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오타니 쇼헤이가 입을 열었다. 26일(이하 한국시간) 11분 간의 성명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 줬다. “도박한 적 없다.” “대신 빚을 갚아준 적 없다.” “전혀 몰랐다. 모든 사실을 안 것은 개막전 뒤, 팀 미팅 이후다.”
이제까지 보도 내용과 별로 다른 점은 없다. 한두 가지 이상한 점은 있다. 우선은 통역 미즈하라 잇페이가 은행 계좌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럴 수 있다. 둘의 관계는 그만큼 신뢰가 깊었을 것이다. 사생활까지 모두 돕는 사이였다.
물론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자신의 계좌에서 거액이 빠져나간 것이 지난해 10월이다. 그런데 5개월 동안 그걸 몰랐다. 입금만 있고, 출금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오타니의 은행 계좌 아닌가. 거기서 잔액이 450만 달러(추정액)나 줄었는데, 그걸 몰랐다?
하긴. 그럴 수 있다. 연봉에, 광고료에. 워낙 큰 숫자가 적혔다면 티가 안 날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타니 아닌가. 은행 잔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야구에만 전념할 뿐이다. 이제까지 그의 행적을 볼 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 가지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사건을 최초 보도한 것은 LA타임스와 ESPN이다. 그중 ESPN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공개한 시간대별 취재 메모가 있기 때문이다.
ESPN은 불법도박업자를 취재하던 중 리스트에서 오타니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MLB 커미셔너 사무국과 오타니의 에이전트 네즈 발레로와 접촉했다. 양쪽 모두에게 답을 듣지 못했다. 개막전이 이틀 남은 18일(이하 한국시간)이다.
물론 다저스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곧바로 위기 대응팀을 꾸린다. 여기에는 외부에서 고용된 법률 대리인(변호사)도 포함된다. 그 변호사가 위기 대응팀의 대변인 역할을 맡아 ESPN의 취재에 응하게 된다.
이미 보도를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ESPN과 미즈하라 통역의 1차 인터뷰가 성사된다. 개막전 당일 오전이다. 미국에 있는 티샤 톰슨 기자와 서울의 미즈하라의 전화 통화는 약 90분간 이어진다. 이 자리에는 다저스의 위기 대응팀 대변인, 즉 법률 대리인이 함께했다. 3자 통화의 형식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미즈하라 통역이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밝힌다. 오타니와 관련된 것도 포함된다. ▶ 사정 얘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작년 9~10월 사이에 8~9번에 걸쳐 50만 달러씩 합계 450만 달러를 송금했다. 그 외에도 매우 구체적인 정황들을 ‘진술’했다.
그런데 하루 뒤 말이 바뀐다. 미즈하라 통역은 “오타니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계좌에서 돈을 뺀 것도 내가 직접 했다”고 번복했다. 그리고 다저스는 해고 통보와 함께, 거액 절도 혐의로 수사 기관에 넘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건이 꼬인 시점이 있다. 개막전이 끝난 다음이다. 밤 11시쯤 클럽하우스에서 미팅이 열렸다. 다저스 구단 고위층과 선수단이 참석한 자리다. 마크 월터 구단주가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미리 밝혔다.
이어 미즈하라 통역이 도박 중독을 고백했다.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은 “미즈하라가 도박 빚을 지게 됐고, 오타니가 갚는 걸 도와줬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부분은 ESPN을 비롯한 여러 매체가 선수단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오타니는 이때까지도 전혀 몰랐다는 주장이다. 심각한 미팅이지만, 영어로만 진행된 탓이다. 이상한 점을 느껴 호텔로 돌아와서 확인했다. “도박도, 송금도, 모두 그 때 들었다. 그런 취재가 있다는 것조차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론 다저스 쪽 해명도 비슷하다. 오타니와의 소통을 미즈하라 통역이 모두 독점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렵다. 미즈하라는 사건 당사자다. 위기 대응팀까지 꾸릴 정도로 비상 체제를 가동한 명문 구단이 조사 대상이자, 용의자를 통해 사실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당사자에게 확인조차 없었다는 것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적어도 오타니가 이의를 제기하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미즈하라의 말에 놀아났다. 다저스의 위기 관리팀 대변인도 그런 ESPN과 인터뷰를 듣고 있었다. 심지어 사장은 팀 전체가 참석한 회의에서 “오타니가 갚아줬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대신 할 사람이 없었나? 그럴 리가. 다저스의 서울 원정에는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이 3명 이상이었다. 미즈하라 외에도,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담당하는 소노다 요시히로, 현재 오타니와 함께하는 윌 아이어튼(예전 마에다 겐타 통역) 등이 동행했다. 그런데도 굳이 미즈하라만을 고집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게 모든 혼란과 오해, 억측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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