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개막전 1번타자로 확정된 이정후(25)가 첫 야외 훈련에서 홈런을 펑펑 때렸다. 프리 배팅이긴 해도 기대를 뛰어넘는 파워로 존재감을 뽐냈다.
이정후는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투수·포수조 스프링 트레이닝 소집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수들은 21일부터 공식 합류이지만 이정후는 이달 초 일찌감치 캠프지로 넘어와 몇몇 선수들과 소수로 개인 훈련을 해왔다.
이날은 처음으로 야외에서 프리 배팅도 나섰다.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은 홈에서 펜스까지 거리가 좌측 360피트(109.7m), 중앙 430피트(131.1m), 우측 340피트(130.6m)로 상당히 큰 구장인데 이정후가 담장 너머로 계속 타구를 보냈다. 4개의 홈런 타구를 만들어내며 상당한 파워를 과시했다. 배팅 케이지 뒤에서 이정후의 타격을 지켜보던 샌프란시스코 동료 타자들도 태블릿으로 데이터를 확인하는 등 짐짓 놀란 반응이었다.
3000타석 기준 KBO리그 역대 통산 타율 1위(.340)에 빛나는 이정후는 정확한 컨택과 선구안이 강점인 타자로 장타력은 높게 평가되지 않는다. KBO리그에서도 7시즌 통산 홈런은 65개로 연평균 9.3개. 두 자릿수 홈런은 2시즌으로 2020년 15개, 2022년 23개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게 6년 1억 1300만 달러 거액을 쓴 것은 장타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지난해 수비 시프트 제한, 베이스 크기 확대 및 피치 클락이 도입되면서 타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고, 인플레이 타구 생산력이 뛰어나며 발 빠른 타자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왔다.
이정후가 그 점에 가장 부합했다. 이날 훈련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이정후가 개막전 1번타자로 나가지 않으면 충격을 받을 것 같다. 부상이 아닌 한 개막전 선발로 나간다”고 미리 공표한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도 이정후의 타격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은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발 빠른 좌타자들을 보면 반갑다. 강한 타구가 아니더라도 그라운드 안에 타구를 보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정후는 공 맞히는 기술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스즈키 이치로와 흡사하다는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멜빈 감독은 “이정후에게 30개의 홈런을 바라진 않는다. 우리 홈구장(오라클파크)에선 그렇게 홈런을 치라고 할 수도 없다. 대신 ‘3루타 골목(triples alley)’이 이정후에게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며 바닷바람의 여파로 타구가 멀리 뻗지 않고, 우측 펜스가 높은 오라크파클 환경상 홈런보다는 우중간이 126m로 유독 깊은 특성을 활용해 3루타를 많이 쳐주길 바랐다.
멜빈 감독의 바람대로 이정후도 홈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이날 훈련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여기 와서 (야외) 배팅은 처음 쳤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운동장이 너무 커서 홈런을 치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최대한 라인드라이브로 치려고 했는데 넘어갔다”고 이야기했다.
어디까지나 프리 배팅이기 때문에 이정후의 홈런에 큰 의미를 부여할 건 없다. 하지만 이정후가 아예 파워가 없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8시즌 통산 147홈런을 기록 중인 샌프란시스코 동료 외야수 마이클 콘포토도 “배팅 연습 때 치는 것을 보니 파워도 있는 것 같다”며 조금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정후는 자신의 보여줘야 할 타격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리그로 옮겼지만 타격 메카닉을 한 번에 바꾸지 않는다. 이정후는 “원래 치던 대로 치고 있다. 일단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하면서 여기에 맞춰 조금씩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억지로 바꾸는 것은 아니고 여기 공을 치기 위해 연습하면서 변화를 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저스틴 비엘 샌프란시스코 타격코치도 이정후의 타격 메카닉을 존중한다. 이정후는 “코치님이 내 루틴이나 스윙 메카니즘을 좋아해준다. 타격 이론이 잘 맞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지도자 복이 있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