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시범경기에 지금껏 이런 팀은 없었다. 8전 전승으로 무패 행진을 벌이고 있는 두산 베어스가 KBO리그 시범경기 역대 최초로 9전 전승까지 노린다.
두산은 지난 18일 대전 한화전 시범경기에서 2-0으로 승리, 8전 전승을 달렸다. 그 전날(17일) 문학 SSG전 승리로 공동 1위를 확보한 두산은 19일 한화전 마지막 경기에 관계없이 시범경기 단독 1위를 확정했다.
두산의 시범경기 1위는 1983년(4승1패 승률 .800), 1990년(3승1패 승률 .750·공동 1위), 1994년(5승1패 승률 .833), 2000년(6승3패1무 승률 .667·드림리그 1위), 2014년(4승2패5무 승률 .667)에 이어 역대 6번째로 10년 만이다.
시범경기 성적이 정규시즌에 그대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8전 전승, 무패 행진으로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팀 평균자책점(2.50), 타율(.279) 모두 1위로 투타 밸런스가 좋다.
1983년 처음 시작된 KBO 시범경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총 40번 치러졌다. 이 중 무패로 1위를 차지한 팀은 1995년 롯데(5승1무), 1999년 한화(5승)가 있었다. 1995년 롯데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9년 한화는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1995년에는 지금처럼 무승부를 승률 계산에서 버리지 않고 1무를 각각 0.5승, 0.5패로 더한 뒤 게임수로 나누던 시절이라 승률은 9할1푼7리로 처리됐다. 시범경기 승률 100% 1위는 1999년 한화가 유일한데 두산이 19일 경기를 승리하거나 비기면 역대 최다승 무패 1위 팀이 된다.
물론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범경기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87년 해태, 1992년 롯데, 1993년 해태, 1992년 롯데, 1998년 현대, 1999년 한화, 2002년 삼성, 2007년 SK 등 7차례가 있었다. 2001년부터 시범경기 1위(공동 포함)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도 60.0%(12/20)로 낮지 않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한 게임도 이기려고 한 게임이 없다. 순리대로 선수들이 순번대로 나갔고, 주전들도 2~3타석 치고 쉬면서 플랜대로 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페이스를 빨리 올린 것 같다. (타석, 이닝이 제한적인 시범경기의) 적은 기회 속에서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선수들이 준비를 잘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한화전에서 연타석 홈런으로 승리를 이끈 포수 양의지도 “호주 스프링캠프 때부터 팀 전체가 열심히 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타격 쪽에선 감독님, 코치님들 모두 작년에 안 좋았던 것을 알기 때문에 훈련을 많이 했다.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타석에서 과감하게 스윙을 돌리다 보니 결과도 좋고, 대량 점수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부진했던 ‘거포’ 김재환이 시범경기에 타율 4할1푼2리(17타수 7안타) 1홈런 6타점 6볼넷 5삼진 OPS 1.271로 부활 조짐을 보이는 것이 크다. 이승엽 감독도 김재환에 대해 “완벽하게 시즌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다. 2년간 하지 못한 것을 2024년 몰아서 하면 좋겠다”며 “이전에는 타구 방향이 우측에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밀어서 치는 홈런이나 센터 앞 안타로 나온다. 수비 시프트 제한으로 작년 같은 경우 땅볼이 됐을 타구가 안타가 되고 있다. 모든 면이 김재환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되지 않나 싶다”고 기대했다.
투수 쪽에서도 특급 신인 김택연을 비롯해 5선발을 확정한 김동주, 불펜의 박신지, 박정수, 이병헌, 김민규, 최종인 등 젊은 투수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양의지는 “조웅천 코치님이 오셔서 좋아졌다. 시범경기를 하면서 어린 투수들과 (배터리를) 많이 해봤는데 기량이 많이 늘고, 구종도 다양해졌다. 좋아진 친구들이 많아 깜짝 깜짝 놀란다. 겁없이 과감하게 던지다 보니 볼넷도 많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시범경기 9이닝당 볼넷 허용(2.6개)도 두산이 가장 적다.
2015~2021년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로 ‘왕조’ 시대를 보낸 두산은 2022년 9위로 떨어졌다. 이승엽 감독이 부임한 지난해 5위로 가을야구 턱걸이를 했지만 왕조 부활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올해도 시범경기 시작 전에는 중위권 전력이란 시선이 지배적이었지만 8전 전승 행진으로 두산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시범경기 초반이었던 지난 12일 이숭용 SSG 감독이 “올해 LG, KT, KIA를 3강으로 보고 있는데 난 두산이 강할 것 같다. 우승 후보라는 생각이 든다”고 콕 집어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 이후 5경기를 더 이기면서 발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시범경기라도 계속 이기면서 좋은 흐름으로 시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양의지도 “시범경기에서 안 좋으면 불안하게 시즌을 들어간다. 컨디션 좋게 들어가면 선수들의 개막전에 임하는 자세가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다. (시범경기 1위라고 해서) 안 좋은 것보다는 지금 잘하고, 계속 잘하면 된다. 꾸준하게 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두산은 19일 한화전에 우완 김민규를 선발투수로 내세워 시범경기 역대 최초 9전 전승 피날레를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