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천재 타자의 컨택 능력이 미국에서도 통하고 있다. 95마일(152.9km) 강속구에도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트가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다.
이정후는 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4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시범경기에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 3타수 1안타로 3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 데뷔 무대에서 첫 타석부터 ‘올스타 투수’ 조지 커비의 변화구를 받아쳐 우전 안타로 포문을 연 이정후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첫 2루타에 이어 홈런까지 신고하며 장타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풀타임 선발로 8승을 거둔 애리조나 우완 투수 라인 넬슨 상대로 1회 첫 타석에선 몸쪽 낮은 커브를 끌어당겨 우월 2루타로 장식했고, 3회에는 패스트볼을 공략해 홈런을 만들어냈다.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 한가운데 몰린 94.7마일(152.km)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중간 담장 넘겼다. 발사각이 18도로 낮았지만 시속 109.7마일(176.5km)로 비거리 418피트(127.4m)를 날아갔다.
넬슨은 이날 등판을 마친 뒤 샌프란시스코 담당 기자들에게 이정후에 대한 질문을 받곤 “분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했다. 이제 그가 아주 좋은 타자라는 걸 알았다”며 “볼카운트 2-1에선 그에게 패스트볼을 가운데 던지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좋은 타자에게 어설픈 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2일 텍사스전에도 패스트볼을 공략해 안타를 만들었다. 1회와 3회에는 2020년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에서 던졌던 우완 애드리안 샘슨을 맞아 각각 중견수 뜬공, 3루 파울플라이로 물러났지만 5회 마지막 타석에서 바뀐 투수 콜 윈에게 기어이 안타를 만들어냈다.
초구 94마일(151.2km) 포심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뒤 2구째 87마일(140.0km) 체인지업에 배트가 헛돌았다.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지만 이정후의 컨택 능력은 여기서 또 빛을 발했다. 윈의 3구째 95마일(152.9km)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중전 안타를 쳤다. 95마일 강속구에도 배트가 밀리지 않고 2루수 옆을 지나 중견수 앞으로 빠져나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윈은 1999년생 우완 투수로 지난 201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5순위로 지명된 유망주. 올해의 고교 선수로 선정되며 계약금 315만 달러를 받고 텍사스에 입단한 윈은 2022년 트리플A에서 타구에 왼쪽 발목을 맞는 부상 이후 성장이 지체되고, 커맨드가 무너지면서 아직 빅리그에 데뷔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최고 97마일(156.1km) 강속구를 뿌린다.
이정후의 배트가 강속구에 밀리지 않고 정타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한국인 타자의 성패는 결국 KBO리그보다 평균 3~4마일(4.8~6.4km) 더 빠른 패스트볼에 얼마나 대응하느냐에 갈린다. KBO리그 출신 타자 중 가장 먼저 성공한 강정호나 지금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패스트볼 공략이 되는 타자들이다.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안착 여부도 패스트볼 대처 능력에 달려있는데 현재까지는 걱정할 게 없는 수준이다.
이날 경기 후 이정후는 95마일을 공략한 것에 대해 “한국에선 그 정도 스피드의 공을 많이 보진 않았다. 자주 못한 공이라 (강속구 상대) 타율이 안 좋을 수 있지만 타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는 그런 공을 잘 쳤다. 한국에선 통계상으로 약하게 나왔지만 막상 국제대회에 나가면 매번 쳤던 공이었다. ‘이 정도 스피드의 공을 맨날 보고 치면 어떨까, 적응할까’ 하는 혼자만의 궁금증은 있었다”고 말했다.
아직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몰리는 공은 94~95마일이라도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맞히고 있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타이밍이 늦지 않는다. 이정후는 “여기선 (강속구를) 매일 보다 보니까 한국에서 보던 것처럼 빠르게 느껴지진 않는다. 빠른 볼에 대한 프레셔는 없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