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돌아왔지만 익숙하기 보다는 낯선 팀에 가깝다. 그러나 낯선 환경의 벽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김민성(36)은 팀원들, 특히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서면서 팀에 녹아들고 있다. 후배들도 이러한 김민성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반했다.
지난해 LG 트윈스 29년 만의 통합 우승 주역 중 한 명이었던 김민성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다. LG 잔류가 유력했다. 하지만 LG는 샐러리캡 한도 문제로 김민성에게 적절한 대우를 할 수 없었다. 또한 LG에서 김민성의 자리는 주전이 아닌 백업에 가까웠다. 기회가 많이 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LG와 김민성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 틈을 롯데가 파고 들었다. 롯데는 지난 겨울, 김민성을 향한 관심을 은연 중에 드러냈다. 주전 2루수 안치홍을 한화로 떠나보낸 뒤였기에 내야진 보강이 시급하기도 했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서 오선진과 최항을 영입했지만 김민성의 상황도 지켜보면서 데려올 수 있는 기회를 엿봤다.
롯데 역시 샐러리캡 문제가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는 없었지만 협상은 1월 중순 이후 급진전됐다. 그리고 롯데는 김민성을 데려왔다. 2+1년 최대 9억원(계약금 2억원, 연봉 5억원, 옵션 2억원)에 계약했다. 그리고 내야수 김민수를 보내는 조건으로 사인 앤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3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았고 2010년 넥센(현 키움)으로 트레이드 됐던 김민성은 14년 만에 극적으로 친정팀 롯데로 컴백할 수 있었다.
롯데는 김민성의 전략적 가치를 우선했다. 지난해 LG에서 김민성은 김태형 감독은 김민성을 주전 2루수로 낙점했다. “김민성만큼 수비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라면서 김민성을 중심으로 내야진을 재편하고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중이다. 거포 3루수로 올해 부활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한동희가 있지만 한동희도 시즌 중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대가 확실시 되고 있다. 내야진 곳곳에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김민성은 내야진 공백을 채우고 전력을 끌어올릴 자원이었다.
특히 지난해 김민성은 LG 내야진에서 없어서는 안됐던 만능 선수였다.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모든 포지션에서 최소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수였다,. 2루수로 45경기(37선발) 280이닝에 나섰고 유격수 21경기(18선발) 145이닝, 3루수 27경기(14선발) 135이닝, 마지막으로 1루수 27경기(10선발) 105⅔이닝을 뛰면서 내야진의 빈틈을 막았다. LG 내야진의 줄부상 상황에도 정규시즌 우승레이스에서 쓰러지지 않은 원동력은 김민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김민성 스스로도 “지난해 여러 포지션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닝을 소화할 줄은 솔직히 몰랐다. 4개의 포지션을 잘 소화하고 LG의 우승까지 가는데 있어서 제 역할도 분명히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라며 “롯데로 이적을 했지만 LG에서 감독님과 코치님이 저를 믿고 기용해주시고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가질 수 있었고 제 야구 커리어에 있어서 자부심을 가질만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즌이 개막을 해야 김민성의 전력적 활용도에 대한 논의와 확인이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기간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은 그의 리더십이다. LG에서도 리더십 그룹에 포함됐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독려했다. 속으로는 주전 열망이 있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후배들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소화하면서 팀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롯데 박준혁 단장은 김민성을 영입할 당시, “김민성이라는 선수의 가치는 리더십에 있다고 본다. 선수 중심의 야구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팀에서 주장인 전준우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면서 “주장 밑에서 야수들의 리더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리그에서 김민성이라는 선수의 평가는 리더십이 뛰어나고 솔선수범하면서 후배들에게도 잘 알려주고 소통하는 리더로서 충분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중론이다. 또 다른 리더 역할을 하는 선수로서 전준우와 함께 팀의 중심을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라며 김민성의 리더십도 영입 배경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14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지만 선수단 구성 등이 너무 달라졌기에 사실상 새롭고 낯선 팀이나 다름 없다. 과거 함께했던 전준우, 정훈 등이 롯데에 여전히 남아있고 유강남, 진해수 등의 선수들은 LG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베테랑 선수들과 지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젊은 선수들과 어떻게 지내느냐가 중요했다. 롯데 이적의 이유를 후배들과 잘 지내며 리더십으로 보여줘야 했다.
