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추악했던 사건들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KIA 타이거즈는 과거의 얼룩들을 이제는 씻어낼 수 있을까. 그 중심에 이범호 감독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이일규 부장검사)는 지난 7일, KIA 타이거즈 장정석 전 단장과 김종국 전 감독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아울러 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외식업체 대표 김모 씨도 배임증재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시작은 박동원의 뒷돈 파문이었다. 장정석 단장은 2022시즌 도중, 포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키움과 트레이드로 박동원을 데려왔다. 키움에서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온 박동원과 장 전 단장이었다. 시즌이 끝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 박동원이었지만 KIA와 비FA 다년계약도 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 전 단장의 뒷돈 요구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검찰 조사에 의하면 최소 12억원의 FA 계약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2억원을 달라고 3차례나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장 전 단장에게 배임수재 미수 혐의까지 적용했다.
박동원은 LG 트윈스로 FA 이적을 했고 2023시즌을 앞두고 구단과 선수협에 뒷돈 요구 사실을 알렸다. KBO는 자체 조사를 거쳐서 해당 사건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박동원의 녹취 내용에는 장 전 단장의 집요한 금품요구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것으로 확인했다.
결국 뒷돈 요구를 조사하던 검찰은 장 전 단장의 계좌에 거액의 수표가 입금된 사실을 확인해 김 전 감독에게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검찰은 장 전 단장과 김 전 감독은 2022년 7월부터 10월까지, 김씨의 광고계약 편의를 제공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1억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두 사람이 10월 야구장 내 감독실에서 업체 광고가 표시되는 야구장 펜스 홈런존 신설과 관련한 청탁과 함께 1억원을 수수한 것으로 파악했다.
아울러 김 전 감독은 7월, 유니폼 견장 광고 관련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6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 전 감독은 김씨의 요구사항을 구단 마케팅 담장자에게 전달해서 요구사항이 반영되도록 조치했고 김 전 감독도 김씨의 요구사항을 장 전 단장에게 전했고 구단 광고 담당 직원에게도 기씨 업체의 연락처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조사 결과 확인됐다.
검찰은 이러한 청탁의 대가로 김씨의 업체가 유니폼 견장과 포수 보호장비, 스카이박스 광고는 물론 별도 광고대행사가 관리하는 백스톱과 외야 펜스 홈런존 광고까지 체결할 수 있었다고 밝혀졌다.
장 전 감독과 김 전 감독은 금품수수 사실은 인정했지만 김씨가 선수단 사기진작을 위한 격려금 명목으로 준 것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두 사람이 함께 받은 1억원을 5000만원씩 나눠 갖고 받은 금품을 구단에 알리지 않고 주식 투자, 자녀 용돈, 여행비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착복한 사실까지 확인했다.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인 1월 말부터 KIA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가 이제는 법정에서 해결이 될 전망이다. 개인의 비위 행위 때문에 KIA는 2년 연속 시즌 초반 풍파를 겪었다. 2023년 장 전 단장의 뒷돈 파문으로 KIA 구단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1년 만에 감독의 배임 혐의까지 더해졌다. 구단은 당사자들과 모두 계약 해지를 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2년 연속 구단의 고위 핵심 관계자들이 범법행위에 연루된 것은 KIA를 휘청거리게 했다.
KIA는 김 전 감독의 비위행위와 검찰 조사 사실을 확인한 뒤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에 퇴단을 결정했다. 감독 없이 스프링캠프를 치러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어야 했다.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는 것은 새로운 감독을 빠르게 선임하는 것이었다.
결국 KIA는 사태를 수습하고 팀을 정상 궤도로 이끌 적임자로 이범호 타격코치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2년 총액 9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에 계약했다. 1981년생의 젊은 감독이 새로운 수장이 됐다. KIA는 “팀 내 퓨처스 감독 및 1군 타격코치를 경험하는 등 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다”면서 “선수단을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지금의 팀 분위기를 빠르게 추스를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해 선임하게 됐다”고 이범호 감독의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2019년 은퇴 이후 연수를 거치고 2021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군 총괄 코치와 1군 타격 코치를 거쳤다. 올해로 지도자 4년차에 불과하다. 하지만 구단 안팎에서 이범호 감독은 ‘언제가 감독을 할 인물’로 평가 받았다. 주변을 아우르고 살피는 리더십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신망을 얻었고 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자신만의 확고한 야구철학과 빠른 판단력으로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이범호 감독을 선임하고 KIA는 정상 궤도로 다시 돌입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시즌을 개인의 비위 행위로 그르칠 수 없었다. KIA의 현재 전력은 우승후보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외국인 선수부터 고심 끝에 최상의 선수들을 뽑아왔다. 현역 메이저리거인 윌 크로우, 그리고 과거 애런 브룩스를 연상케 하는 제임스 네일을 데려오면서 외국인 투수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양현종 이의리 윤영철의 토종 좌완 3인방의 조합은 10개 구단 최상위권. 그리고 타선도 신구조화, 힘과 세기를 겸비하면서 완성형에 가깝다. 주장 나성범을 비롯해 최고참 최형우, 2루수 FA 잔류 계약을 맺은 김선빈 등 베테랑 라인이 굳건하다. 박찬호 김도영 최원준 이우성 김태군 등 포지션별로 탄탄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타선은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다. KIA의 탄탄한 전력은 디펜딩 챔피언 LG를 긴장케 하고 있다.
이제 이범호 감독과 함께 KIA는 뒷돈으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호주 캔버라와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스프링캠프를 무사히 지휘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8일 KIA는 이범호 감독의 취임식을 거행하면서 새출발을 알렸다.
이범호 감독은 이 자리에서 "추구하고 싶은 야구는 웃음꽃 피는 야구이다. 선수들이 항상 웃으면서 그라운드에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게 웃음꽃 피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이건 안돼, 저건 안돼'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봐'라고 하는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겠다. 감독으로도 우리 팀이 이룰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목표 아래 선수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KIA는 열 한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이겼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선수와 코치로서 수 많은 경기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그만큼 우리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나는 우리 선수들의 능력을 믿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프로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좋아야 한다. 팬들에게 승리보다 뛰어난 팬서비스는 없다. 그라운드에서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 외적으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드리지 않도록 자기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감독인 나부터 솔선수범하겠다. 임기내에 반드시 우승드로피를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취임식이라서 떨렸다. 이제 실감이 난다. 챔피언스 필드의 감독방도 처음 들어갔다. 매일 타격코치로 선수들 컨디션 체크, 오더 때문에 감독실을 들어갔다. 들어가서 혼자 앉아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힘든 자리, 외로운 자리가 될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플레이 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른 것은 자유롭게 할 것이다. 다만 '자유'는 경기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배려하는 것이지, 라커룸 안에서 쉬고 놀라는 것이 아니다. 경기에 출전하기 위한 몸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의미"라면서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과연 꽃범호의 기운이 KIA를 다시 봄날로 이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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