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오열사’, ‘투지의 화신’, 그리고 ‘원클럽맨’이라는 칭호까지 모두 쓸 수 없는 칭호가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김미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및 대리 처방 혐의를 받은 오재원의 구속 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오후 3시 50분 즈음 포승즐에 묶인 채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오재원은 “마약을 언제부터 투약했냐”, ”증거를 숨기기 위해 탈색과 제모를 했냐”, ”수면제를 대리처방받은 것을 인정하냐”라는 취재진에 질문에 침묵을 지킨 채 법원으로 이동했다. 영장실질실사를 마친 뒤 오재원은 다시 호송차에 올랐다.
경찰은 앞서 지난 10일 오재원과 함께 있던 한 여성의 신고로 마약 투약 혐의로 임의동행해 조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오재원과 여성 모두 간이 시약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귀가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후 추가 단서를 확보했고 19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오재원을 체포하고 오재원의 야구 아카데미인 볼야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10일 체포 당시 혐의를 극구 부인했던 오재원은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2일 자정을 넘은 시간, 구속영장 발부가 확정됐고 오재원은 구치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받게 됐다. 김 부장판사는 오재원에 대해 “도주할 우려가 있다”라면서 구속 사유를 밝혔다.
오재원은 2003년 신인드래프트 2차 9라운드 72순위로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경희대를 졸업한 뒤 2007년에 입단했다. 2022년까지 16시즌 동안 ‘원클럽맨’으로 활동했다. 통산 1571경기 타율 2할6푼7리 1152안타 64홈런 521타점 678득점 289도루의 기록을 남겼다. 2011년 46개의 베이스를 훔치며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다. 두산 왕조의 주축으로 활약했고 이 기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도 3번이나 거머쥐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금메달), 2015년 WBSC 프리미어12(우승),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태극마크와도 인연이 깊었다. 특히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9회 선두타자로 등장해 안타를 치고 나가며 대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안타를 치고 출루하면서 일본 덕아웃을 향해 포효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이 장면으로 ‘오열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울러 9회 돌아온 2사 만루 타석에서는 큼지막한 타구를 치고 ‘빠던’을 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지만 결국 일본 중견수의 호수비에 막히며 좌절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부터 파이팅 넘치고 센스 있는 플레이로 두산 팬들에게는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과도한 승부욕과 거친 플레이 스타일로 두산 외 다른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투지의 화신’이라는 말은 두산 팬들에게는 최고의 수식어였지만 타팀 팬들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이기도 했다.
2014년 박찬호가 인천 아시안게임 해설위원으로 활약할 당시 오재원을 향한 말을 다시 끄집어냈다. 박찬호는 당시 “나를 힘들게 했던 선수다. 현역 시절 풀카운트 승부였는데 오재원이 땅볼을 쳤다. 발에 공이 맞았다고 우겨서 파울로 인정됐다. 안 맞은 공이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에 오재원이 “박찬호의 발언을 듣고 당시 잠을 못잤다”라고 말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과거의 악연을 들추면서 박찬호를 공개 저격했고 많은 비난 여론과 마주했다.
오재원은 당시 “저는 코리안특급(박찬호를 의미)을 너무 싫어한다. 이제 저는 일반인이니까 이야기할 수 있다”라면서 “우리나라를 정말 빛냈고 '코리안 특급'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창시자다. 그전에 전 국민이 새벽에 일어나서 그분을 응원하고 그랬던 감사한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이유로 박찬호가 해설위원 당시 했던 멘트들을 끄집어냈다. 그는 “한 번씩 해설하면서 바보로 만든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해설을 할 때는 당연히 말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아닌 걸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설은 제3자를 위해 하는 거다. 해설할 때 청취자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설할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아쉬웠다’ 혹은 ‘내가 봤을 때’ 이런 식으로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무책임한 말들의 향연으로 인해 오해가 쌓이고 그게 이미지가 되어 버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내 야구 팬들의 비난 여론에 휩싸였고 오재원은 곧바로 해명했다. 그는 “하루동안 회초리를 맞았고 기분이 나쁘셨을 분들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생각하다”면서 “'국민'이란 단어에 실망하고 기분 나쁘셨을 분께 다시 한번 송구의 말을 전해드린다”고 했다.
그는 “그 단어의 원래 의도는 나 역시 박찬호 선수를 우상으로 보고 자랐다. 아버님, 할아버님도 새벽잠을 설치시면서 응원했다. 지금 KBO에 있는 선수들 뿐만 아니라 그 선수들의 부모님들까지 박찬호 선수를 응원하셨을 게 분명하다. 그때 당시 영웅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대스타, 대선배가 하는 말은 보통 나(오재원) 같은 사람의 말보다 몇 백, 몇 천배 큰 울림이 있을 것이고 동조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 비난 대신 따로 불러 조언을 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견해가 빠진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오재원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 날카로운 시선은 계속됐다. 이후 삼성 양창섭과 SSG 최정의 빈볼 논란 때 양창섭을 향해서 원색적인 비판을 중계방송 상에서 하면서 논란을 불러 일어키기도 했다. 이후 오재원은 SPOTV 해설위원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결국 현재 드러난 마약 투약 혐의와 시점 등을 보면 은퇴 후 2년 동안의 이런 구설은 마약 투약 함께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16년 간 원클럽맨으로서 쌓아온 커리어도 이제 추문으로 얼룩지게 됐다.
오재원은 2022년 10월 8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두산 구단의 배려 아래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선수단 전체가 경기 전 오재원 은퇴 기념 티셔츠를 착용했고, 구단으로부터 은퇴기념 사진 및 유니폼 액자, 꽃다발을 받았다. 전광판에서 오재원의 16년 프로생활이 정리된 영상이 송출된 가운데 오재원은 팬들 앞에서 직접 은퇴사를 밝히는 시간까지 가졌다.
당시 오재원은 “은퇴를 결심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다. 남들보다 2~3배 더 했다고 자부한다. 나보다 연습량이 많고 열심히 하는 선수는 김재환 1명뿐이다. 2009년부터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하고 마지막에 성적이 좋지 않은 부분은 사과하고 싶다”라고 커리어에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말이 가장 많이 하고 쉬운 표현이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런 모습을 조금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셨던 ‘최강 10번타자’ 두산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6년 원클럽맨의 커리어는 이렇게 마약으로 얼룩졌다.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이상, 오재원에게 여죄를 남기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오재원에게 더 이상 야구인으로 붙을 수식어는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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