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빨리 지명 받아도 되나 생각했다.”
한화의 새 식구가 된 투수 이상규(27)는 지난해 11월22일 KBO 2차 드래프트 결과를 듣고선 놀랐다.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권을 한화가 LG 우완 이상규를 지명한 것이다. 2차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양도금은 4억원으로 적지 않다. 한화가 나름대로 큰돈을 투자해서 이상규를 데려갔다.
이상규는 “처음에 지명 소식을 듣곤 ‘내가 2순위라고?’ 이런 생각을 가졌다. 내가 그렇게 빨리 지명 받아도 되나 생각했다. 의아하고 놀랐다. LG 감독님, 코치님들이 도와주신 건지 모르겠다”고 떠올렸다.
2차 드래프트 지명 후 최원호 한화 감독은 “ABS(자동볼판정시스템)가 들어서면 구속이 좋거나 볼의 무브먼트가 있는 투수들이 유리해질 것이다. 거기에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까지 있으면 더 좋다. 이상규는 140km대 중반을 던질 수 있고, 공 무브먼트가 좋다.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지만 포크볼도 있다”며 로봇 심판 체제에서 통할 수 있는 투수로 봤다.
청원고 출신으로 지난 2015년 2차 7라운드 전체 70순위로 LG에 지명된 이상규는 2019년 1군 데뷔 후 4시즌 통산 44경기(45이닝) 2승3패4세이브1홀드 평균자책점 6.20 탈삼진 28개를 기록했다.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2020년 시즌 초반 고우석이 무릎 부상으로 빠졌을 때 LG 임시 마무리를 맡을 정도로 구위를 인정받았다. 최고 153km까지 스피드건에 찍혔다.
2020년 5월 한 달간 12경기(12⅓이닝) 2승4세이브1홀드 평균자책점 1.46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상규는 그러나 6월 이후 제구 난조로 마무리 자리를 내려왔고, 이후 1군보다 2군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27경기(25⅔이닝) 2승1패2세이브3홀드 평균자책점 1.75로 호투했지만 1군에선 8경기(7⅔이닝) 등판에 그쳤다. 최근 3년 연속 팀 평균자책점 1위로 투수력이 좋은 LG에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상규는 “그동안 내 것이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시도하다 보니 일희일비했다. 좋은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길을 잘못 간 것이다. 내가 봐도 고집이 강했고, 너무 완벽해지려 했었다”고 돌아보며 “이제 거의 정립이 된 것 같다. 지난해에는 지저분한 볼끝을 살리기 위해 투심을 많이 던졌다. 영상을 보며 로케이션을 많이 공부했다. 변화구도 염경엽 감독님이 포크볼을 던질 줄 알아야 기회를 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셔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볼 무브먼트를 살리고, 포크볼을 장착하며 변화를 줬는데 한화가 이 부분을 주목해서 이상규를 데려왔다.
한화로의 이적은 새로운 기회다. 이상규는 “FA가 아닌 2차 드래프트로 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기회를 받을 순 있어도 무조건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팀이 필요로 해서 왔으니 내가 잘하면 기회를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며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마무리나 중간 필승조 같은 나만의 자리를 하나 맡고 싶다. 이주형(키움)처럼 ‘쟤는 잘할 줄 알았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LG) 팬분에게 ‘가서 아깝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새 팀에서 등번호는 18번으로 결정됐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에이스 투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번호. LA 다저스에 입단한 일본 최고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도 18번을 달고 있다. 이상규는 야마모토와도 작은 인연이 있다. 2019년쯤 일본 오키나와에 개인 훈련을 하러 갔을 때 만나 친분을 쌓은 일본 선수를 통해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이었던 야마모토에게 자신의 투구 영상을 보내 조언을 받기도 했다. 이상규는 “나와 체형이 비슷하다. 작고 마른 체구인데도 빠른 볼을 던지는 야마모토가 특별하게 보였다. 나도 그렇게 던지고 싶어 자문을 구했었다”고 기억했다.
마침 한화에 오자마자 18번이 비어있었고, 자연스럽게 이상규의 차지가 됐다. 새로운 팀 한화에서 롤모델 야마모토의 번호를 달고 기분 좋게 새출발한다. /waw@osen.co.kr