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한 번 하지 못하고 떠나서 죄송하다.”
지난 2013년 1월5일. 한화 이글스는 대전구장 옆 한밭체육관에서 KBO리그 출신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에이스 류현진(37)을 위한 환송회를 열었다. 한화 구단 모든 관계자들과 팬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류현진은 “우승 한 번 하지 못하고 떠나서 죄송하다. 나중에 돌아오면 한국시리즈에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2006년 한화에서 데뷔한 류현진은 2012년까지 7년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데뷔 첫 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가장 정상에 근접한 해로 2007년 3위가 마지막 포스트시즌으로 남았다. 8개 구단 체제 시기였던 2008년 5위, 2009~2010년 8위 꼴찌, 2011년 공동 6위, 2012년 8위 꼴찌로 암흑기의 초입을 경험하고 떠났다.
그로부터 11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메이저리그에서 10시즌을 꽉 채운 류현진은 이제 친정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11월 FA 자격을 얻었지만 연봉 1000만 달러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팀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오퍼는 없었다. 오랜 미국 생활로 심신이 지쳤던 류현진은 한화 복귀를 결심하며 그때 약속을 지키러 온다.
한화는 류현진이 떠난 뒤 11년간 기나긴 암흑기를 보냈다. 2013~2014년 2년 연속 신생팀 NC에도 밀려 9위 꼴찌로 굴욕의 역사를 썼다. 2015년 6위, 2016년 7위, 2017년 8위로 주춤하다 2018년 3위로 깜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2019년 9위로 다시 미끄러지더니 2020년에는 KBO리그 역대 최다 타이 18연패 충격 속에 10위로 또 꼴찌로 추락했다. 2021~2022년까지 3년 연속 10위 꼴찌로 바닥을 기었다. 류현진 떠난 뒤 감독만 4명이나 바뀌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한화는 노시환이라는 홈런왕을, 문동주라는 토종 에이스를 발굴해냈다. 2023~2024년 신인 전면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으로 고교 최대어 투수 김서현과 황준서를 연이어 손에 넣었다. 지난해 9위로 어렵게나마 탈꼴찌에 성공하며 암흑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면 리빌딩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자 한화는 과감한 투자로 전력 보강에 나섰다. 지난해 FA 채은성, 이태양을 데려온 데 이어 올해는 안치홍을 깜짝 영입했다. 2차 드래프트에서 김강민, 방출 시장에서 이재원을 데려오는 등 젊은 선수들이 주를 이루는 팀에 베테랑들을 곳곳에 배치해 경험을 더하고 경쟁 체제를 구축했다. 고참들이 중심을 잡고, 젊은 선수들이 보고 배우는 구성이 이뤄지면서 팀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더 이상 느슨한 팀이 아니다.
올 시즌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히는 상황에 류현진까지 왔다. 웬만한 외국인 투수를 능가하는 전력이다. 리그를 호령할 만한 1선발의 가세로 한화 전력은 단숨에 5강 이상을 넘볼 수 있게 됐다. 타구단 감독들도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한화가 안 그래도 세졌는데, 메이저리그에 가지 왜…”라는 농담을 하며 “(류현진 복귀는) 머릿속에 없었는데 이제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경계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한화는 좋겠다. 외국인 투수들까지 잘하면 정말 탄탄한 선발 로테이션이다. 문동주까지 선발이 안정돼 있다. 전체적인 투수력이 좋은 팀이다”고 말하며 “안치홍이 합류해서 방망이도 보강이 됐다. 노시환, 채은성까지 있으니 정말 세졌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김태형 롯데 감독도 “안치홍으로도 7~8승을 더 할 수 있는데 (류현진 가세로) 최소 8승을 더 거두는 효과가 얻을 것이다”며 한화가 지난해보다 최소 15승 이상 추가할 수 있는 전력이 될 것이라고 봤다. 한화는 지난해 58승(80패6무)을 올렸는데 여기서 15승을 더하면 78승으로 5강 경쟁권이 된다.
잠재력이 큰 젊은 선수들이 투타에서 많은 팀이라 성장에 가속도가 붙으면 전력 상승 효과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류현진이란 현역 빅리거 가세로 전력 상승뿐만 아니라 젊은 투수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로서 동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손혁 한화 단장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류현진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문동주, 김서현, 황준서, 남지민, 한승주, 김기중 등 영건들 뿐만 아니라 27세 외국인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도 류현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화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에도 꼴찌였다. 야구라는 종목 특성상 선수 1명이 팀을 완전히 바꿔놓을 순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류현진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고, 12년 전과 비교해 팀 전력도 어느 정도 올라왔다. 리그에서 가장 미래가 밝은 팀이다. 돌아온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루지 못한 우승의 꿈을 이룰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