 오타니의 메시지가 전달된 가운데 약 12분간 성명을 직접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날 자리를 마쳤다.
자신은 피해자라고 주장한 오타니의 말을 요약하면 “야구나 다른 스포츠에 베팅한 적이 없고, 도박업체에 돈을 지불한 적도 없다. 잇페이가 나의 돈을 훔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언론에선 오타니가 자신의 계좌에서 어떻게 돈이 송금된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그 큰돈을 미즈하라가 오타니 몰래 계좌에서 빼낼 수 있다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미국 금융 시스템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오타니의 공모 또는 묵인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12년 인연에 배신당한 오타니 “충격 그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ESPN’을 비롯해 현지 보도에 따르면 오타니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잇페이는 내 계좌에서 돈을 훔쳤고, 거짓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믿었던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매우 슬프고, 충격을 받았다”며 “잇페이가 도박 중독에 빠져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난 빚을 갚거나 도박업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데 동의한 적 없다”말했다.
미즈하라의 스포츠 도박 혐의를 둘러싼 사건은 지난 20~21일 한국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개막 2연전 중에 불거졌다. ESPN으로부터 도박 혐의 관련 추궁을 받은 미즈하라는 개막전을 앞두고 오타니가 최소 450만 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불법 도박업체에 돈을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PC에서 오타니의 은행 계좌에 로그인해 몇 달 동안 8~9차례에 걸쳐 50만 달러씩 송금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 지난해 9월과 10월 오타니 계좌에서 50만 달러씩 두 차례 송금된 것을 ESPN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이튿날 오타니의 변호인이 “최근 언론 문의 대응 과정에서 오타니가 대규모 절도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문제를 당국에 넘기겠다”고 밝혔고, 미즈하라도 오타니가 자신의 도박 빚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말을 바꿨다. 오타니는 “잇페이가 개막전 경기 후 호텔에서 1대1로 대화를 하자고 말했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잇페이가 다저스 선수단에 연설을 했고, 그 자리에서 영어로 말했는데 내 옆에는 통역이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오타니는 “그 미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잇페이가 도박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호텔로 돌아가서 1대1로 대화했을 때 그에게 엄청난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자리에서 잇페이는 내 계좌를 이용해 도박업체에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미즈하라가 자신의 계좌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최초에 도박 빚을 빌려줬다고 주장한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오타니는 “잇페이가 내게 언론의 문의에 대해 밝힌 적이 없다”며 호텔에서 그와 대화를 나눈 뒤 의문을 품고 자신의 대변인에게 연락을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리인과 이야기할 때 잇페이가 계속 거짓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저스 구단과 내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변호사는 이건 사기이기 때문에 당국에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을 권유했다”고 덧붙였다.
오타니는 2013년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에 입단했을 때 미즈하라를 처음 알게 됐다. 12년을 알고 지낸 사이로 2018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바늘과 실처럼 매 순간 함께한 사이였다. 단순 통역이 아니었다. 훈련 보조부터 전력 분석까지 늘 그의 곁에서 함께한 개인 비서이자 매니저로 오타니의 모든 일을 옆에서 챙겨준 존재였다. 오타니 주장대로 미즈하라가 그의 계좌에 손쉽게 접근해 돈을 빼낼 수 있었던 것도 두 사람이 이런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모든 걸 믿고 맡겼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타니는 “충격 그 이상이다. 지금 내 기분을 말로 표현하기 정말 어렵다. 그런 상태로 지난 일주일을 지내왔다”며 “이제부터 변호사에게 문제를 맡기려고 한다. 나도 당국의 조사에 전적으로 협력하겠다. 지금 상황에서 기분을 바꾸긴 어렵지만 시즌에 집중하고 싶다. 지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앞으로 더 조사가 진행될 것이다”는 말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오타니 결백 주장에도 美 언론은 의구심을 떨치지 않았다 왜?
오타니가 직접 해명했지만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USA투데이 스포츠’는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지도 않았고, 자극적인 고백이나 사과도 없었다’며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회견이었다고 논평했다. 이미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ESPN을 통해 알려진 내용들로 오타니가 직접 인정한 것 외에 새로 드러난 게 없었다.
이어 ‘오타니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입증되면 그는 친구를 맹목적으로 신뢰한 순진한 인물로 동정받을 수 있다. 오타니가 미즈하라의 도박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징계를 할 수 있지만 야구에 베팅하지 않았다면 벌금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오타니에게는 단순한 벌금만 부과되더라도 그의 평판을 더럽힐 것이고,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도전에도 방해할 수 있다’고 짚었다.
또 다른 매체 ‘야후스포츠’도 ‘충격적인 스토리만큼 의문이 많이 남는다’며 오타니 계좌에서 수차례 송금으로 450만 달러가 사라지는 것을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오타니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것을 두고 야후스포츠는 ‘이 모든 것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며 대리인, 대변인, 변호사 등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오타니 측 사람들이 미즈하라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오타니와 대화하지 않은 것을 꼬집으며 ‘이게 사실이라면 오타니 측의 무능함이 놀랍다’고 했다. 이어 ‘미즈하라는 오타니 계좌에서 450만 달러를 정말 아무도 모르게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라며 그의 허술한 계획에도 의구심을 표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서도 ‘오타니가 도박 스캔들에서 깨끗함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제목하에 ‘오타니 변호인 측은 그가 절도의 피해자이고, 이번 주까지 분실된 돈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오타니가 무죄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라고 지적하며 1970년 제정된 미국 은행비밀보호법에 따라 보통 송금 금액에 한도가 있으며 금융기관은 신분 확인과 서류 심사를 거쳐 계좌 소유자의 한도를 연장하거나 해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에 통화 거래 보고서(CTR)를 제출해야 하는데 사회보장번호나 운전면허증, 기타 정부 발행 문서와 같은 개인 식별 정보가 필요하다. 포브스는 ‘오타니가 450만 달러 송금 사실을 정말 몰랐다면 미즈하라는 사기 및 신원 도용과 관련된 추가 혐의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오타니의 법적 서류를 훔치거나 위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였고, 미즈하라가 해당 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렇게 큰 금액을 다른 사람의 계좌에서 수개월 동안 당사자 몰래 송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미국 금융 시스템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 뒤 ‘오타니가 계좌 잔고를 더 자주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오타니가 직접 돈을 보냈다는 것밖에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타니의 다저스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는 스포츠 도박을 허용하지 않는 12개 중 하나로 오타니의 연루가 드러날 경우 사법 처분을 받을 수 있는 문제다. 메이저리그 차원의 징계도 피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 규정 제21조 (d)(3)에 따르면 불법 도박업체 또는 불법 도박업체 대리인에게 베팅을 한 선수, 심판, 구단 또는 리그 관계자는 또는 직원은 커미셔너가 행위의 사실과 상황에 비춰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징계를 받게 된다고 명시돼 있다.
지난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 투수 재러드 코자트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다 걸렸지만 야구에 베팅하지 않아 출장정지 없이 벌금형으로 끝난 바 있다. 하지만 야구에 베팅했을 경우 최소 1년 자격 정지이고, 소속팀에 베팅했을 시에는 영구 제명을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