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장마다 다른 것 같다.”
KBO는 대변혁의 시대에 돌입해 있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피치클락, 수비시프트 제한 등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올해 시범경기부터 활용하고 있다. 현재 프로야구에서 가장 화두인 ABS는 시범경기부터 시작해 올해 정규시즌에 전면 적용한다. 피치클락과 그에 따라오는 견제 제한 등 투구판 이탈 횟수 제한 규정은 전반기까지 시험적용을 한 뒤 면밀히 검토한 뒤 추후 적용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불필요한 경기 지연을 피하고 경기시간 단축을 위한 피치클락(주자 없을 때 18초, 주자 있을 때 23초)의 경우 현장에서 일부 반발이 일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과도기에 들어서 있다. ABS의 경우 비교적 잡음 없이 연착륙하는 듯 했다. 사람이 판정을 내리지 않고 KBO가 측정한 스트라이크존을 기준으로 기계가 판정을 내린다. 감정 개입 없이 담백하게, 일관적으로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과 선수 간의 감정 소모도 사라지고 논란, 반박의 여지도 없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그리고 지난 4년 간 퓨처스리그에서 이론을 현장에 적용했고 과도기를 거치고 수많은 피드백을 얻은 끝에 한국판 ABS존을 만들었다. KBO는 2020년부터 4년간 퓨처스리그 ABS 시범 운영을 거쳐 기술적 안정성을 높여왔다. 이후 구단 운영팀장 회의, 감독 간담회, 자문위원회와 실행위원회, 이사회 의결을 거쳐 2024시즌 도입을 최종 결정했다.
ABS가 판단하는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 기준은 각각 선수 신장의 56.35%, 27.64%로 설정하며, 중간면과 끝면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좌우 기준은 홈플레이트 크기(43.18cm)에 좌우 각 2cm 확대 적용한 총 47.18cm로, 중간면에서 1번 판정한다. 이는 심판과 선수단이 인식하고 있는 기존의 스트라이크 존과 최대한 유사한 존을 구현하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
KBO는 ABS존을 설명하면서 “ABS 도입으로 양 구단이 100% 일관성 있는 스트라이크 존 판정 기준을 적용 받을 수 있어 공정한 경기 진행이 가능해지며, 정확성은 ABS 도입 이전 주심의 91% 수준에서 95~96% 이상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KBO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치른 시범경기 19경기에서 99.9%의 추적 성공률을 보여줬다고 발표했다. 100%가 아닌 이유는 중계 와이어 카메라가 추적 범위를 침범해서 투구 추적에 실패한 사유였다고 전했다.
투수와 타자 모두 저마다 ABS가 설정한 존을 제대로 파악하는 과도기의 기간으로 볼 수 있지만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논란과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ABS 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하지만 ABS 존재의 이유, 근간을 뒤흔드는 루머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ABS존이 구장마다 다르다는 것. 현재 KBO가 세팅한 ABS존은 각 구장마다 설치된 3대의 카메라가 구현하는 센서로 홈플레이트 등 구장 정보와 변수들의 위치 정보를 추적하고 계산해서 홈플레이트 기준의 일정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구장마다 설치된 카메라의 위치가 다르기에 ABS존이 미세하게 다른 것 같다는 의견이 현장에서 돌고 있다. KBO가 도입한 제도들에 적극 찬성하는 감독인 NC 강인권 감독은 지난 15일 창원 LG전에서 ABS존 자체가 구장마다 다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강 감독은 “ABS가 어떨지 아직 가늠이 잘 안된다. 구장마다 ABS를 판정하는 카메라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구장마다 편차가 있는 것 같다. 우리 홈 구장에서는 몇경기를 계속 했으니까 선수들이 적응한 것 같은데, 다른 구장을 갔을 때 또 어떻게 달라질지 그 부분도 한 번 지켜봐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SSG 김광현도 비슷한 취지로 ABS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여기에 12년 만에 KBO로 돌아온 류현진도 구장마다 ABS존이 다를 수도 있다는 루머에 불을 지폈다. 류현진은 지난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6피안타 무4사구 6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정규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치른 최종 리허설을 무사히 마쳤다.
류현진은 그동안 자체 청백전과 지난 12일 시범경기 첫 등판 모두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피칭을 했다. 홈구장 외에 다른 구장에서 ABS를 경험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차이를 느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구장마다 조금씩 스트라이크존이 다른 것 같다. 선수들이 그것을 빨리 캐치를 해야할 것 같다”라면서 “지난 등판보다 오늘 높은 쪽 존에 스트라이크가 많이 선언이 된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활용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원하는 코스에 공을 집어넣을 수 있는 커맨드가 뛰어난 류현진이 영리한 피칭을 한 것이지만, ABS 제도 자체를 놓고 보면 일관성 논란에 불을 지피는 상황들이었다. KBO가 쓰는 9개 구장마다 ABS존이 다르다는 말이 현실이라면 제도 자체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일관적인 판정을 하자고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의 취지 자체가 퇴색되는 의혹들이 현장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사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다. 스트라이크 존 자체가 타자의 신장에 따라서 설정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KBO도 이를 제대로 반영했다. 타자의 신체적 특성을 파악해서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했고 그에 맞춰서 일관적인 판정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정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헷갈릴 만하지만 본래의 야구 규정에도 스트라이크존은 타자의 신장에 따라 설정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KBO 관계자는 “가장 우선 순위는 똑같은 존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기술적으로도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구장마다 카메라의 위치, 높이가 다르더라도 그에 맞게 카메라 각도를 정밀하게 계산해서 조정하기 때문에 ABS존은 전 구장이 동일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이러한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는 것. KBO도 최근 현장에서 제기하고 있는 ‘구장마다 ABS존이 다르다’는 의혹을 인지하고 있고 또 선수들의 피드백을 받고 있다. KBO 관계자는 “지금 선수들의 피드백을 듣고 있다.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투수들 중심으로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라면서 “지난 4년 간 퓨처스리그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과도기적인 기간을 거치면서 일관적인 판정으로 만족도를 높여왔다. 지금 시범경기 기간도 시행착오의 기간으로 봐야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KBO의 원칙, 그리고 시스템의 결함은 없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ABS존이 구장마다 달라진다는 게 확인이 될 경우 ABS의 일관성 문제는 물론 존폐 논란까지 불러올 수밖에 없다. 현장의 의구심은 KBO와 제도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KBO도 해당 사안을 심도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