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 출발에 앞서 가을야구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내심 불안감이 컸던 게 사실이었다. 지난 5년간 쌓인 패배의식을 지울 확실한 전환점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영원한 에이스’ 류현진이 12년 만에 국내 복귀를 택했고, 불과 스프링캠프 합류 열흘 만에 이글스의 분위기를 환골탈태시켰다.
최원호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호주 멜버른(1차), 일본 오키나와(2차) 스프링캠프를 모두 마치고 지난 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멜버른에서 체력 및 기술 훈련을 중심으로 담금질을 마친 뒤 오키나와로 이동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고,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4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호주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 2전 전승이 눈에 띄었다.
스프링캠프 최대 화두는 99번 에이스의 컴백이었다. 오키나와에 2차 베이스캠프를 차리자마자 메이저리그 통산 78승에 빛나는 류현진이 전격 국내 복귀를 택한 것이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지난달 23일 친정 한화와 8년 총액 170억 원(옵트아웃 포함·세부 옵트아웃 내용 양측 합의 하에 비공개)에 계약했다. 이는 종전 KBO리그 다년계약 최고액이었던 두산 양의지의 4+2년 152억 원을 경신한 역대 국내 최고 대우였다.
동산고를 나온 류현진은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2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 첫해부터 30경기(201⅔이닝) 18승 6패 평균자책점 2.23 204탈삼진의 압도적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투수 트리플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을 달성했고, 리그 최초로 MVP·신인왕을 동시 석권했다. 2012년까지 7년 동안 한화에서만 통산 190경기(1269이닝) 98승 52패 1세이브 1238탈삼진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2013년부터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지난해까지 186경기(1055⅓이닝) 78승 48패 1세이브 934탈삼진 평균자책점 3.27를 기록,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수준급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2019년 LA 다저스 소속으로 29경기(182⅔이닝) 14승 5패 163탈삼진 평균자책점 2.32로 호투하며 생애 첫 올스타, 평균자책점 1위와 함께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화 최원호 감독은 “(류현진을 실제로 보니) 체격이 크다. 광채가 엄청 나다”라고 껄껄 웃으며 “미국 가기 전보다 체격이 커져서 왔다. 상당히 풍채가 좋은 선수로 변해서 왔다”라고 그 누구보다 류현진의 복귀를 반겼다.
한화는 스토브리그에서 검증된 2루수 안치홍을 FA 영입하며 안치홍, 노시환, 채은성으로 이뤄진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축했다. 여기에 베테랑 김강민과 이재원까지 품으며 강팀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경험을 가미한 신구조화까지 갖췄다. 정은원, 문현빈, 이도윤, 이진영 등 활기 넘치는 어린 선수들과의 시너지 효과에 상당한 기대가 모아졌다.
그럼에도 한화의 목표는 우승이 아닌 가을야구 진출이었다. 선발진 내 확실한 상수가 펠릭스 페냐, 리카르도 산체스, 문동주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들에 이어 김민우, 김기중, 이태양, 황준서가 4, 5선발 경쟁을 펼쳤지만 대권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도 한화의 ‘슈퍼 에이스’ 갈증은 해소되지 못했다.
한화 선발진은 류현진의 합류로 단 번에 우승권 전력을 갖추게 됐다. 에이스 류현진에 페냐, 산체스, 문동주로 이뤄진 탄탄한 4선발이 구축되며 선발 뎁스가 상당히 풍부해졌다. 4, 5선발 경쟁을 펼쳤던 선수들의 경우 자리를 하나 잃었지만 반대로 이는 롱릴리프, 6선발 등 다른 파트의 전력 강화를 의미했다.
최 감독은 “올 시즌 안치홍이 합류하면서 선수단 전체가 포스트시즌을 목표로 캠프를 시작했는데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라고 털어놓으며 “오키나와에 류현진이 합류하면서 나를 포함해 선수단 모두가 자신감이 조금 더 생긴 목표를 향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류현진 효과를 설명했다.
독수리군단의 캡틴은 류현진의 복귀가 신기하기만 하다. 채은성은 “(류)현진이 형이 온 뒤로 뉴스도 많이 나오고 취재진도 많이 온다. 작년에 느껴보지 못했던 걸 느끼게 돼서 복귀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이게 현진이 형의 파워인 거 같다”라고 놀라워했다.
류현진 복귀와 관련한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채은성은 “캠프에서 현진이 형이 뭔가 올 것 같다는 분위기가 났는데 우리는 사실 미리 알았다. 그래서 단장님께 감사하고, 고생하셨다는 연락을 드렸다”라며 “확실히 현진이 형이 오면서 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선수 한 명이 갖고 힘이 이렇게 크기 때문에 선수들도 자신감 많이 생길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최 감독은 오는 9일 시범경기 개막에 앞서 7일 홈구장인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자체 청백전을 통해 실전 감각을 점검하기로 했다. 그리고 청팀과 백팀의 선발투수로 류현진과 문동주를 예고, 한화의 영원한 에이스와 차세대 에이스 간의 꿈의 맞대결을 성사시켰다.
만일 팀 선택권이 있다면 채은성은 어느 팀에서 뛰고 싶을까. 그는 “(류)현진 형 상대팀에서 형의 공을 보고 싶다. (문)동주는 LG 시절 쳐봤기 때문이다”라며 “현진이 형은 과거 내가 1군에 올라왔을 때 미국으로 가셨다. 정말 궁금한 투수들 중 1명이다. 타석에 서보고 싶다”라고 이유를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류)현진이 형은 같은 팀이라 싸워야할 상대가 아니다. 형은 정말 어렸을 때부터 바라본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투수의 공을 이번 기회를 통해 경험해보고 싶다. 타석에 서보고 싶다”라고 류현진과의 맞대결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와 격돌하게 된 문동주는 “솔직히 연습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기사가 되게 많이 났더라”라고 웃으며 “팬들이 기대감을 가져주시는 거 같은데 어차피 (류)현진 선배님은 좋은 피칭이 예상되니 나만 잘하면 될 거 같다”라고 청백전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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