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다저스는 개방적인 팀이다. 리버럴한 도시 LA의 분위기 그대로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동부와는 다르다. 명문을 자처하는 양키스는 금지하는 게 많다. 수염도, 어지러운 헤어스타일도 배척한다. 하지만 다저스는 OK다. 염색, 장발, 수염 모두 너그럽다.
그렇다고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니다. 때로는 정색할 때도 있다. 군기, 규율, 전통을 강조하는 경우다.
8일(이하 한국시간) 한 방송 내용이 화제다. FOX 스포츠 캐스터였던 크리스 로즈가 진행하는 팟 캐스트 프로그램이다. 다저스 내야수 미겔 로하스가 출연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고식’에 대한 것이다.
요즘은 모든 대화에 오타니 쇼헤이가 등장한다. 이날도 그랬다. 진행자의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는다. “그 친구 계약 소식이 나왔을 때죠. 우리 선수들끼리 하는 대화창(단톡방 같은)에 난리가 났어요. 주로 버스에서 쇼헤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얘기들이었죠.”
로하스에 따르면 다저스에는 신입 멤버가 거쳐야 하는 루틴이 있다. 처음 버스로 이동하는 날 치르는 통과 의례다. 짐작하기에 시시콜콜한 것들을 묻고 대답하는 방식이다. 좋게 말하면 토크쇼, 심하게 하면 청문회 비슷한 형식이리라.
물론 로하스는 점잖은 질문을 예로 들었다. “어떻게 최고가 됐고, 일본에서는 어땠으며…”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어디 그렇게만 되겠나. 온갖 짓궂은 물음표가 등장할 것이다. 만약 대답을 피하거나, 성의가 없거나, 지루하면? 그때는 엄한 벌칙이 따른다. 징벌방이다. 버스 안에 있는 화장실 칸으로 격리돼서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하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다.
유명한 루키 헤이징(Rookie Hazing)과는 다르다. 신인들은 훨씬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 신고식을 치른다. 과거 류현진은 마시멜로맨으로 변신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의 등장 캐릭터다.
늦은 나이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도 피할 수 없다. 이대호는 로빈슨 카누가 준비해 준 ‘쿨에이드맨(Kool-Aid Man)’, 오승환은 ‘슈퍼 마리오’로 변신했다. 김현수는 텔레토비, 최지만은 스모 선수로 의식을 치렀다.
반면 ‘버스 신고식’은 생소하다. 메이저리거는 대부분 전용기로 이동한다. 짧은 거리는 자기 차를 이용한다. 버스를 타야 할 경우는 많지 않다. 어웨이 때 주로 쓴다. 원정지에서 다음 도시까지 거리가 애매할 때 필요하다.
스프링캠프에서도 수요가 있다. 이를테면 오전 훈련을 마치고, (연습) 게임을 위해 인근으로 가야 할 때다. 아마 로하스의 얘기도 며칠 뒤 시작되는 애리조나 캠프를 염두에 둔 것 같다.
다저스와 버스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야시엘 푸이그의 입단 초기다. 그러니까 2013~2014년쯤이다. 팀 동료들과 마찰이 잦았다. 엄청난 인기를 누린 반면, 태도 문제로 많은 지적을 받았다. 너무 나대고, 지각이나 느슨한 플레이로 욕을 먹었다.
그러던 중이다. 시카고에서 이동할 때였다. 가장 늦게 온 푸이그가 또 문제를 일으켰다. 버스 옆 짐칸에 가방을 실은 뒤 (짐칸) 문을 연 채로 차에 올라탄 것이다. 당연히 차는 출발을 못 한다. 다른 선수들이 짐칸 문을 닫으라고 소리쳤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혈질 잭 그레인키가 폭발했다. 내려가 짐칸에 있던 푸이그의 가방을 꺼내 길거리에 내팽개쳤다.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푸이그를 막아선 것은 JP 하웰이었다. 디 애슬레틱의 다저스 전담 기자였던 몰리 나이트가 쓴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팀’이라는 책에 실린 내용이다.
클럽하우스, 전용기, 버스…. 메이저리그에도 질서와 위계를 따지는 장소가 있다. 고참과 신입을 구분하는 군기가 필요한 때가 있다.
7억 달러 계약도 소용없다. MVP 2회 수상자라고 봐주는 것 없다. 로하스는 말한다. “룰은 룰이다. 잘 준비해 오게,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도, 타일러 글래스노우도 마찬가지다. 신입생, 전입생은 모두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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