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도 새 시즌부터 메이저리그처럼 수비 시프트가 제한된다. 수비 시프트 ‘금지’는 아니다. 파격적으로 내야 5명, 내야 2명 배치까진 가능하다. 수비 시프트의 덫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좌타 거포들에겐 부활의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KBO는 지난 6일 2024시즌 주요 규정과 규칙 변경 사항을 담은 안내 자료를 10개 구단 선수단에 배포했다. 이른바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ABS(자동볼판정시스템)를 비롯해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 사항이 포함됐다.
ABS가 가장 큰 관심을 모으지만 수비 시프트 내용도 눈길을 끌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흐름을 따라간 시프트 제한은 수비시 내야수 4명 모두 2루 베이스 기준으로 양쪽에 2명씩 자리해야 한다. 지난해처럼 1~2루 사이에 내야수 3명을 몰아넣고 3루를 아예 비워두는 시프트를 더 이상 펼칠 수 없게 됐다. 수비 포지션을 파괴한 이 시프트는 당겨치기 성향이 강하고, 발 느린 좌타자들이 표적이었다. 시프트 제한에 따라 그동안 기를 펴지 못한 좌타 거포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날이 갈수록 세이버메트릭스가 발전하면서 수비 시프트도 예리하고, 정교해졌다. 영역별로 타구 확률을 계산해 수비수들을 한쪽에 치우치게 했다. 타자는 당겨치는 게 본능이고, 시프트는 그걸 억제했다. 시프트에 갇혀 아웃 확률이 높아지자 타자들은 ‘더 세게, 더 멀리 보내기’를 위해 노력했다. 발사 각도를 높여 시프트가 닿지 않는 담장 밖으로 넘기는 홈런이 최고의 시프트 대처법이었다. 자연스럽게 홈런과 삼진, 볼넷이 늘어나면서 인플레이 상황이 줄어들자 야구가 단순해졌다.
획일화된 야구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자 메이저리그는 결국 시프트 제한 카드를 꺼냈다. 그 결과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리그 전체 타율(.243→.248), 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비율인 BABIP(.290→.297) 모두 상승했다. 특히 수비 시프트에 불리한 좌타자들이 살아났다. 좌타자 전체 타율(.239→.249), BABIP(.287→.297) 모두 눈에 띄게 올라갔다. 애틀랜타 맷 올슨(.240→.283), 휴스턴 카일 터커(.257→.284), LA 다저스 맥스 먼시(.196→.212) 등 시프트에 시달리던 좌타자들의 타율이 상승했다.
시프트 제한에 따라 KBO리그에서도 당겨치기 위주의 풀히터 좌타자들이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공인구 반발력이 떨어졌다는 의심 속에 리그 전체 홈런 비율(1.64%)이 역대 6번째 낮은 시즌이었고, 좌타 거포들의 상당수가 고전을 거듭했다. 잘 맞은 타구마저 수비 시프트에 걸리면서 깊은 침체에 빠져야 했다.
시프트 피해자의 대표적인 선수가 김재환(두산)이었다. 지난해 132경기 타율 2할2푼(405타수 89안타) 10홈런 46타점 OPS .674으로 부진했다. 규정타석 타자 50명 중 최저 타율로 막혔다. 그는 “시프트로 안 좋은 영향을 받았다. 주변에선 밀어서 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러면 안타 1개가 나와도 밸런스가 이상해진다. 짧게도 쳐보고, 좌측으로도 쳐보려다가 장점이 다 사라졌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지긋지긋한 시프트에서 벗어남에 따라 올해부터 좌타 거포들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 심리적 해방감이 크다. 지난해 부진한 오재일(삼성)도 “잘 맞은 공이 (수비 시프트로) 아웃되는 경우 심리적으로 영향이 미친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수비 시프트 제한 이후 좌타자 성적이 올라갔다고 한다. 분명히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타율 상승과 함께 전반적인 타격 생산력 증대를 기대할 만하다. 최근 하락세를 보인 오재일, 강백호(KT)를 포함해 추신수, 한유섬(이상 SSG), 최주환(키움), 노진혁(롯데)이 시프트 제한의 수혜자로 꼽힌다. 시프트에 크게 무너지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한 최형우(KIA)와 김현수(LG)는 더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
물론 좌타자들이 시프트의 덫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규칙상 외야에 4명 이상 배치할 수 없지만 외야수의 위치 이동은 제한이 없다. 외야수가 내야로 들어올 수 있으며 기존 유격수나 2루수가 맡던 ‘2익수’ 자리에 설 수 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몇몇 팀이 중견수를 기존 ‘2익수’ 자리에 넣고 좌측을 비워두는 시프트를 시험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외야 2인 시프트’라고 불렀다. 좌타자들이 시프트에서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는 이유.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외야 2인 시프트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경기 후반 안타 한 방이면 승부가 끝날 수 있는 만루 상황에서 내야 5인 시프트가 몇 차례 가동됐지만 정상 상황에선 외야 파격 시프트가 거의 없었다. 기존에 가장 많이 쓰인 3루를 비워둔 시프트는 단타로 막을 수 있지만 좌측 외야를 비운 시프트는 2~3루타로 장타 허용 위험성이 있어 리스크가 컸다. 또 하나, 2익수 자리에 위치한 외야수의 정확한 1루 송구 능력이 필요하다. 내야수와 달리 외야수는 1루 송구 정확성이 떨어진다. 내외야를 넘나드는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많지 않은 KBO리그 사정상 이 같은 시프트의 활용도는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