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가 너무 나왔다".
12일 2024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시범경기가 벌어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아침부터 잔뜩 흐린고 비가 예보되었는데도 관중들이 줄을 섰다. 평일이라 만원관중은 어려웠고 3500명이 찾았다. 류현진이라는 이름에 담긴 한화팬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었다. 류현진이 캐치볼을 위해 1루 더그아웃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팬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로 환영했다.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배번 99번이 박힌 남자는 마운드를 올랐고 팬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보냈다. 메이저리그 78승 투수도 살짝 상기된 듯 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수신호에 이어 첫 타자 박찬호를 상대로 초구 140km짜리 직구를 던졌고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박수 소리는 보문산 향해 더욱 커져갔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4177일만의 대전 공식경기 복귀를 알리는 뭉클한 장면이었다.
KIA는 정예타선을 내세웠다. 박찬호(유격수) 이우성(1루수) 김도영(3루수) 나성범(우익수) 소크라테스(좌익수) 최형우(지명타자) 김선빈(2루수) 한준수(포수) 최원준(중견수)가 포진했다. 주전포수 김태군 대신 한준수를 내세웠다. 타격은 한준수가 더 났다. 타선을 보면 위압감이 있었다.
친정팬들 앞에서 첫 등판 앞에서 떨렸을까? 1회 제구가 살짝 몰렸다. 1사후 이우성에게 던진 체인지업이 제대로 듣지 않았고 우익수 옆 2루타를 맞았다. 3년차 리틀 이종범 김도영을 상대로 던진 초구가 한복판을 향했다. 김도영의 방망이가 휘돌았고 중견수 앞으로 굴러가는 적시타였다.
"어! 이게 아닌데"라는 듯 그라운드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이후 마운드를 지배하며 KIA 타자들을 잠재웠다. 2회 첫 타자는 상대전적 4할 타율을 자랑하는 최형우. 보란듯이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4회는 1루수 실책으로 무사 2루 위기를 맞이하자 소크라테스 3구삼진을 시작으로 가볍게 타자들을 잠재웠다.
62구. 최고구속은 148km. 본인도 놀란 스피드였다. 주무기 체인지업이 살짝 어긋났지만 직구, 커터, 커브, 슬라이더는 던지고 싶은 곳에 찔러넣었다. 아트피칭의 정수였다. 1회 실점은 오히려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다. 최원호 감독도 "최고 148까지 나오는 등 목표한 대로 4이닝 동안 구위와 제구 모두 안정감 있는 투구를 보여줬다"고 박수를 보냈다.
팬들의 가슴을 철렁거린 아찔한 장면도 두 번이나 있었다. 2회초 2사후 한준수의 강습타구에 왼쪽 발을 맞고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스파이크 옆쪽을 맞아 큰 문제는 없었고 급하게 달려나오는 의무 트레이너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곧바로 정상적인 투구를 소화했다.
4회2사 3루에서도 김선빈의 강습타구에 왼쪽 허벅지 바깥쪽을 맞았다. 타구가 옆으로 굴절되자 직접 뛰어가 토스아웃으로 이닝을 마쳤다. 바로 더그아웃으로 뛰어들어가 맞은 부위를 손으로 문지르며 웃기도 했다. 이상이 없다는 동작이었다. 곧바로 5회에는 외야 불펜으로 뛰어갔다.
경기후 류현진은 “재미있게 던졌다. 마운드 올라갈 때 함성소리가 커서 기분 좋았다. 던질려고 했던 투구수와 이닝을 다하고 내려온 것이 좋았다. 생각보다 스피드가 잘 나왔다. 체인지업 제구가 안좋았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구속이 너무 많이 나왔다.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어 "강습타구에 맞아 놀라지 않았다. 두 번째는 조금 아팠지만 전혀 문제 될 것 없었다. 아웃시켰으니 괜찮다. 맞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도망쳤다. 일요일(17일 사직 롯데전) 던져야 하는데 또 비예보가 있다는데 긴장하고 있겠다. 다음등판에서는 주무기 체인지업과 투구수 늘려야 한다. 한 이닝 더 던져야 한다. 그런 부문 중점으로 두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적시타를 때린 김도영을 소환했다. "다음 타석에서 삼진을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예전처럼 스피드를 계속 조절하는 상황은 아니다. 첫 타석 안타는 가운데 실투였다. 안타 맞을 때도 그렇고 두번째 타석(2루 직선타)도 배트 컨트롤이 좋더라"며 특별한 칭찬을 보냈다.
김도영도 "우리나라 최고 좌완투수랑 상대를 해서 영광이었다. 다양한 구종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정규 시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꺼라 생각한다. 모든 구종이 완벽했던 거 같다. 특히 제구력이 워낙 뛰어나고, 빠른 공이 구속에 비해 힘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값진 경험을 한 거 같다"고 경의를 표했다.
1회말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터트린 노시환도 제구에 혀를 내둘렀다. "살면서 본 투수 가운데 제구가 가장 좋다. 쳥백전 할 때 느꼈지만 어이없는 볼이 없다. 모든 구종을 던지고 싶은 곳에 던지는 능력을 갖췄다. 수비도 정말 편했다. 수비들이 집중하느 시간을 만들었다. 볼넷 많으면 수비 집중력 떨어지고 실책 나온다. 템포가 빠르고 제구 좋아 (야수들이) 수비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모두를 웃게 만든 멋진 복귀전이었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