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경기지만 한 베이스를 더 내보내는 것을 전력질주로 차단했다. 빗속의 질주로 괜히 골드글러브 후보로 평가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이정후는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3회초 내린 폭우로 경기는 취소됐다.
시범경기 5경기 연속 안타에 타율 4할6푼2리(13타수 6안타) 1홈런 3타점 1삼진 1볼넷 OPS 1.302의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던 이정후였다. 이날 이정후는 첫 좌완 투수 상대 미션을 수행하려고 했다.
최고 158km의 강속구를 뿌리는 좌완 제임스 팩스턴을 상대하게 됐다. 1회말 첫 타석에서 풀카운트 승부 끝에 1루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최대한 공을 지켜보면서 좌완 투수 상대로도 쉽게 물러나지 않으려고 했다. 우천 취소로 좌완 투수 상대 미션은 단 한 타석만에 끝났고 기록도 삭제됐다.
미국이 주목한 매력을 바로 이날 보여줬다. 1회초 1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이었다. 미겔 로하스 타석 때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를 보여줬다. 이정후의 수비 위치는 우중간 쪽으로 치우쳐 있었고 앞으로 당겨져 있었다.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샌프란시스코 선발 카일 해리슨의 4구를 공략한 로하스의 타구는 좌중간 쪽으로 향했다. 정상 수비 위치라면 무난하게 단타로 막아낼 수 있었을 타구였다. 그러나 이정후의 수비위치가 우중간 쪽으로, 그리고 앞쪽에 위치해 있기에 처리하기 까다로웠다. 이정후는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스피드를 끌어올려서 빠르게 쫓아갔고 타구가 담장까지 굴러가는 것을 차단했다. 후속 동작도 지체 없었다. 타구를 잡은 뒤 곧바로 커트맨에게 송구했다. 2루타는 피할 수 없었지만 3루타가 되는 것은 막아냈다.
결국 이어진 1사 2루에서 윌 스미스의 우익수 뜬공,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의 유격수 깊은 코스의 내야안타가 나왔지만 실점하지 않았다. 만일 로하스의 타구가 3루타가 됐다면 실점은 당연했던 타구였다. 이정후가 막아낸 한 베이스가 실점까지 막은 셈이었다. 결국 2사 1,3루에서 제임스 아웃맨을 삼진 처리하며 실점 없이 1회를 막아낼 수 있었다.
마운드에는 있던 해리슨은 ‘MLB파이프라인’ 유망주 랭킹 전체 23위, 샌프란시스코 전체 1위를 차지한 좌완 유망주다. 2020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지난해 7경기 선발 등판해 1승1패 평균자책점 4.15(34⅔이닝 16자책점) 11볼넷 35탈삼진의 성적을 남겼다. 올해가 더 기대되는 선발 투수다.
어린 선발 투수의 초반 실점은 이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데, 이정후의 호수비 덕분에 해리슨은 1회를 실점 없이 마칠 수 있었고 3회 2사에 우천 취소가 되기 전까지 탈삼진 6개를 뽑아내는 호투를 펼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비시즌 동안 외야 수비 강화를 위해 움직였다. 파르한 자이디 사장은 “우리는 더 빠르고 더 넓은 범위를 소화할 수 있는 외야수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면서 외야수 보강 의지를 천명하 바 있다.
특히 중견수가 최대 고민이었다.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중견수 포지션의 OAA(Outs Above Average⋅평균 대비 아웃 기여도)는 -13으로 리그 최하위 수준이었다(30개 구단 중 28위). 루이스 마토스, 마이크 야스트렘스키, 오스틴 슬레이터 등이 중견수 자리를 소화했지만 풀타임 중견수라고 볼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의 선택은 이정후였다. 지난해 발목 부상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주시해 온 이정후였기에 부상에서 회복하기만 한다면 중견수 적임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샌프란시스코가 시장가보다 다소 과하지만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준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밥 멜빈 감독은 이정후를 개막전 1번 중견수로 못 박고 시즌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만큼 이정후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이정후는 스스로 능력을 입증하면서 자신에게 쏠린 의문의 시선들을 모두 거둬들이고 있다.
이정후의 천재성, 그리고 적응력은 이제 괴물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도 두렵지 않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