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유격수 중 수비를 제일 잘했다.”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유격수 복귀 소식은 메이저리그 주요 뉴스 중 하나였다. 11년 2억8000만 달러(약 3740억원)로 대형 FA 계약을 체결한 ‘거물 스타’ 잰더 보가츠(32)가 1년 만에 유격수 자리를 내놓고 2루수로 포지션을 옮긴 것이다.
메이저리는 돈의 논리로 움직인다. 지난 2021년 1월 샌디에이고와 4+1년 보장 2800만 달러(약 374억원)에 계약한 김하성보다 정확히 10배나 몸값이 비싼 선수가 10년간 지켜왔던 자리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보가츠가 지난해 몸값 대비 활약이 저조하긴 했지만 수비가 눈 뜨고 보지 못할 수준까진 아니었다는 점에서 김하성의 수비 가치가 크게 인정받았다고 봐야 한다.
마이크 쉴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스프링 트레이닝 야수조 소집 첫 날 아침에 보가츠에게 양해와 동의를 구한 뒤 김하성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을 거쳤다. 김하성은 “오늘 아침에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갑자기 들어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가 계속해서 뛰어왔던 포지션이 유격수라 가장 편하다. 그만큼 팀에서 믿어준다고 생각한다.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스프링 트레이닝을 치르고 있는 ‘신인 빅리거’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이 소식을 접했다. 이틀 전 휴식날에 김하성을 만나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그가 유격수로 복귀할 줄은 몰랐다. 당사자인 김하성도 당일에 알았을 정도였으니 샌디에이고는 시간을 두고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17~2020년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에서 4년을 함께한 이정후는 ‘유격수 김하성’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18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만난 이정후는 “하성이형은 어디든 수비를 다 잘하지만 어릴 때부터 봤던 자리가 유격수라서 그런지 유격수가 제일 잘 어울린다. 내가 본 유격수 중 수비를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정후는 “한국에서는 하성이형이 방망이 워낙 잘 쳐서 수비가 저평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격수로서 타격이 워낙 좋다 보니 수비 얘기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 고척돔을 쓰는 것을 감안하면 수비도 하성이형이 제일 잘했다”고 말했다. 인조잔디로 타구 속도가 빠른 고척돔은 그라운드 흙도 딱딱해 바운드도 크게 튀어올라 내야수들이 가장 수비하기 어려운 구장이다.
2016~2020년 5년간 고척돔이 홈이었던 김하성은 이 기간 홈 342경기에서 실책 56개를 기록했다. 원정 349경기에서 실책 36개보다 20개가 더 많았다. 이정후 말대로 고척돔 영향으로 한국에선 그의 수비력이 저평가된 면이 없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수비력으로 먼저 인정을 받았고, 2022년 주전 유격수로 내셔널리그(NL) 유격수 부문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주 포지션 2루수로 3루수, 유격수를 넘나들며 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 역사였다.
한편 고척스카이돔은 내달 20~21일 샌디에이고와 LA 다저스의 MLB 월드투어 개막전 서울 시리즈를 앞두고 노후된 인조잔디를 폐기하면서 그라운드 정비 작업을 지난해 11월부터 진행 중이다. 달라진 환경 속에 김하성은 4년 만에 고척돔 그라운드를 밟는다.
김하성은 “고척돔에서 유격수로 뛰는 것이 기대된다. 서울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르는데 그게 고척돔이라서 내게는 더욱 좋다. 익숙한 곳이기도 하고, 조금 묘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며 “한국팬들 앞에서 메이저리그 유니폼 입고 뛰는 것 자체가 설레고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부담도 있긴 한데 한 달 정도 남아있기 때문에 준비 잘해서 한국팬들께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