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지극정성이 통했다. 류현진(36)의 국내 복귀가 임박했다. 메이저리그 오퍼도 있었지만 한화의 진정성 있는 기다림이 류현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화는 20일 호주 멜버른에서 일본 오키나와로 스프링캠프 장소를 옮긴다. 21일부터 시작되는 오키나와 캠프에는 류현진이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달 초부터 한화가 류현진 측에 계약 조건을 제시하면서 결정을 기다렸고, 류현진도 고심 끝에 복귀 쪽으로 마음을 거의 굳혔다.
한화는 2022년 11월 두산 베어스와 4+2년 최대 152억원에 계약한 양의지를 넘어 KBO 역대 최고 대우를 류현진에게 보장했다. 4년 계약이 기본이지만 기간을 조금 더 늘려 샐러리캡 부담을 낮추고 총액 수준을 높이는 계약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의 복귀로 KBO리그 판도도 크게 뒤바뀔 것으로 보인다.
3개월 넘도록 FA 미계약, 만족할 오퍼 없었다
류현진은 지난해 11월3일(이하 한국시간) 공식적으로 FA 신분이 됐다. 우선 조건은 빅리그 잔류였다. 연평균 1000만 달러 이상 조건으로 우승 도전이 가능한 팀을 기준으로 삼았다. 2019년 내셔널리그(NL) 평균자책점 1위, 올스타전 선발투수,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4년 8000만 달러 FA 대박 계약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우승 빼고 웬만한 것을 다해본 류현진에게는 유일한 미련으로 남아있었다.
1000만 달러는 어느 팀에서든 선발투수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FA 계약의 기준점이 된다. 그런데 기대했던 오퍼가 오지 않았다.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11월9일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열린 단장회의 때 “류현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내년에도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던질 것이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우승 경쟁이 가능한 강팀에서 1000만 달러 오퍼라는 원하는 조건이 딱 들어맞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5선발 투수가 필요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류현진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촉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고액 장기 계약을 남발한 샌디에이고는 지역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 파산 문제로 주요 수입이 끊겨 긴축 재정으로 기조가 바뀌었다. 4~5선발에 외야수까지 1~2명 추가 보강이 필요한 샌디에이고는 현재 페이롤상 2000만 달러 정도로 쓸 수 있는 금액이 제한돼 있다.
A.J. 프렐러 샌디에이고 단장은 지난 14일 스프링 트레이닝이 차려진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에서 류현진 관련 질문에 “특정 투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류현진은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는 선수다. 지난해 부상에서 돌아와서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며 호감을 표시했지만 류현진이 몸값 할인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협상이 결렬됐다.
류현진 배려하며 기다린 한화, 때를 놓치지 않았다
한화는 오래 전부터 류현진과 토론토의 계약 종료 시점에 맞춰 복귀 작업을 물밑에서 진행했다. 지난해 8월2일 류현진이 토미 존 수술 이후 재활을 마치고 부상 복귀전을 가졌을 때 손혁 한화 단장이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센터를 직접 찾았다. 지난해 7월말 KBO 단장들이 워크샵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는데 손 단장은 캐나다로 방향을 틀어 류현진을 만난 뒤 귀국했다.
이때부터 국내 복귀에 대한 교감이 있었지만 류현진이 빠르게 반등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부상 복귀 후 류현진은 11경기(52이닝) 3승3패 평균자책점 3.46 탈삼진 38개 WHIP 1.29로 경쟁력을 보여주며 건재를 알렸다. FA로서 시장 수요를 확인할 만한 성적을 냈고, 한화도 서두르지 않았다. 류현진이 충분히 숙고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당초 류현진은 12월 연말까지 메이저리그 잔류 또는 한화 복귀라는 큰 틀에서의 결정을 한화에 알릴 계획이었다. 한화도 새 시즌 준비에 집중을 해야 하고, 자신의 거취 결정이 늦어지는 것이 구단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이상 LA 다저스) 두 일본인 슈퍼스타들이 12월 중순에야 행선지를 결정하면서 나머지 FA 선수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졌다.
이에 류현진은 해를 넘겨 1월 초중순으로 결정 시한을 미뤘지만 한화는 “오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좋다. 2월이든 3월이든 기다리겠다”며 협상의 데드라인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 FA, 2차 드래프트 영입과 외국인 선수 계약까지 어느 정도 전력 구상이 끝나 류현진을 재촉할 필요도 없었다. 길게 봐선 시즌이 시작된 뒤라도 언제든 복귀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뒀다.
