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경기 최초의 홈런은 무키 베츠(32·LA 다저스)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부상으로 전기차까지 받은 베츠가 한국에서 최정상급 메이저리그 선수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같은 팀 오타니 쇼헤이를 능가하는 퍼포먼스로 한국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베츠는 지난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개막 두 번째 경기에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 홈런 포함 5타수 4안타 6타점 2득점 1볼넷으로 5출루 경기를 펼쳤다. 다저스는 무려 33안타를 주고받은 난타전 끝에 11-15로 졌지만 베츠의 활약상은 강렬했다.
샌디에이고 선발 조 머스그로브 상대로 1회 첫 타석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2회 1사 1루에서 좌전 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샌디에이고 3루수 타일러 웨이드를 맞고 타구가 좌측으로 튀었고, 좌익수 주릭슨 프로파가 3루로 송구한 사이 베츠가 과감하게 2루까지 파고들며 1회 5실점한 다저스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3회 2사 1,2루에선 좌측 펜스 상단을 직격하는 2타점 2루타를 쳤다. 좌완 톰 코스그로브의 2구째 몸쪽에 붙은 90.8마일(146.1km) 포심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큼지막한 타구를 생산했다.
결국 5회에 서울시리즈 첫 홈런을 신고했다. 샌디에이고 우완 마이클 킹의 5구째 몸쪽 94.4마일(151.9km) 싱커를 잡아당겨 좌중간 담장 밖으로 넘겼다. 타구 속도 101.5마일(163.3km), 비거리 400피트(121.9m), 발사각 29도. 한국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경기 최초 홈런으로 이번 서울시리즈를 후원한 현대자동차가 1호 홈런 부상으로 내건 전기차 ‘아이오닉5’ 주인공이 되는 행운까지 누렸다.
7회 볼넷으로 또 출루한 베츠는 8회 2사 2,3루에서 샌디에이고 마무리투수 로베르트 수아레즈의 5구째 100.3마일(161.4km)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2타점 적시타로 연결했다. 샌디에이고 2루수 잰더 보가츠가 몸을 날렸지만 글러브를 맞고 타구가 옆으로 튀었고, 그 사이 베츠가 2루까지 점령했다. 베츠의 활약으로 다저스는 11-12, 턱밑까지 추격했다.
9회 매니 마차도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고 다저스는 11-15로 패했지만 홀로 6타점을 폭발한 베츠의 원맨쇼는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경기 후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도 “베츠는 아주 훌륭했다. 모든 면에서 환상적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격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고, 베이스러닝도 좋았다. 우리가 필요로 한 모든 것을 해냈다”고 칭찬했다.
그 전날(20일) 개막전에도 4타수 2안타 1타점 1볼넷으로 활약한 베츠는 서울시리즈 2경기를 타율 6할6푼7리(9타수 6안타) 1홈런 7타점 2볼넷 출루율 .727 장타율 1.111 OPS 1.838로 마무리했다. 서울시리즈에서 다저스 이적 신고식을 치른 오타니도 타율 3할(10타수 3아타) 2타점 1도루를 기록했지만 베츠만큼 강렬하진 않았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데뷔전에서 초반부터 5실점한 다저스는 비록 패배를 당했지만 베츠가 왜 지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지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서울시리즈 1호 홈런과 함께 전기차까지 받은 베츠는 경기 후 따로 아이오닉 모형을 들고 기념 촬영도 했다.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어보인 베츠이지만 “멋지지만 팀이 졌으니 의미가 없다. 승리해야만 행복하고, 환호할 수 있다”며 팀 패배에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가공할 만한 타격과 공격적인 주루만큼 유격수로서 수비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외야수로 골드글러브 6회 수상에 빛나는 베츠는 고관절 부상 여파로 올해 2루수를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받은 개빈 럭스가 시범경기 때 수비 불안을 노출하자 그와 자리를 맞바꿔 유격수로 시즌을 맞이했다.
고교 때까지 주 포지션이 유격수였고, 지난해에도 16경기(12선발·98이닝)를 경험했지만 그래도 부담이 큰 포지션이다. 다른 포지션에서 뛰다 30대가 넘어 풀타임 유격수가 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베츠는 팀을 위해 유격수 변신을 받아들였고, 개막 2경기에서 아직 어색하지만 특유의 운동 능력으로 범위를 커버했다.
베츠는 “수비적으로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난 스스로에게 매우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오늘 몇 개의 타구를 놓쳤는데 이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나 자신에게 위대함을 기대한다”며 유격수 수비까지 욕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