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하면 정확한 타격 능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KBO리그 7시즌 통산 타율 3할4푼. 3000타석 이상 기준으로 역대 1위 빛나는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부터 특유의 컨택 능력을 마음껏 발휘 중이다.
시범경기 데뷔 후 3경기 연속으로 안타를 치면서 타율 4할4푼4리(9타수 4안타)를 기록 중이다. “패스트볼, 변화구 모두 가리지 않고 칠 줄 안다”는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의 말대로 4개의 안타는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각각 2개씩 공략한 것이다. 안타 4개 중 3개를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만든 것으로 극강의 컨택 능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장타력까지 시범경기에서 주목받고 있다. 스프링 트레이닝 초반부터 이정후가 프리 배팅에서 담장 밖으로 타구를 쉽게 넘기는 모습에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이 짐짓 놀란 눈치였다. 팻 버렐 타격코치는 “우리가 이정후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플레이 타구 생산도 있지만 그 안에 또 다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담장 밖으로 칠 수 있는 능력까지 있다. 그걸 부추기고 싶진 않지만 이정후는 자연스럽게 그걸 할 수 있다”며 장타력에 주목했다.
야수조 공식 소집 전부터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이정후와 같이 훈련하며 준비한 ‘통산 147홈런’ 거포 외야수 마이클 콘포토도 “이정후는 공을 맞히는 기술이 뛰어나다. 타석에서의 접근법이 좋고, 스트라이크존을 잘 알아서 높은 타율을 기록할 것이다”면서서도 “연습할 때 치는 걸 보면 파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KBO리그 7시즌 통산 홈런 65개, 한 시즌 최다 홈런 22개(2022년)로 계약 당시만 하더라도 장타력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정후이지만 시범경기 2경기 만에 강력한 파워를 보여줬다. 지난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라인 넬슨에게 1회 우월 2루타를 치더니 3회 우중월 솔로 홈런을 치며 멀티 장타로 숨겨진 힘을 과시했다.
이정후는 장타력과 관련해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기술적으로) 크게 바뀐 건 없다. 2020년 시즌을 기점으로 2루타도 많이 쳤고, 장기적으로 중장거리 타자가 되고 싶었다. 연습을 할 때부터 항상 풀스윙을 돌리곤 했고, 2022년(23홈런) 장타력이 최고조로 올라왔다. 작년에도 타구 속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발사각이나 이런 게 초반에 안 좋아서 장타가 많이 없었다”고 돌아봤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장타력 상승을 위한 과정을 밟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바뀐 것은 힘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연습할 때 힘이 많이 생겼다는 걸 느낀다. (지난해 7월) 발목 수술을 하고 나서 오래 쉬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운동장보다 웨이트장에 더 많이 있었다. 작년 시즌이 끝난 10월말부터 웨이트를 시작했다”며 “미국에 와서도 구단이 내 몸에 맞게 먹는 것을 잘 챙겨준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애리조나전에서 홈런은 비거리가 무려 418피트(127.4m)에 달했다. 발사각이 18도로 낮았지만 시속 109.7마일(176.5km) 속도로 쭉쭉 뻗어나간 타구는 우중간 외야 잔디석에 미사일처럼 꽂혔다. 덕아웃에서 이정후의 홈런을 본 샌프란시스코 ‘에이스’ 로건 웹은 “홈런이 될 줄 몰랐는데 타구 속도가 빠르더라. 계속 이렇게만 치면 매번 홈런이 나올 것 같다”며 감탄했다.
이날 이정후의 비거리 127m 홈런은 메이저리그 30개 구장 중 딱 한 군데 빼놓고 다 넘어가는 타구였다. 유일하게 홈런이 안 되는 구장이 공교롭게도 샌프란시스코 홈구장 오라클파크. 홈에서 펜스까지 거리가 우중간이 126m로 유독 길다. 좌측 폴까지는 94m로 매우 짧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진 7.3m 펜스 높이로 인해 우중간 홈런은 거의 보기 힘들다. 가뜩이나 외야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영향으로 타구가 잘 뻗지 않는데 좌타자가 홈런을 치기 특히 어려운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