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타석에서 직접 보고 싶어 했던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첫 상대는 211cm 역대 최장신 투수 션 젤리(26)였다.
이정후는 2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선수단 전체 스프링 트레이닝 첫 날을 맞아 라이브 배팅을 소화했다. 타석에서 투수가 전력으로 던지는 공을 보고 치는 실전에 가까운 훈련. 미국에 온 뒤 실내 타격과 프리 배팅만 해온 이정후가 가장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오전 9시 팀 미팅에 이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이정후는 주루, 수비 훈련을 마친 뒤 오전 11시50분께 라이브 배팅을 위해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마이클 콘포토, 루이스 마토스와 같은 조를 이룬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장신 투수인 우완 젤리를 만났다. 6피트11인치, 211cm로 장신 투수의 대명사인 ‘빅유닛’ 랜디 존슨(208cm)보다도 3cm 더 크다.
2002~2013년 11시즌간 활약한 우완 투수 존 라우치와 함께 빅리그 역대 최장신 공동 1위인 젤리는 2022년 데뷔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2년간 통산 23경기(54이닝) 모두 구원등판, 3승3패1홀드 평균자책점 6.17 탈삼진 59개로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진 못했다. 하지만 평균 94.8마일(152.3km) 싱커에 커브를 주로 구사한다. 큰 키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가 위협적이다.
젤리 상대로 이정후가 첫 라이브 배팅에 들어서자 구장을 찾은 샌프란시스코 관중들이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초구를 지켜본 이정후는 2~3구 직구와 변화구도 눈으로 보기만 했다. 이어 4구째 공을 친 것이 2루 땅볼이 됐다. 배트가 부러지자 새 배트를 넘겨받고 타석에 돌아온 이정후는 5~6구째 공도 지켜본 뒤 타석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 투수로 만난 우완 닉 아빌라(26)도 6피트4인치로 195cm 장신이었다. 아직 빅리그 경력이 없는 투수로 독특한 세트 포지션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구가 되지 않았고, 이정후는 1~3구를 골라낸 뒤 4구째 공을 밀어쳐 좌측으로 향하는 타구를 만들어내며 이날 첫 라이브BP를 마쳤다.
훈련을 마친 뒤 클럽하우스에서 취재진을 만난 이정후는 “공을 솔직히 많이 보지 못했다. 스윙도 두 번 했는데 전부 (타구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서 나쁘지 않았다”며 “오늘은 첫 날이라 그런지 투수들의 스피드나 구위를 잘 모르겠다. 투수랑 타석에서 거리감이 잘 없다. 라이브 배팅이 계속 있으니 앞으로 하면서 적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211cm 젤리를 상대한 것에 대해선 “엄청 컸다. 전체적으로 투수들의 신장이 다 크다.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체격 조건이 좋은 투수들이 많은 메이저리그이고, 이날 라이브 배팅를 통해 이 같은 부분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다.
라이브 배팅 이후 프리 배팅으로 홈런성 타구도 여러 개 터뜨린 이정후는 “연습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타격을 하고 있다. 홈런을 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정한 방향에 목적을 갖고 훈련하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연습하면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치려고 했다. 그걸 여기서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선수단 전체 첫 공식 소집으로 이정후는 훈련에 모든 신경을 쏟았다. 얼마나 집중했으면 라이브BP를 시작할 때 팬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투수 공 보는 것에만 신경써서 (팬들의 환호가) 잘 들리지 않았다”는 이정후는 “이전까지는 공식 훈련이 아니다 보니 스케줄도 중간중간 텀도 있고 했는데 지금은 텀 없이 계속 움직인다. 오전 9시부터 지금(오후 1시30분경)까지 쉬는 시간 없이 계속 했다. 정신 없는 하루였지만 이제 시작이다. 시범경기를 시작하면 적응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는 25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시카고 컵스 상대로 시범경기 개막전을 갖는다. 개막전 출전 여부에 대해 이정후는 “아직 들은 게 없다”며 “시범경기에서도 공을 많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대한 많은 공들을 보면서 리그에 적응하는 게 제일 우선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직 리그와 팀 스케줄이 어떻게 돌아가고,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신인처럼 행동하려고 한다”며 적응을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