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내가 시킨 줄 알겠는데…”
지난해 전체 1순위 신인으로 관심을 모은 ‘파이어볼러’ 김서현(20). 1군 데뷔전이었던 4월19일 대전 두산전에서 트랙맨 기준 최고 160.1km(PTS 기준 157.9km) 강속구를 뿌려 화제가 되더니 5월11일 대전 삼성전에선 트랙맨 기준 최고 구속 160.7km(PTS 기준 158.4km)로 더 빠른 공을 뿌리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강속구만큼 눈길을 끈 것이 바로 대선배 정우람(39)의 투구폼을 흉내낸 것이었다. 아시아 프로야구 투수 역대 최다 1004경기 등판 대기록을 세운 정우람은 특유의 투구폼이 있다. 세트 포지션에서 상체를 살짝 숙인 채 두 손을 가슴 앞에다 둔 뒤 글러브 안에서 공을 한 번 툭 치고 던진다. 준비 동작에서 힘을 모으고, 글러브를 치는 순간 몸이 먼저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주며 투구 밸런스를 잡는 효과가 있다.
정우람은 21살 때부터 스스로 경쟁력 향상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이 폼을 만들었다. 힘이 많이 소모되고, 집중력 유지가 필요한 폼이지만 박상원, 김범수가 그의 폼을 따라한 뒤 한화 주축 불펜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지난해 1군에 올라온 지 2주도 되지 않은 신인 김서현이 “선배님 폼이 너무 잘 맞습니다”라며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실전에서 바로 변화를 줘서 던졌다. 재능과 습득력도 뛰어나지만 새로운 것을 스스로 시도해보는 의지력도 남다르다.
올해 플레잉코치로 변신한 정우람은 김서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누가 보면 내가 시킨 줄 알겠는데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따라한 것이다. ‘왜 그렇게 던지냐. 그거 힘든 폼인데, 어떻게 20살이 흉내내냐. 너도 참 난놈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며 “신인 선수는 시작부터 뭔가 고치는 것보다 스스로 해보면서 느끼고 부족한 게 있으면 그때 상의해서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에서 1년을 경험한 서현이도 느낀 게 많을 것이다. 인터뷰한 것만 봐도 상당히 성숙해진 느낌이다”고 올해 활약을 기대했다.
데뷔 첫 한 달간 불펜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한 김서현은 이후 제구 난조로 급격하게 흔들렸다. 여러 가지 폼을 바꿔가면서 하다 보니 밸런스가 깨진 면도 없지 않았다. 2군으로 내려가 선발 수업을 받고 1군에 올라왔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1군 첫 해 20경기(22⅓이닝) 1세이브 평균자책점 7.25. 기대에 못 미친 아쉬운 성적이지만 이제 20살이 된 투수에게 피할 수 없는 성장통과도 같았다.
김서현의 구위는 모두가 인정한다. 한화 주전 포수 최재훈은 “서현이는 진짜 좋은 공을 갖고 있다. 공이 지저분하게 날아온다. 타자들이 얼마나 무섭겠나. 그 공이면 가운데로만 던져도 잘 못 친다. 일단 한 가지 폼으로 하면서 연차가 쌓인 뒤 여러 가지 폼으로 바꿔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볼이 워낙 좋아서 맞더라도 공격적으로 들어가면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다. (문)동주도 그랬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동주도 첫 해에는 공이 빠르지만 가벼운 느낌이 있었다. 빠른 공에도 많이 맞았지만 2년차에 달라졌다. 공에 묵직함도 생기고, 제구나 변화구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2022년 데뷔 첫 해 13경기(4선발·28⅔이닝) 1승3패2홀드 평균자책점 5.65를 기록한 문동주는 지난해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와 23경기(118⅔이닝) 8승8패 평균자책점 3.72로 활약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2년차이지만 신인왕 자격 요건을 갖춘 김서현도 문동주처럼 할 수 있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김서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우월하다”며 “상대 타자들도 서현이 공이 겁나서 도망간다고 한다. 김현수(LG)도 무섭다고 했다. 그걸 알고 조금 더 자신 있게 승부하면 된다. 쉽게 난타를 당할 볼이 아니다”면서 “직구 제구가 안 돼 변화구 비중이 늘어났다. 변화구를 다양하게 던지는 것보다 주무기에 포커스를 둬야 한다”며 장점인 직구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구원으로 시작해 선발 수업을 받은 김서현은 올해 다시 불펜으로 준비한다. 짧은 이닝에 퍼포먼스를 극대화할 수 있는 투구 스타일로 장점을 살려주기 위함이다. 변화무쌍했던 투구폼도 한 가지로 고정시킨다. “야구하면서 처음으로 벽에 부딪쳤다”고 지난해를 돌아본 김서현은 “신인왕에는 관심이 없다. 작년보다 기복을 줄이고 1군에 오래 붙어있겠다는 각오로 준비 중이다. 불펜에서 자리잡아 작년보다 편하게 한 시즌 보내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