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3회 초, 2사 후에 주자는 없다. 오타니 쇼헤이의 두 번째 타석이다. “존경하는 선수와의 대결이어서 괴로웠다.” 경기 후 밝힌 심정이다.
마운드에는 일본 시절 소속팀 니혼햄 화이터즈의 선배 투수다. 등번호(11번)를 물려받은 특수 관계다. 다르빗슈 유도 “이상한 마음이었다”고 고백했다. (20일 고척 스카이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LA 다저스 개막전)
그러나 승부는 승부다. 5구째 투심 패스트볼(95마일)에 정확히 반응했다. 우익수 쪽으로 출구 속도 112마일짜리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들어낸다. 다저스 유니폼으로 친 첫 안타다. 1루에서 독특한 동작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다음 프레디 프리먼 타석 때다. 이번에는 선배의 허점까지 파고든다. 다르빗슈는 아예 주자를 포기한 투구폼이다. 다리를 높이 들고 던지는 사이 2루를 훔친다. 한참 여유 있는 세이프다.
거기서 처음 홈팀 유격수와 접점이 생긴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뭔가 말을 건넨다. 팬들과 TV 중계석에서 구순술(입모양을 읽어내는 기술)을 발휘한다. 모두가 추정한 문장은 한국어였다. “안녕하세요.”
경기 후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사실이다. “오타니가 우리말로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김하성이 웃으며 밝힌 얘기다.
분명히 이번 서울시리즈의 주인공은 ‘어썸 김’이다. 적어도 (작년 여름) 기획 단계에서는 그랬다. MLB가 처음 한국에서 치르는 공식 경기 아닌가. 그것도 개막전이다. 아시아 최초의 골드글러브 수상자가 주연이 되는 게 당연하다. 홈 팀은 파드리스, 파트너로 다저스가 지정됐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사상 최고액 선수의 캐스팅이다. 일단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이다. 그런데 계속 이슈가 커진다. 전격적으로 결혼을 발표하더니, 서울행 전세기 앞에서 신부까지 공개했다. 극한의 화제성을 뿜어낸다.
대중의 눈과 귀는 한 곳으로 집중된다. 모든 카메라와 마이크가 그곳으로 쏠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자가 생긴다. 다른 출연자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김하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사자는 섭섭할 법하다. 그런데 담담하다. “사실 스포츠에서 MVP급 선수가 오면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어차피 이곳 출신이니 호스트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팀 파드리스에도 훌륭한 동료들이 많다. 응원해 주시길 기대한다.” (김하성)
오타니의 SNS는 현재 서울시리즈 모드다. 게시물에 자주 태극기가 등장한다. 메시지는 한글로 달린다. 인터뷰 때도 한국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어제(20일) 경기 후에도 보도진을 향해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며 완벽한 발음으로 인사를 전했다.
김하성의 말이 맞다. 스포츠에서 공평함은 없다. 승부나, 인기나. 기울기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비록 상대적인 관심은 덜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한 시리즈다. 그래도 자신이 뛰던 곳 아닌가. 혼자 개막 준비도 쉽지 않다. 소개, 홍보, 손님맞이, 시구자의 포수 역할까지. 호스트의 일이 한둘이 아니다. 빛도 나지 않는 몫을 묵묵히 해내야 한다.
그걸 모를 리 없다. 자신도 비슷한 처지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 공감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베이스 위에서의 따뜻한 미소는 수고에 대한 깍듯함이다. 서툰 한국어 “안녕하세요”에는 격려와 존중이 담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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