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다시 FA가 된 클레이튼 커쇼(35)에겐 크게 3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현역 은퇴와 LA 다저스 잔류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로의 이적이었다. 지난 2년간 1년 계약이 끝나 FA가 될 때마다 커쇼의 거취를 두고 같은 전망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결론은 다저스와 동행이었다.
이번에도 커쇼의 선택은 다르지 않았다. ‘LA타임스’를 비롯해 미국 언론들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커쇼가 다저스와 새로운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2025년 선수 옵션이 포함된 1+1년 계약으로 60일 부상자 명단 등재가 가능한 9일 계약이 발표될 전망이다. 커쇼는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왼쪽 어깨 견갑와상완 인대 및 관절낭을 복구하는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라 전반기에는 등판이 어렵다.
커쇼는 지난해 11월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수술 사실을 알리며 “내년 여름 어느 시점에 복귀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혀 은퇴설을 잠재웠다. 현역 연장을 결정함에 따라 어느 팀에서 뛰게 될지가 관심이었다. 그러나 다저스가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타일러 글래스노우 등 특급 선수들을 영입하는 사이 커쇼는 뒷전으로 밀렸다. 고향팀 텍사스 이적설이 또 한번 흘러나왔다.
하지만 40인 로스터에 자리가 없는 다저스는 60일 부상자 명단을 통해 추가 등록이 가능한 시기를 봤다. 커쇼도 이 같은 팀 사정을 이해하고 기다렸다. 시기가 늦어지긴 했지만 양측의 신뢰가 있었기에 이뤄질 수 있는 재계약이다.
LA타임스는 ‘커쇼는 그만두지 않았다. 떠나지 않았다. 다저스와도 끝나지 않았다. 다저스도 그와 끝내지 않았다. 잘됐다. 감성과 상식이 모두 반영된 계약이다. 커쇼는 자신의 마지막 장을 다시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푸른 옷을 입고 은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빅뉴스이고, 굿뉴스’라고 전했다.
이어 ‘다저스 클럽하우스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식이다. 어깨 수술에서 회복하는 전반기 동안에는 투구를 하지 못하지만 커쇼의 존재는 리모델링된 팀 문화에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다’며 새로운 선수들이 대거 합류한 다저스에서 커쇼가 오랜 팀 전통을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투수로서 커쇼의 가치도 높다. LA타임스는 ‘커쇼는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무너지기 전까지, 어깨가 좋지 않았던 시즌 마지막 두 달간 평균자책점 2.23으로 여전히 잘 던졌다. 다저스 선발투수들의 무수한 부상 이력을 고려할 때 시즌 막판 커쇼가 돌아오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복귀시 선발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또한 LA타임스는 ‘고향팀 텍사스와 계약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커쇼는 차베스 라빈(다저스타디움 지역 위치) 집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커쇼에게도 좋은 결정이다’며 ‘월드시리즈 우승팀 텍사스는 제이콥 디그롬과 맥스 슈어저, 2명의 스타 투수들이 부상 재활로 다가올 시즌 공백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커쇼를 영입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텍사스는 지난해 시즌을 앞두고 5년 1억8500만 달러 FA 계약으로 영입된 디그롬이 6경기만 던지고 6월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됐다. 7월에 트레이드로 데려온 슈어저도 12월에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두 투수 모두 빨라야 6월에야 복귀가 가능하지만 30대 중후반의 나이를 감안하면 후반기 복귀가 현실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부상 재활자로 전반기에 쓸 수 없는 커쇼 영입은 부담이 있었다.
반면 다저스는 야마모토, 글래스노우, 제임스 팩스턴을 새로 영입한 가운데 토미 존 수술 후 재활 중인 워커 뷸러도 돌아온다. 바비 밀러, 에밋 쉬헨, 마이클 그로브, 가빈 스톤 등 영건들까지 선발 자원이 꽤 넉넉하다. 커쇼가 서두르지 않고 재활할 수 있는 전력 구성이다.
LA타임스는 ‘커쇼는 은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저스가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LA에 있는 전설적인 외과의사 닐 엘라트라체 박사와 가까이 지낼 수 있고, 익숙한 팀 관계자들 밑에서 서둘러 복귀해야 하는 부담감 없이 재활할 수 있다. 다저스 라인업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단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며 162경기 체제에서 첫 월드시리즈 우승 기회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LA타임스는 ‘무엇보다 커쇼가 다저스로 돌아온 것은 아직 끝내지 않은 일 때문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등판에서 자신의 시간을 그렇게 끝낼 순 없었다’며 지난해 디비전시리즈 1차전을 떠올렸다. 당시 커쇼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상대로 ⅓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6실점으로 난타당하며 조기 강판됐다. 4차전 설욕을 다짐했지만 다저스가 애리조나에 3전 전패 스윕을 당하면서 어쩌면 다저스에서 커쇼의 마지막 등판이 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