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아시게 되겠지만…포지션 변동 사항이 있다.”
김하성(28)은 1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의 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치러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2024 스프링 트레이닝 야수조 포함 팀 전체 소집 첫 날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포지션 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확정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김하성의 얼굴 표정에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곧 이어진 마이크 쉴트 샌디에이고 감독의 훈련 전 인터뷰에서 김하성의 포지션 변경이 공식화됐다. 2루수에서 유격수 복귀였다. 김하성도 “오늘 아침에 처음 들었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FA 시즌을 앞두고 가치를 최고조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김하성은 2022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손목 부상과 금지 약물 적발에 따른 징계로 주전 유격수 기회를 잡았다. 그해 내셔널리그(NL) 유격수 부문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수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시즌 후 샌디에이고가 ‘거포 유격수’ 잰더 보가츠를 11년 2억8000만 달러 거액에 FA 영입하면서 지난해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주 포지션을 내줬지만 김하성은 2루를 중심으로 3루수, 유격수를 커버하며 리그 정상급 수비력을 뽐냈다.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받으면서 아시아 내야수 최초 수상자로 역사를 썼다.
그리고 이날 스프링 트레이닝 공식 훈련 첫 날 아침 김하성은 쉴트 감독에게 “올해 유격수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샌디에이고 구단 차원에서 지난해 시즌 종료 후 김하성과 보가츠의 포지션 스위치가 논의됐고, 신임 사령탑인 쉴트 감독이 비시즌 때 보가츠가 있는 네덜란드령 퀴라소 아루바까지 찾아가 이와 관련한 진지한 얘기를 나누며 준비했다.
보가츠는 지난해 타격도 기대에 못 미쳤지만 유격수로서 수비 지표가 조금씩 떨어졌다. 보가츠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면서 김하성의 수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2루수 보가츠-유격수 김하성’ 조합이었다. 몸값이 워낙 비싼 보가츠이지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받아들였다.
쉴트 감독은 “포지션 변경 과정에서 보가츠를 향한 나의 존경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보가츠는 작년에도 유격수로 좋은 활약을 했고, 우리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서도 유격수로서 김하성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팀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보가츠를 정말 존경하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쉴트 감독은 “지난해 김하성은 유격수로 골드글러브 후보였지만 2루로 자리를 옮겼다. 2년 전까지 유격수였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도 지난해 돌아와 우익수로 뛰며 플래티넘 글러브를 받았다. 2루에서 올스타를 2번 받은 제이크 크로넨워스도 기꺼이 1루로 가서 수비적으로 좋은 해를 보냈다. 팀과 개인의 성공을 이끌어낸 훌륭한 예들이 있다”고 기대했다.
보가츠는 “내가 샌디에이고에 온 유일한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내가 유격수가 아닌 2루로 가서 우승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며 “이렇게 유격수 자리에서 일찍 물러날 줄 몰랐지만 그동안 충분히 잘해냈다. 김하성도 있고, 이제는 (유격수를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날 수비 훈련도 유격수 자리에서 한 김하성은 “원래 내가 하던 포지션이라 크게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준비를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크다”며 “보가츠 선수가 양보 아닌 양보를 해줬다. 큰 결정을 한 것이다. 팀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걸맞게 잘해야 한다”고 책임감을 보였다.
2루수가 아닌 유격수로서 ‘예비 FA’ 김하성의 가치도 한층 더 높아졌다. 유격수로 지난해 타격 생산성을 유지한다면 1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대형 계약을 따낼 수 있다. 이에 대해 김하성은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것보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FA는 내가 잘하면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다. FA를 따라가면 분명 안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하던 것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