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마이너리그행이었다.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 출신 우완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35)이 필라델피아 필리스 개막 로스터에서 탈락했다.
필라델피아는 지난 23일(이하 한국시간) 투수 뷰캐넌, 내야수 겸 외야수 스캇 킹어리, 외야수 데이비드 달, 조던 루플로, 칼 스티븐슨, 포수 캠 갤러거, 아라미스 가르시아 등 7명의 선수들을 마이너리그 캠프로 내려보냈다.
오는 2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로스터 정리에 들어간 필라델피아는 예상대로 뷰캐넌을 제외했다. 마이너 계약 후 초청선수로 스프링 트레이닝에 합류한 뷰캐넌으로선 시범경기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범경기에서 선발과 구원으로 2경기씩, 총 4경기에 등판했지만 평균자책점 5.63에 그쳤다. 8이닝 동안 안타 13개를 맞고 볼넷 3개를 허용했다. 삼진 12개를 잡았지만 WHIP 2.00, 피안타율 3할7푼1리의 성적으로 개막 로스터에 드는 건 무리였다.
지난달 27일 보스턴 레드삭스전 선발로 시범경기 첫 등판에 나선 뷰캐넌은 2이닝 4피안타 1볼넷 2탈삼진 2실점으로 불안하게 시작했다. 이어 3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 다시 선발등판, 2이닝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조금 나아졌지만 1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구원으로 2⅔이닝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 난조를 보였다.
마지막 등판이 된 2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은 구원으로 나서 1⅓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 호투했지만 평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뷰캐넌은 필라델피아 산하 트리플A 리하이밸리 아이언피그스에서 시즌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경쟁이었다. 필라델피아는 잭 휠러, 애런 놀라, 레인저 수아레즈, 타이후안 워커, 크리스토퍼 산체스로 5인 선발 로테이션이 확실한 팀이다. 여기에 대체 선발 자원으로 스펜서 턴불(1년 200만 달러), 콜비 알라드(1년 100만 달러) 등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합류한 투수들도 있었다.
알라드는 시범경기에서 3경기(2선발·5⅔이닝) 1승 평균자책점 3.18 탈삼진 6개를 기록했지만 팀 내 선발 자원이 넘치다 보니 마이너 옵션을 통해 트리플A에 내려갔다. 롱릴리프 자리도 턴불의 몫이 되면서 뷰캐넌은 마이너 강등을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뷰캐넌으로선 한국을 떠난 게 악수가 되는 모양새. 뷰캐넌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4년간 통산 113경기에 등판, 699⅔이닝을 던지며 54승28패 평균자책점 3.02 탈삼진 539개로 활약했다. 이 기간 KBO리그 최다 이닝, 다승 공동 1위, 최다 퀄리티 스타트(80회), 평균자책점·탈삼진 2위로 톱클래스 성적을 냈다.
에이스로서 남다른 승부욕과 자기 관리로 팀 내 젊은 선수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존재였다. 삼성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뷰캐넌에게 2년 계약을 제시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외국인 선수 다년 계약이 이뤄진 적이 없는 KBO리그에서 파격 대우를 했지만 금전적인 면이 맞지 않았다.
새 외국인 투수 코너 시볼드, 내야수 데이비드 맥키넌을 신규 상한액 100만 달러를 채워 영입한 삼성은 뷰캐넌에게 쓸 수 있는 올해 최대 연봉이 240만 달러였다. 내년에는 250만 달러까지 제시가 가능했지만 시볼드와 맥키넌이 좋은 성적을 냈을 경우 재계약도 대비해야 했다. 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뷰캐넌에게 맥시멈 연봉을 맞춰주기 어려웠고, 협상이 지지부진한 끝에 결렬됐다. 삼성은 뷰캐넌과 재계약을 포기하며 우완 데니 레예스를 영입했다.
뷰캐넌이 보장된 다년 계약을 뿌리친 데에는 미국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당초 신시내티 레즈가 뷰캐넌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FA 시장에서 검증된 선발 프랭키 몬타스를 영입한 뒤 기류가 바뀌었다.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뷰캐넌은 친정 필라델피아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9년 만에 메이저리그 재도전에 나섰지만 개막 로스터가 불발돼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뷰캐넌이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선 보류권을 갖고 있는 삼성에 자리가 나야 한다. 삼성의 새 외국인 에이스로 낙점된 코너는 23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개막전에 선발등판, 6이닝 4피안타(1피홈런) 1사구 8탈삼진 2실점(1자책) 호투로 첫 단추를 잘 꿰었다. 최고 152km 강속구와 스위퍼에 가까운 슬라이더로 위력을 발휘했다. 삼성은 24일 KT전에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레예스를 내세운다. 코너에 비해 물음표가 붙은 레예스의 투구에 따라 뷰캐넌의 올 시즌 운명도 바뀔 듯하다. 삼성은 뷰캐넌과 연락을 유지하면서 만약의 경우도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