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누워 있는데 똑똑 하길래 누구지 했는데…”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는 LG 트윈스 외야수 박해민(34)은 지난 25일(이하 한국시간)이 생일이었다. 1990년생 2월24일생으로 매년 이맘때 캠프 때문에 해외에 있는 박해민에겐 해가 갈수록 생일이 무덤덤해졌다.
하지만 35번째 생일은 조금 특별했다. 평소처럼 훈련을 마치고 숙소 방 안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해민이 문을 열어보니 홍창기(31), 백승현(29), 신민재(28), 최동환(35), 이상영(24) 등 LG 후배 선수들이 케이크를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박해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후배 선수들이 몰래 준비한 깜짝 파티. 생일 초도 큰 것 3개, 작은 것 5개로 박해민의 한국식 세는 나이에 맞춰 케이크에 꽂는 세심함을 보였다.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부르며 박해민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박해민은 “나이를 먹으니까 갈수록 생일을 별로 생각 안 하게 되더라. 매년 해외에서 생일을 보내다 보니 조용히 넘어가곤 했다”며 “이번에는 후배들이 구하기 힘든 케이크까지 사와서 축하를 해줬다. 노래까지 불러줘서 너무 부끄러웠지만 나를 생각해주고, 생일까지 기억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전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시절에도 생일 축하를 받은 적이 있지만 20대 젊은 시절로 꽤 오래 전 추억이 됐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생일을 축하해준 후배들의 정성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후배들에게 작은 선물도 전하며 잘 챙긴 박해민이지만 “내가 선배인데 후배들한테 더 많은 것을 받는다. 더 잘해줘야 할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같은 외야수 홍창기에게 받는 것이 많다. 이번 캠프 기간 내내 박해민은 홍창기와 붙어다니며 타격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창기가 타격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방망이 면으로 치는 데 특화된 선수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칠 수 있는지 비교 영상으로도 많이 보고 있다. 캠프 기간 창기 옆에 계속 붙어다니면서 여러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3살 후배이지만 홍창기에게 타격 조언을 구하는 박해민은 “야구에 선후배는 없다. 잘하는 선수에게 배울 수 있으면 배워야 한다”며 “동료이지만 라이벌 경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거리낌 없이 같이 타격을 고민해주고,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창기에게 더욱 고맙다. 창기도 수정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서로 봐주고 있다. 둘 다 윈윈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내가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거듭 홍창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새 시즌 테이블세터로 1번 박해민, 2번 홍창기를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박해민이 9번, 홍창기가 1번을 주로 쳤다. 염 감독은 “1~2번 박해민과 홍창기 타순을 빼고 거의 다 정해졌다”며 “박해민이 1번타자로 들어가면 도루도 할 수 있고, 상대 배터리를 흔들 수 있다. 홍창기의 컨택이 워낙 좋기 때문에 번트 없이 강공으로 빅이닝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박해민-홍창기 테이블세터 효과를 기대했다.
도루 성공률이 떨어지는 점을 빼면 ‘출루왕’ 홍창기는 리그 최고 수준의 1번타자다. 하지만 박해민을 1번으로 넣어 공격 다변화와 득점력 증가를 꾀하는 염 감독 구상이 완성되기 위해선 그의 타격이 조금 더 좋아져야 한다. 삼성 시절 1번타자로서 경험이 풍부한 박해민은 수비와 주루가 워낙 부각돼 그렇지 프로 12시즌 통산 타율 2할8푼7리, 출루율 3할5푼3리로 타격 지표도 괜찮다. 지난해에도 144경기 타율 2할8푼5리(485타수 138안타) 6홈런 59타점 26도루 출루율 3할4푼8리 기록했다.
박해민은 “1번은 많이 쳐봤던 타순이라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감독님의 계획대로 가기 위해선 내가 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기는 어느 정도 에버리지도 있고, 출루율이 워낙 좋은 타자라 1~2번 어느 타순을 치든 상관없다. 내가 1번에서 잘하면 감독님 말씀대로 팀의 득점력이 높아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투수들도 편한 상황에서 던질 수 있을 것이다”고 책임감을 보였다.
2015~2018년 4년 연속 도루왕에 오른 박해민은 통산 368도루로 KBO리그를 대표하는 ‘대도’이기도 하다. 베이스 크기 확대와 피치 클락 시험으로 발 빠른 선수들이 득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박해민은 “새로 커진 베이스를 처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이전 작은 것과 비교해보니 엄청 커진 게 느껴진다. 베이스간 거리가 짧아진 만큼 올해는 더 많이 움직이려고 한다. 최근에는 팀도 옮기고, 상대 견제가 워낙 심해 마음속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뛰지 않았다. 올해는 조금 더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전경기 출장과 함께 다시 한 번 도루왕을 목표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해민은 LG 이적 후 2년 연속 144경기 모두 나가는 등 전경기 출장만 6시즌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