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김태형 감독이 점찍은 개막전 선발, 애런 윌커슨이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에서 한화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에 혼쭐이 났다. 구위와 제구 모두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대로 정규시즌 개막전에 돌입해도 괜찮은 것일까.
윌커슨은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범경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4이닝 10피안타 1볼넷 1사구 4탈삼진 7실점(6자책점)을 기록하고 강판됐다. 시범경기 마지막 리허설을 망쳤다.
이날 경기 전 김태형 감독은 오는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리는 SSG 랜더스와의 개막전에 나설 선발 투수로 윌커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마음 속으로만 정했던 개막전 선발 투수를 이날 처음으로 외부에 알렸다.
윌커슨은 지난해 후반기, 댄 스트레일리의 대체 선수로 합류한 뒤 에이스 역할을 했다. 후반기 13경기 7승2패 평균자책점 2.26의 성적을 남겼다. 13경기 중 11경기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는 등 안정감 넘치는 피칭으로 인상을 남겼다. 79⅔이닝 동안 81탈삼진을 기록했고 20개의 볼넷 밖에 내주지 않았다. 힘 있는 구위에 정교한 제구까지 갖춘 에이스였다.
그리고 올해 총액 95만 달러로 재계약까지 성공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열린 지바 롯데와의 교류전 1차전 선발 투수로 시작하는 등 캠프 기간 에이스로 역할을 부여 받았다. 또 다른 외국인 선수인 찰리 반즈는 캠프 합류 직전인 1월 중순, 둘째를 득남하면서 육아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전해오면서 캠프 합류 없이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현재 반즈의 빌드업 과정은 순조롭지만 개막전에 맞추기는 힘든 상황.
결국 윌커슨이 개막전 선발의 중책을 맡게 됐다. 하지만 1회부터 난타 당했다. 선두타자 정은원에게 우중간 2루타를 얻어 맞았다. 페라자를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1사 3루를 만들었고 안치홍에게 빗맞은 타구를 유도했지만 1루수 옆을 빠져 나가는 적시 2루타로 연결됐다. 이후 채은성에게 중전안타를 맞으며 1사 1,3루 위기가 이어졌고 임종찬에게 우전 적시타를 허용해 추가 실점했다. 이후 김강민은 삼진, 하주석은 우익수 뜬공 처리하면서 추가 실점은 막았다.
2회에도 실점했다. 수비 도움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 2회 선두타자 이재원에게 좌선상 2루타를 맞고 위기로 시작한 윌커슨. 이도윤을 삼진으로 처리했지만 정은원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했다. 2루 주자가 3루에서 멈췄지만 우익수 레이예스가 공을 더듬으며 이재원이 홈을 밟았다. 비자책 실점이었다. 페라자는 2루수 뜬공, 안치홍은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2회도 마무리 지었다.
3회에는 채은성을 삼진, 임종찬을 중견수 뜬공, 김강민을 1루수 파울플라이로 돌려세우며 첫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그러나 4회 집중타를 얻어 맞았다. 선두타자 하주석을 투수 땅볼로 직접 처리한 뒤 이재원을 삼진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2사 후 이도윤에게 좌전안타를 맞았고 정은원에게 우익수 키를 넘기는 적시 2루타를 허용했다. 페라자에게 볼넷을 내주며 맞이한 2사 1,2루에서는 황영묵에게 중전 적시타를 내줬다. 김인환을 사구로 내보내며 계속된 2사 만루에서는 임종찬에게 우전 적시타까지 허용했다. 김강민을 3루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윌커슨은 실망스러운 결과만 남긴 채 이날 등판을 마무리 지었다.
지난 11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4이닝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1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고 이날은 무려 7실점(6자책점)을 헌납했다. 윌커슨의 구속과 구위 모두 올라오지 않은 듯 했다. 윌커슨은 이날 최고 145km의 구속을 찍었다. 패스트볼 24개, 커터 20개, 커브 13개, 슬라이더 13개, 체인지업 2개를 던졌다. 이날 72개의 공을 던지면서 스트라이크는 50개, 볼은 22개였지만 스트라이크 존으로 넣은 공들이 실투가 됐고 또 모두 정타로 연결되며 뭇매를 맞았다.
아울러 피치클락, ABS(자동투구판독시스템)의 영향도 없지 않은 듯 했다. 윌커슨의 인터벌은 비교적 긴 편이다. 타자와의 승부는 공격적으로 들어가지만 타자와 타자 사이의 준비 시간이 빠듯하다. 현재 KBO의 피치클락은 시범 시행되고 있지만 신경쓸 수밖에 없는 요소. 주자가 없을 때는 18초, 주자가 나갔을 때는 23초를 적용 중이다.
아울러 보더라인 피칭을 즐겨하는 윌커슨 입장에서는 ABS의 존재가 다소 까다롭게 다가올 수 있다. 과거라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공들이 이제는 기계식으로 철저하게 가려진다.
지난해 윌커슨은 KBO리그에 합류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리플A에서는 로봇 심판, 피치 클락 등 새로운 룰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 ‘리얼 베이스볼’을 할 수 있게 돼 너무 좋다”라고 말하며 야구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마이너리그 트리플A 라스베가스 에비에이터스 소속으로 14경기(6선발·47이닝) 3승2패 평균자책점 6.51로 고전했다.
이제 윌커슨의 리허설은 끝났다. 과연 윌커슨은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우려들을 잠재우고 개막전 선발 투수로서의 위용을 보여줄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