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의 재계약 제안을 뿌리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34)이 친정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돌아갔다. 그런데 기대했던 메이저리그 계약이 아니라 마이너리그 계약이다.
필라델피아는 14일(이하 한국시간) 우완 투수 뷰캐넌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발표했다. 뷰캐넌은 미국 플로리아주 클리어워터에 차려진 필라델피아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 선수로 참가, 빅리그 재도전에 나선다.
뷰캐넌은 지난겨울 삼성과 재계약 협상을 했으나 결렬됐다. 삼성에서 다년 계약을 제시하며 뷰캐넌 잔류를 위해 애를 썼지만 외국인 샐러리캡으로 인해 2024년 240만 달러, 2025년 250만 달러가 최대치 제안이었다. 다른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시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은 뷰캐넌에게 이 금액 그대로 주기 어려웠다.
결국 삼성은 코너 시볼드에 이어 또 다른 외국인 투수로 데니 레예스와 지난달 4일 계약을 완료했다. 뷰캐넌과 결별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당시 삼성은 '지난 4년간 삼성 마운드를 지킨 뷰캐넌은 최근 메이저리그 진출 등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구단의 최종 제시안을 거절함에 따라 아쉽게도 재계약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재계약이 불발된 뒤 뷰캐넌은 아내의 SNS를 통해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뷰캐넌은 “삼성과 함께하길 간절하게 원했고, 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며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난 팬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 온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많은 사랑을 줬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린다. 여러분 모두 언제나 내 마음 속에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겠다. 앞으로 다시 볼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몸에는 언제나 푸른 피가 흐를 것이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후 메이저리그 복귀 여부에 시선이 모아졌다. 신시내티 레즈에서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찌된 일인지 계약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사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시내티가 지난해 12월말 FA 투수 프랭키 몬타스를 1년 1600만 달러에 영입한 뒤 기류가 바뀌었다. 결국 신시내티와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고, 뷰캐넌은 친정 필라델피아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고액 연봉이 보장된 한국을 떠나 30대 중반에 마이너리거 신분으로 험난한 도전에 나서게 됐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필라델피아가 뷰캐넌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팀이라는 점이다. 지난 2010년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 전체 231순위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된 뷰캐넌은 마이너리그 육성 과정을 밟고 2014년 메이저리그 데뷔했다. 그해 20경기 모두 선발등판, 117⅔이닝을 던지며 6승8패 평균자책점 3.75 탈삼진 71개 WHIP 1.29를 기록했다.
꽤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지만 2년차 시즌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개막 로스터에 들어 15경기(74⅔이닝)를 선발등판했으나 2승9패 평균자책점 6.99 탈삼진 44개 WHIP 1.85로 무너졌다. 기복 심한 투구로 시즌 내내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르내리며 기대에 못 미쳤다.
2016년에는 빅리그 콜업을 받지 못한 채 트리플A에서 풀시즌을 보냈고, 2017년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9년까지 야쿠르트스왈로스에서 3년간 71경기(433⅔이닝) 20승30패 평균자책점 4.07 탈삼진 265개 WHIP 1.39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낸 뒤 2020년 한국으로 향했다.
삼성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데뷔한 뷰캐넌은 지난해까지 삼성 외국인 선수로는 역대 최장 4년의 시간을 보냈다. 4년간 통산 113경기 모두 선발등판한 뷰캐넌은 699⅔이닝을 소화하며 54승28패 평균자책점 3.02 탈삼진 539개 WHIP 1.27로 톱클래스 활약을 했다. 이 기간 최다승 공동 1위, 최다 퀄리티 스타트(80회), 평균자책점·탈삼진 2위로 암흑기 삼성 마운드의 몇 안 되는 희망이었다.
에이스로서 승부욕과 책임감도 대단했다. 4년간 2번의 완봉승과 4번의 완투 모두 리그 최다 기록. 이 기간 뷰캐넌은 KBO리그 통틀어 가장 많은 이닝과 투구수(1만1375구)를 기록했다. 웬만해선 마운드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 근성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철저한 루틴과 자기 관리로 원태인을 비롯해 국내 선수들의 모범이 됐고, 특유의 흥이 넘치는 성격과 쇼맨십으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한편 필라델피아는 잭 휠러, 애런 놀라, 타이후안 워커, 레인저 수아레즈, 크리스토퍼 산체스로 5인 선발진이 안정적으로 구성돼 있다. 예비 선발 자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뷰캐넌을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데려왔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뷰캐넌이 9년 만에 메이저리그 복귀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