겨울에 류현진과 식사 자리를 갖고, 3~4일에 한 번씩 통화하며 교감을 나눈 손혁 단장은 계속 진정성을 보였다. 2월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뒤 때를 봤고, 공식적인 오퍼도 넣으며 답을 기다렸다. 블레이크 스넬, 조던 몽고메리, 맷 채프먼, 코디 벨린저, J.D. 마르티네스 등 보라스 고객 FA들이 아직도 미계약 신분으로 시장에 남으면서 장기전으로 흘러가자 한화에게 유리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한화가 키운 류현진, 10년 뒤 복귀 약속 지킨다
류현진은 한화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6년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에 입단할 때만 해도 계약금 10억원을 받은 한기주(당시 KIA),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 나승현(당시 롯데) 그리고 같은 팀 1차 지명 유원상에게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데뷔 첫 해부터 KBO리그를 지배했다. 좌완으로 150km 강속구에 제구력, 대선배 구대성에게 배운 체인지업까지 빠르게 장착하며 ‘괴물 투수’ 탄생을 알렸다.
그해 30경기(201⅔이닝) 18승6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 탈삼진 204개로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에 오르며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리그 최초로 MVP·신인왕을 동시 석권한 류현진은 2012년까지 7년간 통산 190경기(181선발·1269이닝) 98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탈삼진 1238개로 활약했다. 이 기간 리그 최다 이닝, 승리, 탈삼진에 평균자책점 1위로 압도적인 투구를 했다.
해외 진출 자격을 갖춘 류현진은 구단에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요청했고, LA 다저스가 2573만7737달러33센트 입찰 금액을 내고 단독 협상권을 따냈다. 당시 환율로 약 28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한화에 안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세법에 따라 22%를 떼고 나머지 약 230억원으로 한화는 대전 홈구장 리모델링부터 FA 선수 영입, 서산 전용훈련장 시설 개선 비용으로 썼다.
2013년 1월5일 한화는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기념 특별 환송회를 열었다. 당시 류현진은 “한화는 지금 나를 만들어준 팀이다. 한화가 아닌 다른 팀에 갔다면 이런 자리에 감히 있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준 구단이다. 앞으로도 계속 보답해야 할 팀이다”고 말했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에 대해 “한화에 돌아와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ML 10년 커리어 마무리, 류현진이 남긴 족적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10시즌 통산 186경기(185선발·1055⅓이닝) 78승48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3.27 탈삼진 934개 WHIP 1.18를 기록했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그 투수로는 박찬호(124승·1993이닝·1715탈삼진)에 이어 다승, 이닝, 탈삼진 2위. 누적 기록은 박찬호가 앞서지만 평균자책점(4.36), WHIP(1.40) 등 비율 기록에선 류현진이 우수하다.
임팩트에선 류현진만한 한국인 빅리거 투수가 없다.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부터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30경기(192이닝)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 탈삼진 154개로 활약하며 내셔널리그(NL) 신인상 투표 4위에 올랐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2019년으로 그해 29경기(182⅔이닝) 14승5패 평균자책점 2.32 탈삼진 163개로 리그를 지배했다. 아시아 투수 최초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가져갔고, NL 사이영상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 투수로는 가장 사이영상에 근접한 순간이었다.
2020년 토론토 이적 첫 해 코로나19 단축 시즌에는 12경기(67이닝) 5승2패 평균자책점 2.69 탈삼진 72개로 아메리칸리그(AL) 사이영상 3위에 올랐다. 2021년 후반기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2022년 6경기 만에 토미 존 수술로 시즌 아웃되면서 커리어 중대 고비를 맞았지만 지난해 후반기에 돌아와 건재를 알리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두 번의 계약도 임팩트가 있었다. 2012년 12월 다저스와 협상 마지막 날까지 끝장 전략을 펼치면서 6년 3600만 달러에 계약했다. KBO리그에서 빅리그로 직행한 최초 선수가 됐고, 2018년 시즌 후에는 다저스의 1년 1790만 달러 퀄리파잉 오퍼(QO)를 받으면서 한국인 최초 수락 선수가 됐다.
2019년 12월에는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에 FA 계약을 하며 한국인 투수 역대 최고 대우를 받았다. 2020년 코로나19 단축 시즌 때 줄어든 경기수 만큼 연봉이 깎이긴 했지만 11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누적 수입은 총 1억2138만2407달러. 현재 환율로 약 1622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