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에게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실력 그리고 훌륭한 인품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는 의미다.
결국 오타니도 사람이었다. 오타니는 20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 투어 서울 시리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개막전에서 멀티히트 달성은 물론 타점과 도루를 기록했지만 ‘누의 공과’로 아웃되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2번 지명타자로 나선 오타니는 5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로 5-2 승리에 이바지했다. 17일 키움 히어로즈, 18일 한국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으나 정규 시즌 개막전에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1회 유격수 땅볼로 아쉬움을 남겼던 오타니는 3회 샌디에이고 선발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우전 안타를 때려낸 데 이어 2루를 훔치는데 성공했다. 5회 3루 땅볼에 그친 오타니는 4-2로 앞선 8회 1사 1,2루서 좌전 안타로 2루 주자 개빈 럭스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이적 후 첫 타점까지 신고했다.
이후 1사 1,2루에서 프레디 프리먼의 큼지막한 타구가 외야로 날아갔으나 우익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안타성 타구에 2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친 오타니는 타구가 잡히는 것을 보고서 당황한 나머지 다시 2루를 밟지 않고 1루로 돌아가는 바람에 누의 공과로 아웃됐다.
과거 채태인(채태인타격연구소 대표)의 ‘채럼버스’를 떠올리게 하는 주루 미스였다. 오타니는 경기 후 “완전히 나의 실수였다. 반성하며 내일 경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5월 3일 프로야구 사직 삼성-롯데전. 채태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하루였다. 당시 삼성의 6번 1루수로 나선 채태인은 2회 무사 1루에서 유격수 땅볼을 쳤고 선행 주자 라이언 가코가 2루에서 포스 아웃되며 1루 주자로 나갔다. 채태인은 신명철의 우중간 펜스 향하는 타구에 2루를 밟고 지나간 뒤 뜬공으로 보고 다시 1루로 귀루하려 했다.
그러나 타구가 중견수 전준우와 우익수 손아섭 사이에 떨어지자 채태인은 1루로 가던 길을 멈추고 황급히 마운드와 2루 사이 잔디를 가로질러 3루로 뛰었다. 2루 베이스는 보지도 않은 채였다.
이에 롯데 2루수 조성환이 공을 넘겨받아 공과 어필로 채태인을 태그아웃시켰다. 신명철은 우익수 땅볼로 처리됐다. 이후 채태인은 '채럼버스', '채단경로'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언젠가 채태인에게 현역 시절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묻자 "2루를 안 밟은 게 가장 후회된다"고 털어놓았다.
오타니가 ‘누의 공과’로 아웃됐다는 소식을 접한 채태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역시 야구 천재는 엉뚱한 면이 있다. 야구 천재는 다르긴 다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오타니라고 2루를 밟아야 한다는 걸 몰랐겠는가. 사람이 급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감싸안았다. 채태인은 또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 오타니 덕분에 제가 회자되어 영광이다. 오타니의 팬으로서 항상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