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전 리드오프는 태어나서 처음이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개막전 1번타자로 이정후(25)가 일찌감치 낙점됐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 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투수·포수조 스프링 트레이닝 첫 날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정후를 개막전 1번타자로 공표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는 3월29일 펫코파크 원정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상대로 시즌 개막전을 갖는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가 개막전 리드오프가 아니라면 충격을 받을 것 같다. 부상만 아니면 개막전 선발로 나간다”고 밝혔다. 아직 메이저리그 데뷔도 하지 않은 ‘루키’ 신분이지만 6년 1억1300만 달러 거액을 들여 영입한 선수를 개막전부터 안 쓸 수 없다. 지난해 12월 공식 입단식 때도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야구운영사장이 이정후를 개막전 중견수로 예고하기도 했다.
이정후도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취재진으로부터 멜빈 감독의 얘기를 전해들은 이정후는 “처음 듣는다”며 웃은 뒤 “개막전을 샌디에이고랑 하는데 엄청 기대된다. (김)하성이형은 워낙 잘했고, 나만 잘하면 같이 1번 타순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같은 팀에서 뛰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리드오프로 만나면 신기할 것 같다. 나와 하성이형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한국야구사에서 없었던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다”고 기대했다.
이정후 개인적으로도 개막전 1번타자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2017년 KBO리그 데뷔 후 지난해까지 7번의 개막전 중 5번을 선발출장한 이정후는 3번타자로 4경기, 8번타자로 1경기 나섰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3번 다음으로 1번 타순에 많이 들어간 이정후이지만 개막전 리드오프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이정후는 “개막전 리드오프는 태어나서 처음하는 것이다. 기대가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며 “내가 꿈꿔왔던 생활을 하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지금부터 개막전 리드오프, 그것만 보고 열심히 하겠다”면서 단기 목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고졸 신인으로 히어로즈에 처음 입단했을 때보다 여유도 넘친다. 이정후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긴장되고 떨렸다. 지금은 긴장되거나 떨리는 게 없다. 매일매일 기대되고, 하루하루가 설렌다. 그때는 숨도 못 쉬었다면 지금은 마음껏 숨을 쉬고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하루 길었다”고 떠올렸다.
메이저리거 꿈을 이룬 뒤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이정후는 “미국에 와서 가장 힘든 부분은 행동이다. 한국에서 왔고, 내가 잘해야 여기 샌프란시스코와 메이저리그에도 한국 선수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만큼 행동에 조심을 하려 한다. 음식이나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첫 프리 배팅에서도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홈런을 4~5개 치며 장타력도 뽐냈다. 이정후는 “배팅은 처음 쳤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라인드라이브로 치려고 하다 보니 넘어갔다. 홈런을 치려고 한 건 아니다. 시범경기가 얼마 안 남아서 몸을 빨리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는 25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시범경기를 시작한다.
이정후에겐 시범경기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볼에 적응하고 맞춰나가는 중요한 시기가 될 듯하다. 그는 “처음 보는 투수들의 공을 많이 봐야 한다. 많이 보는 걸로 그치지 않고 많이 쳐보기도 해야 한다”며 “한국에서도 처음 신인으로 들어왔을 때 상대 투수 선배님들의 등을 보지 말자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난 신인이고, 에이스 선배가 올라오면 스스로 먼저 위축되고 주눅든 게 있었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그런 마음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벌써 개막전 1번타자로 이정후를 낙점한 멜빈 감독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는 “이정후를 둘러싼 분위기가 매우 뜨겁다. 이정후도, 우리도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유명한 일본 선수들을 많이 만났고, 샌디에이고에선 김하성과도 함께했다. 이정후도 그와 비슷한 유형의 성격으로 보인다. 선수들과 쉽게 대화를 나누면서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선 많이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멜빈 감독은 “이정후는 외야 수비와 타석에서 상급 능력을 갖췄다. 공을 맞히는 기술도 놀랍다”며 “공수에서 모든 것을 두루 잘한다. 새로운 리그에서 투수들의 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금씩 배우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이정후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당장 경기에 나가서 가능한 많은 투구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고 빠른 적응을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