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FA 시즌을 앞두고 있는 김하성(29·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기세가 시범경기부터 뜨겁다.
김하성은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캐멀백랜치에서 벌어진 2024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시범경기에 5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 3타수 1안타로 4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펼쳤다.
지난 23일 LA 다저스전, 25일 밀워키 브루어스전, 27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에서 모두 1안타 1볼넷으로 멀티 출루에 성공한 김하성은 이날까지 4경기 연속 안타로 시범경기에서 좋은 타격감을 이어갔다.
2회 첫 타석에서 김하성은 화이트삭스 우완 선발 데이비 가르시아의 3구째를 공략했으나 우익수 뜬공 아웃됐다. 하지만 4회 우완 브라이언 쇼 상대로 3-1 유리한 카운트를 점한 뒤 5구째를 받아쳐 중견수 앞 라인드라이브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어 쇼의 폭투가 나온 사이 2루까지 잽싸게 한 베이스 더 갔다. 화이트삭스 포수 마틴 말도나도가 원바운드 공을 블로킹하며 앞쪽에 떨어뜨렸지만 김하성이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7회 마지막 타석에도 안타성 타구를 날렸다. 좌완 새미 페랄타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6구째를 받아쳐 유격수 쪽 강습 타구를 쳤다. 화이트삭스 유격수 콜슨 몽고메리가 빠른 타구를 잡지 못했다. 포구 실책으로 기록됐지만 내야 안타를 줬어도 무방할 만큼 타구의 질이 좋았다.
이날까지 김하성의 시범경기 4경기 성적은 7타수 4안타(2루타 1개) 1타점 3볼넷. 몇 경기 안 치렀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갖기 어렵지만 타율 5할7푼1리, 출루율 7할로 봄부터 인상적인 활약하고 있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로 포지션을 옮겼지만 타격에 큰 지장 없이 자기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샌디에이고 루키팀 코치로 한 시즌을 함께했고, 올해도 스프링캠프 참관차 애리조나를 찾은 이동욱(50) 전 NC 다이노스 감독도 이날 구장을 찾았다. 이 전 감독은 “하성이는 여유가 생겼다. 메이저리그에 적응이 됐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뭘 해야 할지 알고 준비한다. 언제 힘을 쓰고 아껴야 할지 호흡부터 조절을 한다. 준비를 잘한 게 보인다”고 기대했다.
2020년 NC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끈 이 전 감독은 지난 17일 스프링 트레이닝 공식 소집 첫 날 대규모 한국 취재진을 보곤 “작년에는 한국 기자 분들이 얼마 없었다. 하성이가 (자국 취재진이 많은) 일본 선수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많이들 오셨다. 그만큼 하성이가 잘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라며 “아시아 내야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안 된다고 했는데 하성이가 톱클래스로 올라가면서 위상이 바뀌었다”고 감탄했다. 또한 이 전 감독은 “선수단 식당에도 김치, 고추장, 된장국 등 작년에 보지 못한 한식들이 생겼다. 팀에서도 그만큼 하성이를 배려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김하성을 키워내며 지난해 LG 트윈스의 29년 묵은 우승의 한을 푼 염경엽(56) 감독도 “하성이는 이제 메이저리그 선수다. 작년에 자리를 잡으면서 급이 다른 선수가 됐다. 미국 선수들은 그런 게 확실하다. 라커에서부터 (선수 보는) 기류가 다르다”며 제자가 어엿한 핵심 메이저리거로 성장한 것에 뿌듯해했다.
이어 염 감독은 “하성이가 메이저리그까지 가서 버틸 수 있는 건 야구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좋다는 것이다. 야구가 항상 인생의 첫 번째가 돼야 그 위치까지 갈 수 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며 타고난 재능만큼 굉장한 노력을 기울인 김하성의 자세를 칭찬했다.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야구인들도 김하성 이야기가 나오면 칭찬 또 칭찬 일색이다. 올 시즌 전격 도입한 ABS(자동볼판정시스템) 설명을 위해 심판진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현장을 찾은 허구연 KBO 총재도 “김하성의 상체를 보고 정말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뛸 때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커졌다. 미국 진출 후 김하성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감독과 단장으로 경험이 풍부한 양상문 SPOTV 해설위원도 “김하성이 처음 미국 진출한 뒤 2년까지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미국 선수들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해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기 버거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혼자 독하게 트레이닝하며 근육과 체력을 키워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는 어느 빅리거 못지않는 체력과 근력을 지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 김하성은 벌써부터 대형 계약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자칫 오버 페이스를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너무 들뜨지 않으려 한다. 그는 이날 경기 후 “타격감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어찌됐든 공을 더 보고 타이밍 잡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며 “시즌 때 많이 뛰어야 하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 아직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는 내달 20~21일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로 LA 다저스와 정규시즌 개막전을 갖는다. 예년보다 개막이 일주일 빨라진 가운데 다저스의 개막전 선발로 유력한 일본 괴물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도 이날 시범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텍사스 레인저스 상대로 2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19구 중 16구가 스트라이크로 커맨드가 완벽했고, 최고 96마일(154.6km) 포심 패스트볼에 스플리터, 커브, 슬라이더를 고르게 섞어 던졌다.
김하성이 올 시즌 가장 먼저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투수가 야마모토다. 이날 같은 시각 경기를 하느라 야마모토의 투구를 보지 못한 김하성은 그의 호투 소식에 “당연히 좋은 투수이니까 그렇게 던진다고 생각한다. 잘 준비해야 할 듯하다”며 “같은 메이저리그에 뛰는 선수로서 야마모토가 대단한 것은 리스펙하지만 그 이상은 없다. (두려움 같은) 그런 건 전혀 없다. 좋은 투수이지만 ‘못 칠 것 같다’는 생각은 없다”고 개막전 맞대결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정면 승부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