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자체 평가전이 열린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 봄을 시샘하듯 찬 바람이 불면서 다소 쌀쌀했다. 야구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2012년 10월 4일 넥센과의 홈경기 이후 4172일 만에 대전구장 마운드에 선 ‘괴물’ 류현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제 역할을 다했다.
홈팀 선발 투수로 나선 류현진은 3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1점을 내주는 짠물투를 뽐냈다. 총 투구수 46개 가운데 스트라이크는 30개. 안타와 볼넷 1개씩 허용한 게 전부였고 삼진 3개를 곁들였다. 지난 2일 라이브 피칭 때 최고 구속 139km를 기록한 그는 이날 143km의 구속이 스피드건에 찍혔다. 컷패스트볼, 커브, 체인지업 등 자신의 주무기를 점검했다. ‘아트 피칭’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자로 잰 듯 정확한 컨트롤은 명불허전이었다.
1회 정은원, 문현빈, 김태연을 삼자범퇴 처리한 류현진은 2회 선두 타자 채은성의 2루타와 하주석의 볼넷으로 1,3루에 놓였고 이재원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내줬다. 3회 박상언, 김강민, 정은원을 꽁꽁 묶은 류현진은 4회 김민우와 교체됐다.
이날 구단 자체 중계 해설을 맡은 투수 이태양은 “현진이 형은 확실히 제구가 다른 투수들과 달리 뛰어나다. 코너 코너에 던지고 실투가 없다. 그래서 정타에 맞는 타구가 안 나온다”고 말했다. 또 “청백전이지만 현진이 형이 대전 마운드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같은 팀원으로서 든든하다”고 흐뭇한 반응을 보였다.
4172일 만에 대전구장 마운드에 선 류현진의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예전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고 재미있었다. 투구 수 50개 정도 던지려고 준비했는데 그 정도 채운 거 같아 오늘 할 수 있는 거 다 했다고 생각한다. 등판 후 불펜으로 이동해 더 던졌다. 다음 등판 때 65개 정도 던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류현진은 ‘로봇 심판’이라고 불리는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에 대해 “큰 어려움은 없었던 거 같다. 거의 다 생각하는 콜이 나왔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최원호 감독은 류현진의 등판에 대해 “날씨 영향인지 라이브 피칭할 때보다 제구가 흔들렸지만 구속은 더 나왔다. 시범경기를 거쳐 정규 시즌 때 긴장감까지 올라가면 140km 중반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웨이팀 선발로 나선 '대전 왕자' 문동주는 최고 구속 148km의 빠른 공과 컷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섞어 던지며 3이닝 2피안타 2볼넷 1탈삼진 무실점 쾌투를 뽐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문동주는 “류현진 선배님과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영광스러운 자리였는데 만족스러운 투구를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날씨 핑계를 대면 안 되지만 추워서 그런지 컨디션이 되게 안 좋았다”고 했다.
문동주에게 류현진의 등판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류현진 선배님이 마운드에서 던지는 걸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역시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경의를 표했다.
또 “오늘 선발 등판 준비하는 걸 보니 제가 지금껏 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워낙 몸 관리가 철저하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한국에서만 야구를 해왔고 선배님은 큰 무대에서도 야구하셨고 거기서 엄청난 성과를 냈다. 분명히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계실 텐데 궁금한 게 많은데 선배님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배우겠다”고 덧붙였다.
류현진은 오는 12일 대전 KIA전과 17일 사직 롯데전에 등판한다. 두 차례 시범경기 등판을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디펜딩 챔피언’ LG와의 정규 시즌 개막전 선발로 나설 예정. 시즌 개막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무서워지는 류현진. 23일 LG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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