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11년을 있었다고 하는데…고생했고, 대단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9전 전승 금메달 주역인 ‘국민 타자’ 이승엽(48) 두산 베어스 감독과 ‘괴물 투수’ 류현진(37·한화 이글스)이 모처럼 그라운드에서 마주했다. 지난 18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두산과 한화의 2024 KBO리그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앞두고 이승엽 감독과 류현진의 만남이 이뤄졌다.
홈팀 한화 선수단의 훈련이 끝난 뒤 류현진이 1루 덕아웃에서 러닝을 시작하더니 우측부터 좌측까지 외야를 빙둘러 3루 덕아웃 쪽으로 뛰어갔다. 구장에 도착한 이 감독과 만난 류현진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 감독과 류현진은 배팅 케이지 뒤쪽에서 30분 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회포를 풀었다.
두 사람이 야구장에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이 감독이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마친 뒤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하고,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이었던 2012년 이후 무려 12년 만이다. 비시즌 행사장에서 몇 번 만나긴 했어도, 서로 유니폼을 입은 채 야구장에서 얼굴을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승엽과 류현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두 이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금메달을 합작했다. 당시 류현진은 예선 캐나다전 9이닝 127구 5피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1-0 완봉승을 거두더니 결승 쿠바전에서 8⅓이닝 122구 5피안타 2볼넷 6탈삼진 2실점으로 금메달 경기 승리투수가 됐다. 이 감독은 준결승 일본전에서 8회 극적인 결승 투런 홈런을 터뜨린 뒤 결승 쿠바전에도 1회 선제 결승 투런 홈런으로 해결사 역할을 했다.
한국야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이 감독과 류현진. 세월이 흐른 만큼 두 사람의 위치와 커리어도 많이 바뀌었다.
이 감독은 2017년을 끝으로 삼성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난해부터 감독으로 변신해 두산을 이끌고 있다. 류현진은 LA 다저스,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거치며 메이저리그에서만 11년 커리어를 보냈다. 류현진보다 더 오랜 뛴 한국인 빅리거는 박찬호(17년), 추신수(16년) 2명뿐. KBO리그 출신 선수 중에선 류현진이 가장 롱런했다. 20대 초반 젊은 괴물 투수가 이제는 30대 중후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됐다.
이 감독은 류현진과 나눈 대화에 대해 “11년간 외국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생했다는 말을 해줬다. 메이저리그에서 11년을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을 뛰고 돌아온 경험이 있는 이 감독이지만 “일본과 미국은 무대가 완전히 다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투수 출신이다”며 류현진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어 이 감독은 “현진이한테 한 가지만 얘기해줬다. 재미있을 거라고 했다. 미국도 재미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선후배들이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뛰는 KBO는 굉장히 재미있는 리그다. 12년 전에도 뛰어봤으니 다 알 것이다”며 오랜만에 KBO리그에 돌아온 류현진이 이곳에서만의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류현진의 복귀를 환영하지만 상대팀 감독 입장에선 마냥 반길 순 없다. 류현진 투구 영상을 봤다는 이 감독은 “여전히 잘 던지더라”며 “한화가 무섭다. 왜 왔지?”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웃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류현진도 류현진이지만 그와 같이 운동하고, 연습하면서 던지는 방법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젊은 선수들에겐 배울 게 많을 것이다. 한화가 굉장히 강해질 듯하다”며 류현진 효과로 한화 젊은 선수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
류현진은 시범경기에서 2차례 등판, 모두 선발승을 거두며 9이닝 9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3실점 평균자책점 3.00으로 컨디션 점검을 마쳤다. 직구 최고 구속을 148km까지 끌어올렸고, 특유의 커맨드는 명불허전이었다. 주무기 체인지업 제구가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커터, 커브라는 또 다른 결정구들이 있다.
류현진 효과 속에 전체적인 뎁스가 눈에 띄게 좋아진 한화는 시범경기에서 안정된 투타 밸런스를 보이며 5승3패1무로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4연승을 달리다 18일 두산전에서 0-2로 패하며 연승 행진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