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만 보던 선배들을 상대로 잔뜩 긴장했다. 상대 타자들이 두렵다고도 했다. 그런데 웬걸, 환상적인 커브로 폭풍 삼진쇼를 펼치며 인상적인 시범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프로야구 KT 위즈의 신인 투수 원상현(19)은 10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긴장이 가득했다. 이날 선발 등판을 앞두기 있었기 때문. 시범경기이지만 고교 졸업 후 프로 첫 실전 경기다. 그것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LG 트윈스 상대로.
올해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7순위)로 KT에 입단한 원상현은 10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LG와 시범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 3이닝 동안 47구를 던지며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초반 제구가 흔들렸으나, 위기마다 낙차 큰 커브로 삼진을 잡아내며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5선발 후보로 기대치를 보여줬다.
총 47구를 던진 원상현은 최고 150㎞의 직구를 28개 던졌다. 직구는 초반 제구가 되지 않아 볼이 17개나 됐다. 슬라이더 10개, 커브 9개. 삼진 5개 중 4개를 커브(RPM 3000)로 잡아냈다.
1회 제구에 기복이 심했지만 실점은 없었다. 톱타자 박해민을 우익수 뜬공으로 첫 아웃카운트를 잡았지만, 홍창기에게 우선상 2루타를 허용했다. 실점 위기. 이어 김현수를 상대로 볼 4개를 연거푸 던지며 볼넷으로 내보냈다.
1사 1,2루 위기에서 4번타자 오지환을 상대했다. 2볼-2스트라이크에서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 한숨 돌렸다. 그러나 문보경을 또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내 만루 위기가 됐다. 장타력이 있는 박동원 상대로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하고, 126km 커브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 위기를 벗어났다.
2회도 위기였다. 선두타자 문성주에게 좌전 안타, 이재원에게 좌전 안타를 맞아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이번에도 변화구, 커브로 위기를 벗어났다. 구본혁을 125km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이어 박해민도 커브로 좌익수 뜬공 아웃, 홍창기는 초구에 2루수 땅볼로 무사 1,2루 위기도 실점없이 막아냈다.
3회 선두타자 김현수에게 3루수 키를 넘어가 페어 지역에 떨어지는 안타를 허용했다. 김현수가 2루까지 뛰었으나, 3루수 황재균이 재빨리 타구를 따라가 잡고서 2루로 송구, 태그 아웃시켰다.
1사 후 KK로 이닝을 끝냈다. 오지환을 1볼-2스트라이크에서 124km 커브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스트라이크존 높은 코스에 살짝 걸쳤다. 이어 문보경도 124km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경기 후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한 원상현은 긴장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는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많이 떨렸다. 숙소에서 야구장 걸어오면서 ‘오늘 어떡하지. 진짜 어떡하지’ 생각을 많이 했다. 긴장도 엄청 많이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날 경기 도중 덕아웃에서 포수 장성우가 원상현을 옆에 앉혀 두고 많은 조언을 했다고 한다. 원상현은 “어제 경기 중에 20분 정도 대화를 했다. 따뜻한 말투로 저한테 저의 장점 단점 얘기해 주시고, 내일 이렇게 해봐라 조언해주셔 엄청 좋았다. 그런데 오늘 막상 마운드에서 던지니까 직구가 날려서 큰일 났다 싶더라. 장성우 선배님이 1회 도중에 ‘변화구가 제구가 너무 좋으니까 직구도 너무 힘대로 던지지 말라’고 하셨다. 또 항상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 양쪽 사이드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하는데 그게 사실 쉬운 게 아니라고, 높낮이를 생각해서 던져라고 말씀해주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2회 위기를 넘기자 3회는 투구가 한층 안정됐다. 원상현은 “3회 때부터 긴장이 풀리고, 자신감이 있었다. 변화구는 제구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LG 타선이 정말 많이 두렵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선배님들이랑 대결을 했지만 변화구에 자신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변화구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제일 자신있는 것은 커브다. 최근 감독님께서 슬라이더 그립을 새로 알려주셨는데, 오늘 경기 때 몇 번 썼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1회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 오지환 상대로 첫 삼진을 잡았다. 그때 쾌감을 묻자 “솔직히 말해서 진짜 너무 좋았다. 왜냐하면 항상 TV나, 야구게임에서 보던 선배님들을 진짜 직접 삼진을 잡으니까 엄청 좋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김현수 선배님이 제일 힘듭니다. 직구가 제대로 한가운데 몰리면 (공이 맞아) 없어질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잘 던져도 무조건 공을 맞힌다. 아까도 안타성 타구를 만들었고, 그런 부분에서 내가 아직 멀었구나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삼진 5개 중에서 3개는 헛스윙 삼진이었다. 루킹 삼진을 잡을 때와 비교해 느낌을 묻자 그는 “원래는 루킹 삼진을 더 좋아하는데, 타자가 타이밍을 못 맞춰서 헛스윙을 하는거니까 오늘은 헛스윙 삼진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원상현은 커브가 제일 자신있다고 했는데, 이날 LG 선발 임찬규도 커브가 주무기다. 원상현은 경기 도중 임찬규의 투구를 보고 금방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3회 오지환 상대로 높은 코스의 커브로 삼진을 잡았는데, 원상현은 “사실 일부러 높게 던졌다.커브를 낮게 던졌는데 볼 판정이 되더라. 그런데 임찬규 선배님이 커브를 던지는 것을 보니까 약간 높게 던져서 스트라이크를 잡더라. 임찬규 선배님 커브가 좋으니까 유심히 봤다. (ABS존) 변화구 스트라이크존이 생각보다 높더라”고 말했다.
경기 전 이강철 감독은 원상현에 대해 "브레이킹 볼이 좋다. 커브가 좋고, 직구도 150km 나온다. 오늘 제구력을 봐야 한다"며 5선발 후보라고 언급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선발 원상현이 프로 첫 등판을 하며 초반 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투구를 거듭할수록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 앞으로 등판에도 기대가 된다. 이어 나온 김민도 지난 시즌보다 한층 안정적인 피칭을 하며 5선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5선발 후보인 김민은 이날 2이닝 퍼펙트 피칭을 했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소형준이 오는 6월 복귀할 전망이다. 소형준이 복귀하기 전까지 원상현, 김민이 5선발로 뛸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투수 2명과 '107억 투수' 고영표, 엄상백이 1~4선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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