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에이스도 깜짝 놀랐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6)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데뷔 2경기 만에 첫 홈런을 신고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정후는 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솔트리버필즈 앳 토킹스틱에서 치러진 2024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시범경기에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 3회 솔로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멀티히트 활약을 펼쳤다. 2루타에 이어 홈런으로 멀티 장타 경기.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 상대로 가진 시범경기 데뷔전에서 이정후는 1회 첫 타석부터 '올스타 투수' 조지 커비에게 우전 안타를 치며 기분 좋게 스타트했다. 데뷔전 3타수 1안타 1득점으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이정후는 이날 첫 홈런까지 쏘아 올리며 기세를 이어갔다.
시범경기 성적은 2경기 6타수 3안타 타율 5할에 1홈런 1타점 1삼진. 초반이긴 하지만 천재적인 타격 재능을 시작부터 뽐내며 샌프란시스코가 왜 6년 1억1300만 달러 거액을 투자했는지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정후에겐 이날이 시범경기 첫 원정. 지난달 28일 홈에서 데뷔전을 치른 뒤 29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 원정은 결장했다. 이날은 샌프란시스코 캠프지가 있는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멀지 않은 솔트리버필즈 앳 토킹스틱에 선수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이날 샌프란시스코 선발 라인업은 이정후(중견수) 마르코 루시아노(유격수) 마이클 콘포토(좌익수) 데이비드 비야(1루수) 파블로 산도발(지명타자) 조이 바트(포수) 케이스 슈미트(유격수) 브렛 위슬리(2루수) 엘리엇 라모스(우익수). 선발투수는 로건 웹이었다.
애리조나 선발투수는 우완 라인 넬슨. 지난 2022년 9월 빅리그에 데뷔한 뒤 지난해 처음으로 풀타임 시즌을 보낸 투수다. 29경기(27선발·144이닝) 8승8패 평균자책점 5.31 탈삼진 96개로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26세 젊은 투수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평균 94.4마일(151.9km) 포심 패스트볼과 커터, 체인지업을 주로 던진다.
넬슨을 상대로 1회 첫 타석부터 이정후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초구 94.3마일(151.8km) 포심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된 뒤 2구째 몸쪽 낮은 89.3마일(143.7km) 커터에 배트를 냈다. 1루 라인선상으로 날카로운 파울 타구가 나오더니 바로 다음 공에 정타가 나왔다.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 몸쪽 낮게 꺾이는 81.6마일(131.3km) 커브였다. 치기 까다로운 코스의 브레이킹 볼이었지만 이정후의 컨택 능력은 확실히 달랐다. 배트 중심에 맞힌 타구가 우측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갔다. 애리조나 우익수 제이크 맥카티의 키를 넘어가는 장타가 되면서 2루까지 갔다. 첫 장타 생산. 실투성 공이 아니었지만 이정후 특유의 컨택 감각이 빛났다.
3회 두 번째 타석에선 넬슨에게 홈런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초구부터 배트가 나왔다. 초구 몸쪽 깊게 들어온 94.3마일(151.8km) 포심 패스트볼에 다시 한 번 1루 쪽 파울 타구가 나온 이정후. 2구째 바깥쪽 낮게 원바운드된 85.7마일(137.9km) 체인지업을 골라낸 뒤 3구째 비슷한 코스로 들어간 85.3마일(137.3km) 체인지업도 참아냈다. 2-1 유리한 카운트를 점한 뒤 4구째 가운데 몰린 94.7마일(152.4km) 포심 패스트볼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맞는 순간 타구는 낮은 탄도로 날아갔지만 그대로 힘이 실려 우중간 담장 외야 너머 잔디밭으로 된 스탠드에 꽂혔다. 타구 속도 109.7마일(176.5km), 비거리 418피트(127.4m), 발사각 18도. 낮은 탄도에도 엄청난 타구 속도로 대형 홈런을 만들어냈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정후의 파워가 생각 이상으로 좋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정후도 치고 나선 홈런이 될 줄 몰랐다. 2루까지 전력 질주를 했고, 3루 심판의 홈런 콜을 본 뒤에야 속도를 늦췄다. 이날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로 나선 로겐 웹(28)도 이날 경기 후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정후의 타구가 넘어갈 줄 몰랐다고 밝혔다.
덕아웃에서 이정후의 홈런을 본 웹은 “와우”라고 감탄사부터 내뱉으며 “처음에는 홈런이 될 줄 몰랐는데 타구 속도가 빠르더라”며 “이정후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계속 저렇게 치면 매번 홈런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이정후를 보는 게 항상 재미있다고 말한 것이다”고 치켜세웠다.
6회 마지막 타석에서도 이정후의 타구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우완 조쉬 그린을 상대로 초구 몸쪽 89.5마일(144.0km) 커터를 지켜보며 스트라이크를 먹었지만 2구째 바깥쪽 높은 92.6마일(149.0km) 싱커를 밀어쳤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가르는 좌전 안타가 될 것으로 보였다.
99마일(159.3km) 강습 타구였지만 애리조나 수비 시프트가 이정후의 타구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3루수 블레이즈 알렉산더가 정확하게 잡아 1루 송구로 연결하면서 땅볼 아웃으로 물러났다.
타석을 마치고 6회 수비를 앞두고 이정후는 대수비 오토 로페즈로 교체돼 경기를 마무리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애리조나에 1-2로 패했다. 이정후의 홈런이 유일한 득점이고, 유일한 멀티히트 타자였다.
선발 웹은 3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막았지만 패전투수가 됐다. 샌프란시스코는 시범경기 전적 4패2무로 아직 승리가 없다.
다음은 경기 후 이정후와 미국 현지 취재진의 일문일답.
-첫 홈런인데 기분이 어떤가.
▲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기쁜 건 아니다. 시즌 개막을 준비하는 과정이지만 좋은 타구를 날린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다.
-94.7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공략해 홈런을 쳤는데 KBO리그와 구속 차이는.
▲ 구속 차이일 수도 있지만 구속이 비슷해도 공끝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투수들이 (미국에) 더 많다. 왜냐하면 모든 투수들의 신장이 다 크다. 높은 타점에서 날아와서 좋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코치님들이랑, 나 개인적으로 겨울에 훈련한 게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생각한다.
-홈런을 치고도 전력으로 달렸는데.
▲ 넘어갈 줄 몰랐다. 너무 잘 맞아서 탄도가 조금 낮았다.우중간으로 가서 2루타나 3루타를 생각하고 열심히 뛰고 있었는데 심판이 손을 흔들고 있어서 그때 알았다.
-두 번째 경기를 치렀는데 여기 와서 적응하는 과정은 어떤지.
▲ 아직 2경기밖에 안 해서 뭐라고 평가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오랜만에 경기를 하면서, 또 메이저리그에 와서 경기를 하는 게 매일매일 즐겁다. 아직 경기가 많이 남은 만큼 치르는 기간 동안 어떻게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에이스 로건 웹 투구를 뒤에서 지켜봤는데 어땠나.
▲ 확실히 메이저리그에서 알아주는 싱커를 갖고 있는 투수다. 오늘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그라운드볼도 많이 나온다. 웹이 나오는 날에는 외야에서 할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 있어 라이언 크리스텐슨 벤치코치님이랑 경기 중에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웹이 나왔을 때 어떻게 수비를 해야 할지 대화를 많이 나눴다. 좋은 투수와 함께 뛰어서 영광이다.
-오늘은 헬멧이 고정돼 있었는데.
▲ 조금 세게 눌러 썼다. 맞춤형 제작 헬멧은 아직 못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