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라고도 하는 그라운드 안에서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장면이 잇따라 펼쳐졌다.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인 미국 MLB에서 한국인 선수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KBO리그로 복귀한 류현진(한화)를 향해 LG 선수들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예우했다.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2024 KBO리그 개막전 한화-LG전이 열렸다. 지난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LG와 12년 만에 한국 무대로 복귀한 류현진을 선발 투수로 앞세운 빅매치였다.
지난 2월말 류현진이 한화와 8년 총액 170억원의 역대 최고액 계약으로 전격 복귀한 이후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기간에 류현진을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드디어 개막전. 류현진은 2012년 10월 4일 대전 넥센전 이후로 4188일 만에 KBO리그 정규시즌 마운드에 올랐다.
1회말, LG 1번타자 박해민은 타석에 들어가며 마운드의 류현진을 향해 헬멧을 벗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경기 후 박해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사실 우리 선수들이 좀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주장) 지환이랑 현수 형이랑 동원이랑 얘기를 했는데, 한국을 빛내고 돌아오셨으니까 내가 선두타자이기도 하고, 내가 인사를 하기로 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박수했다. 정말 우리나라를 빛내줘서 감사하다. 이런 존경의 의미로 우리 선수들이 다 같이 얘기를 해서 인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회 박해민의 인사로 끝이 아니었다. 외국인 타자마저 류현진을 향해 예우를 다했다. 2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도 타석에서 헬멧을 벗고, 류현진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인사했다. 류현진이 빅리그에서 활약한 명성을 오스틴도 잘 알고 있다.
예우는 예우. 품격있는 웰컴 인사를 한 LG 타자들은 류현진을 괴롭히며 개막전 패배의 쓴 경험까지 선사했다. LG는 2회 2사 1루에서 박동원의 좌전 안타, 문성주의 유격수 내야 안타로 만루 찬스를 만들었고, 신민재가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때려 류현진에게 첫 실점을 안겼다.
2-2 동점인 4회 2사 1루에서 상대 2루수 포구 실책으로 1,3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1회 헬멧을 벗고 인사했던 박해민은 깨끗한 중전 적시타로 이날 결승타를 장식했다. 1회와 2회 두 차례 범타를 만회하는 적시타였다. 이후 박해민이 2루 도루까지 성공해 2사 2,3루가 됐고 홍창기가 2타점 적시타로 류현진을 향해 KO 펀치를 날렸다. 류현진은 김현수에게도 안타를 맞고, 결국 조기 강판됐다. 류현진은 3⅔이닝 동안 6피안타 3볼넷 5실점(2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톱타자 박해민은 류현진 상대로 결승타를 때리며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 3도루로 맹활약했다. 경기 후 박해민은 “제구력이 워낙 좋아서, 보더라인 끝으로 던지는 피칭이 대단하다. 빠른 공 뿐만 아니라 커브, 슬라이더. 또 좌투수들이 좌타자한테 체인지업을 잘 안 던지는데 체인지업까지 던지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한 투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4회 초구 직구를 때려 적시타를 만든 박해민은 “두 번째 타석에서 빠른 공을 하나도 안 던져서, (3번째 타석) 빠른 공이 올 거라고 예상을 하고 준비했다. 그리고 앞 타석에 변화구를 봤기 때문에, 빠른 공을 놓치지 말자고. 워낙 제구력이 좋으니까 카운트가 몰리면 불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좀 적극적으로 공략을 했던 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 2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데뷔 첫 해 다승(18승), 평균자책점(2.23), 탈삼진(204개) 3개 부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며 정규 시즌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수상했다. ‘괴물’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렸고, KBO리그를 평정하며 한국 최고의 투수로 올라섰다. 2012년까지 KBO리그에서 7시즌을 뛰며 통산 190경기 98승 5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류현진은 2012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에 진출했다. LA 다저스는 포스팅 금액으로 2573만7737달러33센트를 입찰해 류현진 영입 경쟁에서 승리했다. 류현진은 LA 다저스와 6년 총액 36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류현진은 2013년 빅리그 데뷔 첫 해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4위를 차지했다. 2014년에도 14승 7패 평균자책점 3.38로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첫 시련이 찾아왔다. 류현진은 2015시즌을 앞두고 왼쪽 어깨 관절와순 수술을 받았다. 재활 성공 확률이 낮은 어깨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1년 넘게 재활 프로그램을 수행하며 견뎠다. 2016년 7월 복귀전을 치렀으나 2016년 9월 팔꿈치 관절경 수술까지 받았다.
2017년과 2018년 점점 회복세를 보인 류현진은 2019년 다저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9경기에 등판해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2로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올스타에 처음 선정돼, 올스타전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선정됐다.
FA가 된 류현진은 2020시즌을 앞두고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 FA 계약에 성공했다. 코로나19로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2020년 12경기에서 5승 2패 평균자책점 2.69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 3위를 차지했다. 2021년 31경기 14승 10패 평균자책점 4.37을 기록하며 빅리그에서 4번째 14승 시즌을 만들었다.
그러나 2022년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이후 약 1년 2개월의 재활 기간을 거쳐서 지난해 8월 빅리그에 복귀했다. 2023시즌 11경기(52이닝) 3승 3패 평균자책점 3.46으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후 다시 FA가 된 류현진은 빅리그 잔류를 고민하다 친정팀 한화로 전격 복귀를 결정했다. 한화는 류현진에게 8년 총액 170억원 KBO 역대 최고액 계약을 안겨줬다. 빅리그 통산 186경기(1055.1이닝) 78승 48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27의 성적을 남겼다.
/orang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