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6)의 FA 계약이 늦어지는 이유는 끝장 협상을 펼치는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71)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국 ‘스포츠비즈니스저널’은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올 겨울 메이저리그 FA 시장이 더디게 흘러가는 이유에 대해 다뤘다. FA 최대어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이상 LA 다저스)가 지난해 12월 거취를 결정한 뒤에도 특급 FA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2월이 됐는데도 시장에 다수 남아있다.
지난해 11월7일 ‘MLB.com’이 선정한 최고의 FA 선수 10명 중 5명(3위 블레이크 스넬, 4위 코디 벨린저, 8위 조던 몽고메리, 9위 J.D. 마르티네스, 10위 맷 채프먼)이 미계약 상태로 이들을 모두 보유 중인 ‘보라스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랭킹에 들진 못했지만 류현진도 보라스의 FA 고객 중 한 명이다.
매년 늦어지는 FA 시장이 장기전으로 흐르자 ‘FA 계약 마감시한’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운영사장이 최근 이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섰다. 2019년 말에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선수 노조에 이런 제안을 했지만 선수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FA 장기전의 ‘원흉’으로 꼽히는 보라스는 스포츠비즈니스저널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FA 계약이 느린 게 나와 관련 있다고 말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문을 열려면 누군가 문을 열어줘야 한다. 나는 문고리를 잡는 사람이 아니다. 초대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준비돼 있다”며 결정권은 구단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라스는 “어떤 형태로든 마감시한이 생기면 협상에 제약이 된다. 구단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수많은 방법을 시도한다. 트레이드, FA 계약으로 100일 동안 팀 상황을 보고 조금 더 명확해지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마감시한을 지정하는 것은 좋은 결정에 반하는 것이다”며 장기전이 꼭 구단에 나쁜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번 FA 시장이 장기전이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스포츠비즈니스 저널은 ‘많은 메이저리그 팀들이 지역 미디어 수익과 관련해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익명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FA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로 인해 지난해 11월 단장회의 때 어느 한 구단의 임원은 “FA 영입에 돈 한푼도 쓸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뒷이야기를 전한 에이전트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팀들이 많다. 이에 대처하는 구단주들이 FA 시장에 참여하길 꺼려한다”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나 탬파베이 레이스처럼 원래 돈을 잘 안 쓰는 팀들이 아닌 다른 팀들도 지갑을 마음껏 열 수 없는 상황이 문제라고 전했다.
메이저리그 14개 구단에 대한 지역 TV 중계권을 갖고 있던 밸리스포츠 운영 주체 다이아몬드스포츠그룹 파산 문제로 여러 구단들의 ‘돈줄’이 막혔다. 이로 인해 중계권 계약이 파기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지난해 9월 단기 현금 유동성 문제로 5000만 달러를 대출받기도 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신시내티 레즈, 클리브랜드 가디언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LA 에인절스, 마이애미 말린스, 밀워키 브루어스, 미네소타 트윈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탬파베이 레이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12개 구단은 올해도 밸리스포츠와 중계권 계약된 상태. 다이아몬드스포츠그룹이 채권단으로부터 4억5000만 달러를 확보하고, 미국 유통 공룡 ‘아마존’의 1억1500만 달러 지원을 받아 당장 급한 불은 껐다. 올 한 해 자금 문제는 해결됐지만 구단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FA 영입에 있어 장기 계약을 안겨주기에 부담스런 상황이다.
이런 사정이 겹쳐 특급 FA들의 거취 결정이 늦어지고 있고, 류현진의 기다림도 예상보다 길어진다. 하지만 스넬과 몽고메리를 제외하고 남은 FA 시장 2티어 선발투수로는 이제 류현진과 마이클 로렌젠, 마이크 클레빈저밖에 남지 않았다. 2월 스프링 트레이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류현진의 거취 결정도 가까워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