지난 16일 열린 자체 청백전이 대표적인 예다. 김민성은 이날 7번 지명타자로 출장했고 6회 좌월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이때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김민성을 후배들이 어떻게 맞이할지 상의했고 지난해 LG의 홈런 세레머니를 떠올렸다. 김민성이 그라운드를 돌아서 복귀하자 고승민 윤동희 김민석 등 후배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기다렸고 김민성을 끌어들여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김민성과 후배들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2년차를 맞이하는 외야수 김민석은 “타격적으로 많이 알려주신다. 지난해는 존을 크게 그려놓고 빨리 결과를 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까 막히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김민성 선배님께서 ‘LG에서 내가 봤는데, 그렇게 치다 보면 타율이 떨어질 때 끝없이 떨어진다. 자기 존이 있어야 떨어져도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방식으로 쳐봐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쳐봤다’고 경험을 말씀해주신다. 무엇보다 제가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선배님이 ‘왜 안됐는지 생각을 해봤어?’라고 되려 역으로 질문을 해주셨다. 그때 내가 답이 막혔다. 이렇게 먼저 생각을 해주신 선배님은 처음이었다. 알려주시는 부분들이 다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국가대표 우익수로 거듭난 윤동희도 김민성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는 “정말 신기했던 게, 신인 때 처음 올라와서 안타를 쳤을 때 1루수가 민성 선배님이었다. 그때 얘기도 많이 했고 시즌 때 몇번 뵈었을 때도 ‘전 지금 어떻습니까’라고 많이 물어보곤 했다”라면서 “선배님께 먼저 다가가고 말 거는 것이 힘든데 선배님께서 먼저 오셔서 질문을 하신다. 그 이후로 저도 말을 먼저 거는 게 편해져서 많이 물어보고 있다. 정말 멘토가 한 명 더 생긴 것 같다”라며 선배의 합류를 반겼다.
내야진의 직접적인 경쟁자이지만 후배인 한동희에게도 김민성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동희는 “작년 우승팀에 계셨으니까, 팀이 잘 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신다. 시즌을 치를 때 수치나 목표를 잡아서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도 해주신다”라며 “또 수비에서도 잡고 던지는 것들에 대해 미리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를 먼저 질문하시고 또 알려주신다”라고 언급했다.
포수 손성빈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저나 (윤)동희에게 먼저 다가와서 얘기를 해주시고 부족한 부분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먼저 얘기해주셔서 감사하다. 친하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선배님인 것 같다”라면서 “김민성 선배님이 오시고 분위기도 좋아진 것 같다”라고 웃었다.
김민성은 후배의 고충을 선배가 알기에 그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려고 했다. 김민성은 “후배들이 솔직하게 먼저 다가오는 게 어렵다. 제가 아무리 좋은 선배라고 하더라도 먼저 다가가기 어렵다”라며 “그래서 훈련할 때나 지나갈 때 제가 먼저 말은 건다. 후배들에게 ‘밖에서 봤을 때는 이런 모습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어떻게 그동안 야구를 해왔냐’ 등을 물어본다. 이 친구들의 야구관에 대해서 일단 물어봤다. 요즘 친구들은 어떻게 야구를 대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솔직히 궁금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도 야구를 오래 했지만 처음 만난 후배들의 야구관을 모르고 제 경험을 말하는 것보다는, 어린 선수들이 그동안 어떻게 야구를 했는지, 이 선수의 생각이 어떤지를 물어보는 편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린 친구들도 앞으로 어떻게 야구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립이 될 수 있다. 대화를 통해서 많이 이끌어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 친구들이 내 질문에 하는 대답에 따라서 내 경험을 얘기해준다. 지금 준비를 아무리 잘해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라면서 “그럴 때 저 뿐만이 아니라 선배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정립이 되고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김민성은 긴 시즌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후배들과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려는 이유다. 그는 “개인적인 기량이나 피지컬은 뛰어난데 6개월 간의 시즌 흐름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부분들이 있더라. 캠프 때는 당연히 잘 된다. 하지만 시즌 때는 너무 변수가 많다”라면서 “그래서 변수들을 생각하고 또 어떻게 큰 그림을 그리고 가야할지를 제가 얘기해주는 편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안될 때 너무 얽매이다 보면 팀 성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저도 그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후배들을 어떻게 이끌고 가야 하는지를 매일 고민하고 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장인 전준우도 오랜만에 만난 김민성의 리더십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다. 그는 “민성이가 경험을 또 많이 쌓아서 왔다. 후배들에게 해주는 모습, 보여주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더라. 키움, LG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워왔기 때문에 후배들도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도 잘 맞추는 것 같고 잘 이끌어가는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알게 모르게 김민성 효과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함께한 시간이 2주 남짓에 불과한 김민성이라는 베테랑이 롯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후배들 역시 흠뻑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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