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KT 위즈는 왜 구단 최초로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면서까지 에이스 고영표(33)를 붙잡았을까.
KT 위즈는 지난 25일 “투수 고영표(33)와 5년 총액 107억 원(보장액 95억 원, 옵션 12억 원)에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계약으로 KT는 올해 33살이 된 고영표에게 37살이 되는 2028년까지 선수 생활을 보장, 사실상 종신 KT맨 타이틀을 부여했다.
KT는 지난해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고영표의 다년계약을 추진했다. 25일 OSEN과 연락이 닿은 KT 관계자는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단기, 중장기 로스터를 구상하면서 고영표를 다년계약을 통해 잔류시키는 게 맞을 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라고 전했다.
KT는 내부 검토 작업을 거쳐 올해 1월 고영표 측 에이전시와 협상을 진행했고, 선수에게 107억 원 가운데 보장액이 무려 95억 원에 달하는 계약서를 안겼다. 그 동안 선수 투자에 인색했던 KT가 2018년 FA 황재균의 4년 88억 원을 넘어 구단 역대 선수 계약 최고액을 경신한 것.
KT는 2024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는 고영표를 미리 붙잡기 위해 창단 최초 다년계약을 성사시킴과 동시에 최초로 1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이와 더불어 33살이 된 선수에게 향후 5년 동안 95억 원을 보장하는 초특급 대우를 했다.
KT 관계자는 “고영표가 지금까지 잘해줬다. 최근 3년간 외국인선수까지 통틀어서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퀄리티스타트, 이닝당 볼넷 등 투수 주요 지표가 다 1등이다. 투구폼도 부드러운 스타일이라 앞으로도 꾸준히 해줄 것으로 판단했다. 무엇보다 구단의 첫 프랜차이즈 스타이기에 다년계약을 체결했다”라고 거액을 투자한 이유를 설명했다.
보장액 95억 원에 대해선 오버페이가 아닌 합리적 금액이라는 시선을 드러냈다. 위의 관계자는 “만일 이번에 다년계약을 안 하고 고영표가 FA로 시장에 나갔을 때 가치를 생각한다면 지금 금액을 훨씬 넘어갈 거라고 본다. 최근 시장을 보면 경쟁이 붙을 경우 시장가를 훨씬 웃도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라며 “외국인선수도 보면 잘하는 선수들 연봉이 150만~200만 달러(약 20억~26억 원)다. 그런데 고영표는 외국인선수보다 더 잘한다. 95억 원은 적정 금액이다”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팀이 꾸준히 가을야구에 가고 상위권에 오르려면 선발진에서 상수 4명은 만들어놔야 한다. 향후 3, 4년을 외국인선수 2명에 고영표, 소형준, 엄상백이 이끌어준다면 경기를 풀어나가기 훨씬 수월하다. 선발투수는 미국, 일본, 한국 모두 귀하고 가치도 높고 금액도 많이 지급이 된다. 고영표가 5년 동안 에이스 역할을 계속 해주면서 중심을 잡아주길 바란다”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화순고-동국대를 졸업한 고영표는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T 2차 1라운드 10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2015년 1군에 데뷔한 고영표는 2018년까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시즌 통산 19승을 수확했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고영표의 전성기는 2021시즌부터 시작됐다. KBO리그 전설의 잠수함 이강철 감독을 만나며 마침내 풀타임 선발로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2021년 26경기 11승 6패 1홀드 평균자책점 2.92를 시작으로, 2022년 28경기 182⅓이닝 13승 8패 평균자책점 3.26의 커리어하이를 썼고, 지난해에도 28경기 12승 7패 평균자책점 2.78로 토종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고영표는 이 기간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15.87, 퀄리티스타트 63회를 기록하는 등 각 부문 1위에 오르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고영표는 지난해에도 국내선수 기준 퀄리티스타트(21회), 이닝(174⅔) 1위, 평균자책점, 다승, WHIP(1.15), 2위 등 상위권을 독식하며 다시 한 번 리그 최고의 토종 에이스로서 입지를 굳혔다.
고영표의 지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선발투수 기록의 꽃이라 불리는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다. 2021시즌부터 2시즌 연속 21번의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한 고영표는 지난해 다시 한 번 21퀄리티스타트를 해내며 KBO리그에서 퀄리티스타트 기록을 집계한 이래 최초로 3년 연속 퀄리티스타트 20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고영표는 지난해 12승으로 종전 윌리엄 쿠에바스(2019~2020), 배제성(2019~2020),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2020~2021)를 넘어 KT 구단 최초 3시즌 연속 선발투수 10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영표는 KT 역대 최다 경기 선발 등판(127경기), 최다승(55승), 최다 이닝(920⅔이닝), 최다 완봉승(4회) 등 각종 부문에서 구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투수다.
고영표는 계약 후 OSEN과의 전화통화에서 "구단에서 좋은 대우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막중한 책임감도 생긴다. KT 유니폼을 5년 더 입게 돼 행복하기도 하다"라며 "팬들이 날 많이 사랑해주셔서 구단에서 다년계약을 적극 추진했던 거 같다. 구단주님, 단장님을 비롯해 프런트의 팀장님들과 형들이 내가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감사하다"라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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