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시작된 기장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선수단은 일찌감치 내려와 캠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장 박경수(39)의 방으로 22년차 동기생 우규민(38)이 대뜸 찾아왔다. 지난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에서 KT로 이적하게 된 우규민은 새로운 모자와 유니폼을 풀세트로 장착한 채 박경수의 방을 찾았다. 박경수는 우규민의 모습에 황당하면서도 내심 흐뭇했다.
박경수는 “20살로 돌아간 줄 알았다. (우)규민이가 와서 ‘괜찮냐, 잘 어울리냐’고 계속 물어보더라. 친구로서 기분도 좋고 규민이가 지금 이 팀에 온 것을 정말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라고 웃었다.
박경수와 우규민은 LG의 암흑기 시절, 팀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유망주 선수들이었다. 성남고를 졸업하고 2003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박경수, 휘문고를 졸업하고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로 입단한 우규민은 힘든 시기를 함께 겪으면서 서로 의지했다. 기대도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고 박경수는 2015년 FA 자격을 얻고 신생팀 KT와 4년 18억2000만원에 계약하며 이적했다. 동기생 친구들은 헤어졌다. 이후 우규민도 2017년 FA 자격을 얻고 삼성과 4년 65억원에 계약을 하면서 LG와의 인연을 끝냈다.
이강철 감독은 이런 우규민을 향해 “많이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감독도 이러한 우규민의 의욕이 내심 싫지는 않은 눈치.
여기에 박병호(37)까지 더하면 LG에서 고난의 시간을 함께한 막역지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박경수도 설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11월, “정말 신기한 게 우리가 몇년 전부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1년이라도 같이 한 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너무 기쁘다”라면서 “(우)규민이가 우리 팀에 온 게 우리도 그렇고 규민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투수 파트에 안영명의 은퇴 이후 베테랑이 마땅히 없었는데 규민이가 젊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 내내 두 선수는 환상의 케미를 보여줬다. 서로에게 “30홀드”. “30홈런”을 바라며 투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승을 향한 진심은 진지했다. 박경수는 KT로 이적하면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고 2021년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우규민은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박경수는 “규민이가 중간계투에서 30홀드를 하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웃었다. 그러자 우규민은 “경수가 30홈런을 치기 바란다”라면서 “수비는 워낙 정평이 나 있는데 공격에서도 욕심을 내서 파워히터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매년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데, 경수의 은퇴는 없을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서 “부상 없이 한 시즌 잘 보냈으면 좋겠다”라면서 “우승을 하면 서로에게 우승반지를 끼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